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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6 편 종교의 초기 진화

. 저자 : 네바돈의 저녁별
. 1934년


86:0.1 (950.1) 이전의 원시적 종교가 진화하는 것은 계시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배와 지혜의 영이 정상으로 작용하면 종교가 진화한다.


86:0.2 인간의 의식 속에서 최초에 자연력에 대한 두려움은 차츰 종교성을 띠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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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 : 행운과 불운


86:1.1 (950.3) 진화 종교의 뿌리는 인간이 우연―이른바 운―을 체험한 데 기원이 있다. 먹을거리를 사냥하는 원시인들의 사냥 결과는 늘 변하고, 이것을 행운, 불운으로 해석했다.


86:1.2 원시의 유란시아인은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보다는 살기 위하여 싸웠고, 그들의 인생에서 운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알지 못하는 재난이 닥치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은 절망의 구름이 되어 야만인들 위에 떠 있었다. 미신을 믿는 야만인은 행운이 이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런 행운은 재난이 다가올 전조라고 생각했다.


86:1.3 불운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생각 없는 사람들은 행운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잊어버리지만, 불운은 뼈저리게 기억한다.


86:1.4 초기의 인간은 불안 속에서, 우연―불운―을 항상 두려워하면서 살았다. 인생은 흥미 있는 우연의 장난이었고, 존재하는 것은 노름이었다. 원시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 얻으려는 정열, 그리고 무언가 수고를 들이고 아무것도 못 얻는 두려움, 이 두 가지 큰 관심거리 사이에 갈팡질팡했다.


86:1.5 후일에 양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우연과 운의 관점을 가졌다. 그 후에 농사꾼들은 더위와 추위 뿐 아니라, 가뭄ㆍ홍수ㆍ우박ㆍ폭풍우ㆍ해충, 식물의 병으로 자신이 손해 보는 것을 발견했다. 이 모든 자연의 영향을 행운이나 불운으로 여겼다.


86:1.6 (951.2) 최근에도 솔로몬의 지혜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돌아와서 보니, 빠른 자가 달리기에 이기지 않고, 힘센 자가 전쟁에 이기지도 않으며, 지혜로운 자가 빵을 얻지도 않고, 명철한 사람이 부를 얻지도 않으며, 기술 있는 사람이 은혜를 받지도 않는도다. 운명과 우연이 저희 모두에게 내리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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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우연의 의인화


86:2.1 (951.3) 걱정은 야만인의 머리속에 자연스러운 상태이다. 걱정이 실제로 고통스러워질 때, 걱정은 활동을 억제하고, 어김없이 진화적 변화와 생물학적 적응을 시작한다. 고통과 괴로움은 점진적 진화에 필수이다.


86:2.2 원시인은 끊임없이 물었다, "누가 나를 괴롭히는가?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경외함으로부터 종교가 태어났다. 처음에는 우연, 다음은 신비스러움, 그리고 살려는 투쟁에서 한 요인이 되었다.


86:2.3 원시인의 머리는 논리가 있었으나, 연결 지을 관념이 거의 없었다. 한 사건이 다른 사건을 따르면, 야만인은 이것들이 원인과 결과 라고 보았다. 야만인은 만질 수 없고 추상적인 것을 모두 의인화하려고 애쓰며, 자연과 우연은 귀신으로, 나중에는 신으로 인격화된다.


86:2.4 사람은 지금 또는 먼 앞날에 이익이 되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 자기 이익은 대체로 논리를 모호하게 만든다. 문명화된 사람들 보다 야만인들은 본질보다 는 내용을, 질보다는 정도를 따지는데 차이가 있다.


86:2.5 우연, 운은 사람이 너무 무지하거나 게을러서 원인을 밝히지 못하는 것을 알리는 낱말이다. 사람들은 호기심과 상상력이 결핍되었을 때, 종족들이 창의력과 모험이 모자랄 때에야 자연 현상을 우연이나 불운으로 여긴다. 생명 현상의 탐구는 머지않아 우연ㆍ행운, 그리고 이른바 우연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깨뜨리며, 그 자리에 법칙과 질서가 있는 우주를 채워 넣는다. 닥치는 두려움은 살아가는 기쁨으로 바뀐다.


