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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편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 1934년

 

4:0.1 (54.1) 우주의 아버지는 온 우주의 물질ㆍ지성ㆍ영의 현상과 관계되는 영원한 목적을 가졌고 언제까지나 이를 집행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신의 최고의 자유 의지로 우주들을 창조했고, 온통 슬기롭고 영원한 목적에 따라서 이 우주들을 창조했다.


4:0.2 하나님이 완전한 하보나 중앙 우주를 창조한 목적은, 모든 다른 우주 창조를 위한 원본 창조로서, 그리고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에 있는 시간 순례자들을 위하여 최종 학교로서 쓰이는지 모른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완전하고 무한한 창조자들이 기뻐하고 만족하기 위해서 존재함이 틀림없다.


4:0.3 진화하는 필사자를 완전하게 만드는 놀라운 계획, 파라다이스와 최후 군단에 이른 뒤에, 밝혀지지 않은 어떤 앞날의 과업을 위해서 그들을 더 훈련하는 계획은 현재, 일곱 초우주와 그 여러 종속 부서에서 주요한 관심거리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주의 지적 존재들의 일만은 아니다. 정말로 하늘 무리들의 시간을 차지하고 에너지를 요구하는, 매력 있는 다른 일거리가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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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4:1.1 (54.4) 오랜 세월에 걸쳐서, 유란시아 거주민은 하나님의 섭리를 잘못 알고 있었다. 그 섭리는 유치하고 멋대로이고 물질적인 봉사가 아니다. 하늘 존재와 신성한 영들이 연결되어 활동하는 데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 그들은 우주 법칙에 따라서, 하나님의 명예와 우주에 있는 자녀들의 영적 진보를 위하여 끊임없이 수고한다.


4:1.2 하나님이 사람을 상대하는 개념을 생각할 때, 우주의 표어는 진보이다. 오랜 세월을 통해서 인류는 현재 위치에 이르려고 투쟁해 왔다. 이 수천 년에 걸쳐서 섭리는 점진적 진화 계획을 실행하고 있었다. 섭리는 언제나 최고 입법자의 변치않고 완전한 성품과 일치된다.


4:1.3 “아 주여, 언제까지나 주의 말씀은 하늘에 정착되었고, 주는 모든 세대에게 충실하나이다. 주가 땅을 세우신즉 땅이 버티고 있나이다.” “그는 충실한 창조자로다.”


4:1.4 아버지는 그의 목적을 지원하고 인간을 부양하려고 아무 제한 없이 세력과 성격자들을 이용해도 좋다.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요, 그 밑에 영구한 팔이 있도다.” “최고자의 은밀한 곳에서 사는 자는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서 머물리로다.” “볼지어다. 우리를 지키는 분은 졸지도 자지도 아니하리라.”


4:1.5 하나님은 모든 물질과 모든 영적 존재를 항상 떠받드신다. 우주들은 영원히 안정되어 있고, 겉보기에 불안정한 와중에 안정이 있다. 별들이 있는 영역에서 생기는 에너지 파동과 물리적 대변동 가운데 기초적 질서와 안전이 있다.


4:1.6 (55.4)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를 관리하는 일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놀고 있는 신이 아니다. 우주는 작동을 멈추지 않으며, 만물이 항상 새롭게 되고 있다. 아버지는 끊임없이 에너지와 빛과 생명을 방출한다. 하나님은 영적인 일 뿐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일을 하신다.


4:1.7 우주들의 현상에 관하여 지식이 있는데도, 내가 넉넉히 헤아릴 수 없는 우주 반응을 나는 늘 보게 된다. 물력과 에너지, 지성과 영의 상호 관계가 우연히 들어맞는 듯한 일을 계속 구경하는데, 나는 이를 흡족하게 설명할 수 없다.


4:1.8 절대자들은 물질을 갈아치우고, 지성(mind)을 초월하고, 영을 압도하는 듯하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치들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나는 항상 헛갈리고 자주 당황하는데, 이것을 나는 무제한 절대자, 신 절대자, 우주 절대자의 계심과 행위의 탓으로 돌린다.


