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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은 우주를 직접 다스릴까?


* 하나님이 우주를 직접 다스리지
않는다면 필사 인간들이 거주하는
여러 행성들을 어떻게 다스리나?

* 유란시아의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은
누구인가?

 

창조아들

 

 

제 3 편 하나님의 속성

 

.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 1934년

 

3:0.1 (44.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우주의 아버지는 영원의 궤도를 다스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역우주를 통치하는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들을 통해 다스린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고, 이 생명은 그의 아들들 안에 있도다.” 하나님의 이 창조 아들들은 여러 행성의 자녀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몸소 표현한 것이다.


3:0.2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의 존재를 계시한 것이다. 파라다이스 신들의 절대성과 무한성 때문에 아버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3:0.3 창조자 신분은 도저히 하나님의 속성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신분은 하나님의 행동하는 성품의 집합이다. 창조자 신분의 이 보편적 기능은, 첫째 근원 중심의 무한하고 신성한 실체의 모든 조정된 속성에 제약을 받고 통제되어 영원히 명시된다.

 

 

 

 

 

 

 

 

 

 

 

 

 

 

 

 

 

 

 

 

 

 

 

 

 

 

 

* 지성 : 일곱보조 지성 영 중,
특히 예배의 영과 지혜의 영의
작용. 결국 개인 스스로의 선택이다.

 

* 유란시아 세계 속에서 필사 인간이
의식할 수 있는 칠중신은 미가엘 예수,
우리 지역우주의 군주이다.

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신다


3:1.1 (44.4) 하나님 혼자서 두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장소에, 동시에 계실 수 있다. 시편(詩篇)의 저자가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주가 계신 앞에서 어디로 달아나리이까?” 외쳤듯이, 하나님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동시에 계신다.


3:1.2 하나님이 모두이고, 그가 모든 것 안에 계신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 참말이다. 그러나 이것조차도 하나님의 전부는 아니다. 무한자는 오직 무한 속에서 마침내 드러날 수 있으며, 결코 결과를 분석한다고 원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속박을 받지 않는 그의 자유 의지 창조 활동의 결과로 생긴, 그 창조의 총합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은 측량할 수 없이 크다. 하나님은 우주에 두루 계시지만, 그 우주는 결코 무한한 하나님 전체를 담거나 둘러쌀 수 없다.


3:1.3 아버지의 계심은 끊임없이 총우주를 순회한다. “주는 하늘 끝에서 출발하시고, 하늘의 저 끝까지 순회하시니라. 아무것도 그의 빛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도다.”


3:1.4 인간은 하나님 안에 존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은 또한 인간 속에서 산다. “참된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으니, 그는 우리의 일부요, 그의 영은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니라. 그는 영원한 운명을 안내하는 영이로다”


3:1.5 죄를 저지를 때에도 너희는 깃드는 하나님의 선물을 괴롭히는데, 그가 인간 지성 속에 갇혀 있고 그 지성과 함께 생각 조절자가 악한 생각의 결과를 반드시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3:1.6 (45.4) 하나님의 두루 계심은, 실제로 그의 무한한 성품의 일부이다. 공간은 신에게 전혀 장벽이 되지 않는다. 우주의 아버지의 계심과 그의 영원한 동위자(同位者) 및 대리자들의 활동을 반드시 구별할 수는 없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불변하는 필요 조건을 모두 완벽하게 수행한다. 다만 성격 회로와 조절자는 직접, 아버지 혼자서 활동한다.


3:1.7 첫째 근원 중심은 무제한 절대자 안에 잠재적으로 계시며, 이 절대자는 영원한 미래 우주, 아직 빚어지지 않은 우주의 저장소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과거ㆍ현재ㆍ미래의 물리적 우주를 잠재적으로 침투한다.


3:1.8 첫째 근원 중심이 합동 행위자의 지성 회로에 잠재적으로 계신 것 같이, 그는 우주 절대자의 긴장 속에 잠재적으로 계신다. 그러나 인간 서열의 지성은 합동 행위자의 딸, 곧 진화 우주의 신성한 봉사자가 수여한 것이다.