86:2.6 (952.1) 야만인은 자연이 살아 있고, 무엇이 들어 있다고 보았다. 원시인은 어떤 것도 우연 속에 반드시 의도가 있다고 생각했다. 행운은 영 세계가 변덕스럽게 기분대로 반응하는 것이라고 보았고, 나중에는 신들의 유머라고 보았다.


86:2.7 그러나 모든 종교가 물활론으로부터 발전하지는 않았다. 초자연의 것들에 대한 다른 개념들은 물활론과 같은 시대에 있었고, 이 여러 관념도 또한 신의 숭배로 이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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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죽음―설명할 수 없는 것


86:3.1 (952.3) 죽음은 진화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충격이요, 우연과 신비의 조합이었다. 죽음의 충격이 두려움을 일으켰고, 이처럼 효과적으로 종교를 육성했다. 사람이 죽음이 불가피한 것을 깨닫는 데 긴 세월이 걸렸다.


86:3.2 모든 종족은 죽지 않는 사람들에 관한 전설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머리 속에는 흐릿하고 체계 없는 영 세계에 대하여 뿌연 개념이 이미 존재했는데, 거기서부터 인생에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왔고, 설명할 수 없는 여러 현상이 적힌 이 긴 목록에 죽음이 첨가되었다.


86:3.3 인간의 병과 자연사는 처음에 영의 영향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중에 더 복잡한 신학 체계는 여전히 죽음을 영 세계의 행위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이 모든 것이 원죄와 인간의 타락과 같은 교리를 낳았다.


86:3.4 질병과 죽음이 찾아온 앞에서 인간이 약한 것을 인식함과 더불어, 막강한 자연력 앞에 무력함을 깨달은 것은 야만인으로 하여금 초물질 세계로부터 도움을 찾도록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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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죽음과 생존의 개념


86:4.1 (952.7) 초물질 세계가 있다는 개념은 일상생활과 귀신 꿈을 연결지어 생겨났다. 돌아가신 추장의 꿈을 몇 사람이 동시에 꾸는 것은 늙은 추장이 정말로 돌아온 것을 확신시키는 증거인 것처럼 보였다.


86:4.2 꿈ㆍ귀신, 앞날의 생명에 대한 이 새 개념은 즉시, 자아를 보존하는 생물학적 본능과 연결하여,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해독하기 시작했다.


86:4.3 생명의 호흡은 산 자와 죽은 자를 구별하는 유일한 현상으로 간주되었다. 인간의 혼에 대한 원시적 개념, 귀신은, 호흡과 꿈 개념으로부터 생겨났다.


86:4.4 결국 야만인은 자신이 몸과 호흡이라고 생각했다. 숨에서 몸을 빼면 귀신이 되었다. 신이나 영은 초인간으로 간주되었다.


86:4.5 죽은 뒤에 살아남는다는 원시 신조는 반드시 불멸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그들은 거듭 육신화하는 것을 생각했다.


86:4.6 (953.5) 주황 민족은 특히 윤회와 환생의 신앙에 빠졌다. 이 환생 신앙은 자손이 선조들의 유전과 특성을 닮은 것을 지켜본 데서 생겼다. 조부모와 기타 선조들을 따라 아이들의 이름을 짓는 관습은 환생을 믿기 때문이었다. 후일의 어떤 종족들은 사람이 세 번에서 일곱 번까지 죽는다고 믿었다.


86:4.7 원시인은 지옥이나 앞날의 벌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 야만인은 미래의 인생은 악운만 빼고, 꼭 이 인생과 같다고 보았다. 나중에는,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이, 따로따로의 운명―천국과 지옥―을 가졌다고 상상했다.