4:1.9 공간 잠재력의 현상에서, 그리고 기타 초월 궁극자들의 활동에서, 시초 형태의 물력, 개념 또는 영들이 최상의 적응과 궁극의 가치가 관련되는 복잡한 현실 상황의 요구에 대하여 물리학자, 철학자 또는 종교가도 확실히 예측하기 불가능하게 만든다.


4:1.10 시공의 여러 우주에는 우주 사건들의 전체 구성의 기초가 되는 듯한 유기적 통일성이 있다. 진화하는 최상 존재의 이 살아 있는 계심, 곧 신의 계획된 불완전 내재는 때때로 설명할 수 없이 명시된다. 이것은 섭리의 작용―최상 존재와 합동 행위자의 분야―임이 틀림없다.


4:1.11 (56.3) 널리 미치고 대체로 파악할 수 없는 이 통제 작용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또 사람과 천사의 이익을 위하여, 잡다한 물리ㆍ지성ㆍ도덕ㆍ영 현상이 한 치도 어김없이 해결되게 만든다고 나는 믿고 싶다.


4:1.12 우주에서 겉보기에 “우연한 사건들”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절대자들을 영원히 조종하는 무한자의 시공 모험에서 벌어지는 드라마의 일부이다.

 

 

 

2. 하나님과 자연

 

4:2.1 (56.5) 좁은 의미에서, 자연은 하나님의 물리적 버릇이다. 진화로 펼쳐지는 유한한 사업들의 지역 목적ㆍ목표ㆍ계획에 따라서, 각 우주ㆍ별자리ㆍ체계ㆍ행성, 그리고 성격자가 나란히 균형되어 행위하는 데 이바지하도록, 하나님은 그의 행동 방식을 수정한다.


4:2.2 예를 들면, 네바돈에서 예비된 하나님의 법칙은 이 지역 우주의 창조 아들과 창조 영이 세운 계획에 따라서 수정된다. 이 모든 것 외에도, 너희의 행성에 살고, 너희의 직계 사타니아 행성 체계에 속하는 어떤 존재들의 잘못, 임무 불이행, 불복종 때문에 이 법칙의 작용은 더 영향을 받는다.


4:2.3 자연은 두 가지 요인이 시공에서 일으키는 결과이다. 첫째는 변함없는 파라다이스 신이요, 둘째는 시공 우주에서 일하는 자들의 불완전한 지혜이다. 자연은 한결같고 불변하고 훌륭하고 놀라운 완전의 실을 영원의 궤도로부터 가져온다. 그러나 각 우주, 각 행성, 각 개인의 생활에서 이 자연은 수정(修正)되고 제한되며, 진화하는 체계 및 우주의 생물이 저지르는 행위와 실수와 불충 때문에 어쩌다가 상처를 입는다.


4:2.4 자연이란 파라다이스의 완전함을 완성되지 않은 우주들의 불완전ㆍ악ㆍ죄로 나눈 결과이다. 따라서 완전한 것과 부분적인 것, 영원한 것과 현세의 것, 양쪽을 표현한다. 진화는 파라다이스의 완전함을 늘이고, 악ㆍ죄ㆍ부조화의 내용을 줄임으로 자연을 수정한다.


4:2.5 하나님은 자연이나, 자연의 어느 물력 속에도 몸소 계시지 않는다. 이는 자연 현상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 보이는 것처럼, 절대로 자연은 전적으로 슬기롭고 무한한 하나님을 적절히 표현하고, 참되게 대표하고, 충실히 묘사할 수 없다.


4:2.6 (57.3) 너희 세계에서 자연은, 지역 우주의 진화에서 완전한 법칙을 제한한 것이다. 한정되고 제한된 의미에서 하나님이 자연에 스며드니까, 한 우주 실험의 발전ㆍ성장ㆍ진보가 아직도 진행되고 불충분하고 어설프게 작용함을 표시한다.


4:2.7 사람의 진화된 지성에게, 신의 물질적 모습에 흠이 있어 보이는 것은, 상물질의 상지혜나 또는 계시의 도움이 없이, 인간의 시력을 통해서, 계속 보기 때문이다.