86:4.8 거의 모든 집단이 혼의 운명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졌다. 그리스인은 약한 사람이 약한 혼을 가졌다고 믿었고, 핏기 없는 혼을 받는 장소로 하데스(지옥)을 발명했다. 중국인과 에집트인은 혼과 몸이 같이 남아 있다고 믿었다. 현대의 민족들도 죽은 자의 부패를 멈추게 하려고 애쓴다. 히브리인은 개인의 유령 복사품이 저승으로 내려간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의 땅으로 돌아올 수 없다고 상상했다. 그들은 혼의 발전에 관한 교리에서 이 중요한 걸음을 내디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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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몸이 없는 혼 개념


86:5.1 (953.8) 사람의 비물질 부분을 귀신ㆍ영ㆍ그림자ㆍ유령ㆍ망령, 나중에는 혼이라고 불렀다. 만질 수 없는 것을 제쳐놓고, 혼은 필사자와 모든 면에서 똑같았다. 꿈 속 복사판에 대한 관념은 사람 뿐 아니라,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 모두가 혼을 가졌다는 개념으로 바로 이끌었다. 이 개념은 자연이 영을 가졌다는 관념을 오랫동안 지속하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


86:5.2 몸이 없는 혼의 소리를 듣고 그 혼을 볼 수도 있지만, 만질 수는 없었다. 마침내 죽음은 "귀신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문명이 진보하면서 사람은 계시와 종교적 체험 통해, 하나님을 아는 필사 정신과 깃드는 신다운 영인 생각 조절자가 함께 혼을 창조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86:5.3 옛날 사람들은 사람에게 깃드는 영과 진화 성질을 가진 혼, 이 두 개념을 구별하지 못했다. (한국인은 이 둘을 합쳐 영혼이라 한다.)


86:5.4 (954.3) 다음과 같이 혼이 여러 방법으로 몸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다:

1. 잠시 기절할 때.

2. 잠 속에서 꿈을 꿀 때.

3. 병과 사고에 관계되어 혼수 상태와 무의식에 있을 때.

4. 죽음으로, 영구하게 떠날 때.


86:5.9 야만인은 재채기를 혼이 몸을 떠나려다가 그만둔 것으로 보았다. 깨어 있으면, 혼이 도망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86:5.10 초기부터 잠을 잘 때 혼이 몸을 떠날 수 있다고 믿었고, 잠자는 사람의 이름을 외쳐서 그 혼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다고 믿었다. 옛 사람들은 혼이 몸으로 돌아갈 시간을 가지도록 잠자는 사람을 차츰차츰 깨우는 관습을 지켰다.


86:5.11 (954.10) 오랜 세월을 통해 사람들은 밤에 나타나는 유령에 겁을 먹었고, 모세가 금지령을 내렸는데도,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이 꿈 속에서 그들에게 말한다고 믿었다. 평범한 꿈은 영 성격자들이 물질 존재와 교통할 때 쓰는 방법이 아니다.


86:5.12 옛날 사람들은 혼이 동물이나 생명이 없는 물체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늑대 인간 관념을 낳았다.


86:5.13 원시인은 혼이 숨과 결합되어 있고, 숨을 불어 혼의 성질을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초기의 기독교인 사이에서 성령을 주는 예식에는 후보자에게 숨을 불어 주는 일이 뒤따랐다. 시편의 저자는 말했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이 만들어지고, 온 무리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숨을 불어 만들어졌도다.” 맏아들이 죽어 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숨을 붙잡으려고 애쓰는 것이 오랫동안 풍습이었다.


86:5.14 나중에는 숨과 똑같이 그림자를 존중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미신으로 거울을 다루었다. 문명화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사람이 죽었을 때, 거울을 벽으로 돌려 놓는다.


86:5.15 혼의 위치를 머리ㆍ머리카락ㆍ심장ㆍ간ㆍ피ㆍ지방에 두었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외친다”는 것은 한때 귀신이 피 속에 있다는 관념을 표현한다. 셈 족속은 혼이 몸의 지방 속에 거한다고 가르쳤으며, 동물의 지방을 먹는 것은 많은 사람 사이에서 금기였다.