4:2.8 수많은 생물의 반란, 그릇된 행위, 잘못된 생각으로 말미암아 자연은 다쳤으며, 그 아름다운 얼굴은 상처를 입고 그 모습은 그슬렸다. 자연은 하나님이 아니다. 자연은 경배 받을 대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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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의 변치 않는 성질


4:3.1 (57.6) 너무나 오랫동안, 사람은 하나님을 자신과 비슷한 자로 생각해 왔다. 하나님은 사람이나 온 우주에 있는 어떤 다른 존재도, 시샘하지 않고, 시샘한 적도 없고, 앞으로도 결코 시샘하지 않을 것이다.


4:3.2 영원한 하나님은 인간적 감정의 의미로, 또 사람이 그런 반응을 이해하는 바와 같이, 진노와 분노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한 태도는 우주의 아버지의 완전한 성품과 인자한 성질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4:3.3 유란시아 필사자들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겪는 어려움 중에 상당 부분은, 루시퍼 반란과 칼리가스티아 배반의 영향 때문이다. 죄로 인하여 격리되지 않은 세계에서는 우주의 아버지에 대하여 혼동 ㆍ왜곡ㆍ곡해를 덜 겪으며, 우주의 아버지에 대하여 훨씬 좋은 관념을 형성할 수 있다.


4:3.4 사람의 지혜는 인간 체험의 시행 착오에서 생겨나지만, 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무한한 우주 통찰력이 조건 없이 완전한 데 있다. 그리고 이 신의 선견(先見)은 효과적으로 창조적 자유 의지를 지도한다.


4:3.5 우주의 아버지는 나중에 슬퍼하거나 후회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하지 않는다. 우주의 영적 성취 계획과 필사자 승천 정책에 따라 아낌없는 도움을 받고서도 그의 자녀들이 미치지 못할 때, 아버지의 마음은 슬퍼진다.


4:3.6 (58.4) 아버지의 무한한 선은 시간 세계의 유한한 지성이 이해할 수 없다. 신이 완전히 선한 것은 필사자의 불완전한 통찰력으로 식별될 수 있으며, 이는 오로지 공간 운동에 있는 시간과 물질의 관계에서, 그 선이 상대적 불완전과 대조되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4:3.7 사람의 유한한 머리가 하나님의 성질을 이해하게 만들려면, 신의 성품이 인격화되어 눈으로 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4. 하나님을 깨닫는 것


4:4.1 (58.6) 하나님은 온 우주 전체에서 정지해 있고, 독립되어 있고, 변함없는 유일한 존재이며, 그에게는 바깥이 없고, 지나는 것도 없으며, 또한 과거도 미래도 없다.


4:4.2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니까, 절대로 독립되어 있다. 하나님은 변할 수 없다. 신의 불변성이 움직일 수 없음을 뜻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처럼 그의 절대성의 명시를 수정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의지가 있다―하나님은 바로 의지이다.


4:4.3 하나님은 절대로 스스로 결정하는 존재이다. 오직 본래부터 영원한 그의 성품을 나타내는 신다운 완전한 속성에 따라서, 하나님의 자유 의지 행동이 조절된다.


4:4.4 아버지 절대자는 중앙의 완전한 우주를 지으신 분이고, 모든 다른 창조자의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성격, 선, 그리고 다른 수많은 특징을 사람과 기타 존재들과 함께 가지지만, 무한한 의지는 하나님 홀로 지닌다. 창조 아들들은 하나님의 신성, 아니 그의 절대성 단계까지도 충분히 함께 가지지만, 아들들은 아버지의 무한한 의지를 지도하는 최종의 지혜에 전적으로 제한되지도 않는다.


4:4.5 온 우주에서 삼위일체의 정의는 정밀한 특징을 가졌을지 모르지만, 우주의 하나님이 시간 세계의 인간과 가지는 광범위한 모든 가족 관계는 신의 감정에 지배된다. 나(신성한 조언자)는 하나님을 우주의 아버지로 묘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4:4.6 (59.2) 우주의 인간 성격자들과 가지는 모든 개인적 관계에서, 첫째 근원 중심은 언제나, 한결같이 사랑의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가장 고귀한 의미에서 아버지이다. 하나님은 신의 사랑의 완전한 이상에 영원히 자극 받으며, 사랑을 주고 받는 것이 그 부드러운 성품의 가장 좋은 표현이요, 거기서 가장 큰 만족을 얻는다..


4:4.7 과학에서 첫째 근원과 철학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가, 종교에서 하나님, 곧 자비와 선이 가득하고 지상의 자녀들이 영원히 살아남게 만들기를 서약한 하나님인 것을 보여주는 데는 계시가 필요하다.


4:4.8 우리는 무한자 개념을 몹시 바라지만, 하나님을 체험한다는 생각, 곧 우리의 가장 높은 신 개념의 성격 및 신성 요소를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파악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존중한다.


4:4.9 인간적 한계인 끔찍한 광경에 부딪쳤을 때, 그 믿음은 “나는 이를 할 수 없어도, 이를 할 수 있고 또 하실 분, 온 우주의 아버지 절대자의 일부가 내 안에 사신다” 하고 어김없이 외친다. 바로 이것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 너희의 믿음조차 이기는 승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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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에 관한 그릇된 관념


4:5.1 (59.6)
종교적 전통은 지난 시대에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의 체험이 허술하게 보존된 기록이다. 이러한 기록은 종교 생활의 안내서로 믿을 만하지 않다.


4:5.2 하나님의 성품에 관하여 유란시아에서 생긴 혼란의 가장 큰 근원 중의 하나는, 너희의 거룩한 책들이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성격자들을 뚜렷이 구분하지 못하고, 또 파라다이스 신과 지역 우주의 창조자 및 행정가들을 뚜렷이 구별하지 못하여 생겨난다. 부분적으로 이해했던 과거의 섭리 시대에, 너희의 사제와 선지자들은 행성 영주, 체계 군주, 별자리 아버지, 창조 아들, 초우주 통치자, 최상 존재, 우주의 아버지를 뚜렷이 구별하지 못했다. 아직도 우주의 아버지를 한 이름 안에 포함시키고 있다.


4:5.3 유란시아의 사람들은 원시적 하나님 개념의 영향에 계속 시달린다. 폭풍 속에서 날뛰는 신들, 진노하여 땅을 잡아 흔들고, 성이 나서 사람을 치고, 기근과 홍수가 있을 때 불만으로 심판을 내린다―이것들은 원시 종교의 신이요, 살아 있고 우주를 다스리는 신들이 아니다. 그러나 최상 창조자와 최상 통제자들의 행정 정책과 운영에 관한 한, 필사 인간은 자기가 비교적 질서 있는 영역에서 산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4:5.4 하나님이 인류에게 성을 냈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을 구슬리고 기분 상한 주를 달래려고 애쓰며, 희생물을 바치고 고행함으로 신의 은혜를 얻으려고, 또는 가상하는 신의 노여움을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해서, 죄 없는 자의 피를 흘려야 한다고 믿거나, 우기거나,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욕이다.


4:5.5 히브리인은 "피를 흘리지 않고는 죄가 용서될 수 없다"고 믿었다. 모세가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금하고, 이를 대신하여 동물을 잡아바치는 예식으로 갈아치웠을 때, 모세는 뚜렷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4:5.6 (60.5) 너희 세계에 한 파라다이스 아들이 수여되는 것은, 행성에서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상황에 본래 있다. 이 수여는 자기 우주의 체험적 통치권을 얻는 긴 모험에서, 우연히 한 창조 아들이 마지막으로 친히 하신 활동이었다. 흠없는 아들이 갈보리의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어가는 것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마음이 누그러지지 않았다고 가르치다니! (하나님을 그렇게 고약한 분으로 생각지 말라.)


4:5.7 하나님에 관한 진리의 계시가 다가오고 있다. 인류는 유란시아에서 사람의 아들이자 하나님의 아들로서 머물렀던 창조 아들이 그렇게 훌륭하게 묘사한, 모든 아름다운 성질과 사랑스러운 속성을 가진 우주의 아버지를 이해하도록 예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