86:5.16 (955.4) 혼이 서너 개 있다는 교리를 고수하는 자들은 혼을 하나 잃는 것은 불쾌, 둘은 병, 셋은 죽음을 뜻한다고 믿었다. 혼 하나는 숨 속에, 하나는 머리에, 하나는 머리카락에, 하나는 심장에 살았다.


86:5.17 인간의 존재를 설명하는 이 철학은 나중에 그리스인의 관점에서 반영되었다. 그리스인은 세 혼을 믿었다. 식물 혼은 위장에, 동물 혼은 심장에, 지적인 혼은 머리 속에 거한다고 믿었다. 에스키모인은 사람이 세 부분, 몸ㆍ혼ㆍ이름을 가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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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귀신과 영이 있는 환경


86:6.1 (955.6) 사람은 자연 환경을 물려받고, 사회 환경을 익히고, 귀신에 쌓인 환경을 상상했다.


86:6.2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일찍부터, 귀신과 영이 있는 공상 세계가 현실이라는 것을 보편적으로 믿었고, 새롭게 상상한 이 영 세계는 원시 사회에서 권력이 되었다.


86:6.3 극심한 두려움 때문에 후일에 원시 민족들의 모든 미신과 종교는 이 망상과 무지 속에 압축되었다. 이것은 사람의 유일한 종교였고, 오늘날 세계의 많은 종족이 투박한 진화 종교를 가지고 있다.


86:6.4 진화가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서, 행운은 좋은 영, 불운은 나쁜 영과 연결되었다. 원시인은 타고난 예배 욕구와 우연에 관한 잘못된 개념으로부터 천천히 종교를 진화시켰다. 현대 과학은 가상하는 영과 변덕스러운 신들 대신에 보험 회계사에게 수학으로 계산하게 한다.


86:6.5 지나가는 각 세대는 선조들의 잘못된 생각 및 숭배를 계속 마음속에 품는다.


86:6.6 (956.2) 사람은 물질적 자극에 대한 기술을 발전시키려 하였다. 영 귀신이 성날 때 불운을 쏟아 붓고 기쁠 때 행운을 던져 준다면, 인간의 행동을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한 개념이 마침내 진화했고, 땅에서 어떤 계시도 내리기 전에 그렇게 되었다.


86:6.7 이 개념이 고개를 들자, 늘 기분이 상한 영을 달래려는 오랜 싸움, 무덤과 성전, 사제들에게 희생물을 바치는 낭비가 시작되었다. 끔찍한 값을 치렀으나, 치러도 좋았다. 왜냐하면, 이를 통해서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의식했고 윤리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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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원시 종교의 기능


86:7.1 (956.4) 야만인은 보험의 필요성을 느꼈고, 보험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미신을 믿고 사제에게 선물을 기꺼이 바쳤다. 원시 종교는 단지 숲에서 사는 위험에 대하여 보험을 사는 것이다. 문명화된 사람은 사고와 비상 사태에 대비하여 물질적 보험료를 낸다.


86:7.2 현대 사회는 운을 통제하려고 이제 더 물 쓰듯 보험료를 내지 않는다. 종교는 더 높은 철학 수준으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86:7.3 귀신을 두려워하는 종교는 인간의 운명을 통제하는 초물질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마음에 심어 주었다.


86:7.4 인류는 귀신과 영 때문에 불운이 생긴다고 설명하는 사슬에서 해방을 얻고 있다. 오로지 사실을 파악하고, 자연 법칙 안에서 지혜롭게 조종하는 것이 사람으로 하여금 바라는 것을 얻고 바라지 않는 것을 피하게 만들 것이다. 과학적 행동으로 이끄는 과학 지식이 이른바 우연히 생기는 재난에 대하여 유일한 해독제이다.


86:7.5 종교는 자아를 유지하는 진화된 발전이었고, 최초에는 그릇된 개념이고 철저히 논리가 없었는데도 효과가 있었다.


86:7.6 (957.2) 원시 종교는 생각 조절자의 수여를 위해서 인간 지성의 토양을 준비시킨다. 신다운 절자는 하나님-두려움에서 하나님-사랑으로 변화시키려고 노력해 왔다. 진화는 느릴지 몰라도 틀림없이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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