3:1.9 어디에나 계시는 영, 우주의 아버지의 영은, 영원한 아들의 보편적 영 계심의 작용, 그리고 신 절대자의 영구한, 신의 잠재성과 함께 조정된다. 영원한 아들 및 그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영적 활동이나, 무한한 영이 지성을 수여하는 것도 생각 조절자의 직접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 듯하며, 조절자는 자녀인 인간의 마음 속에 깃드는 하나님의 분신이다.


3:1.10 행성이나 별자리나 지역 우주에 하나님이 계신 것은 최상 존재의 진화하는 계심이 어느정도인가를 재는 척도가 된다. 이것은 광대한 우주 조직 편에서, 대규모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바치는 것으로 결정된다. (루시퍼 반란처럼) 어떤 행성이나 체계가 암흑에 빠질 때, 지역 우주에 하나님의 계심을 보호하기 위하여 상위의 창조 단위와 교제하는 것이 차단된다. 이 모든 것은 유란시아처럼 대다수의 세계들이 고립되는 것을 막기 위한 영적 방어 반응이다.


3:1.11 (46.3) 아버지는 부모로서 그의 자녀들을 자신의 성격 회로로 연결하지만,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신의 둘째 분과 셋째 분의 기원 존재들의 영향에 따라 확대된다. 인간의 지성 속에 하나님이 계신 사실은, 아버지 분신인 조절자가 깃드는가, 그렇지 않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하나님의 실질적 계심은, 지성이 조절자와 얼마나 협조하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3:1.12 아버지의 계심이 변동하는 것은 하나님이 변하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죄를 짓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멀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신의 마음과 혼 속에서 아버지의 신성한 영향이 미치는 정도와 한계를 직접 좌우한다. 아버지는 제한 없이, 그리고 차별 없이, 자신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셨다. 시간 구역에서 아버지는 오직 칠중 신을 구성하는 파라다이스 성격자들에게 다른 영예를 수여하며, 그들은 유한한 우주들을 지은 동급의 창조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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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의 무한한 힘

3:2.1 (46.5) “전능한 주 하나님이 군림하심”을 온 우주가 알고 있다. 이 세계와 기타 세상의 사무는 신성하게 감독을 받는다.


3:2.2 민족과 행성과 우주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겪는 진화 과정은 지역 우주 창조자 및 행정가의 완전한 통제를 받으며, 우주의 아버지의 영원한 목적에 따라 펼쳐지고 조화되고, 질서 있게 하나님의 전적으로 슬기로운 계획에 따라서 진행된다.


3:2.3 신의 모든 속성 가운데, 특히 그의 전능하심이 물질 우주를 지배하니까, 사람들은 전능(全能)을 가장 잘 이해한다. 비영적 현상으로 볼 때, 하나님은 에너지이다. 첫째 근원 중심 행동으로부터 모든 물리적 에너지와 기타 물질적 명시가 파생된다. 빛, 열이 없는 빛은, 신들의 또 다른 비영적 표현이다. 그리고 유란시아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비영적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아직까지 인식되지 않았다.


3:2.4 하나님은 모든 힘을 통제한다. 모든 형태의 에너지와 물질은 하나님의 영구한 손아귀에, 아래 파라다이스에 집중되는 인력 통제에 붙들려 있다. 영원한 하나님의 빛과 에너지는 이처럼 그의 웅장한 회로 둘레를 언제까지나 돌며, 이것은 온 우주를 구성하는 별 무리의 행렬, 끝이 없지만 질서 있는 행렬이다. 모든 사물과 존재의 파라다이스 성격 중심을 모든 우주가 영원히 돈다.


3:2.5 영원의 궤도에서 물질 에너지, 지성 에너지, 영 에너지, 이 세 가지는 아버지와 구별할 수 없다. 그렇게 명백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지성은 파라다이스의 일력(一力)도 파라다이스의 영도 아니니까, 우주의 아버지에 대하여 직접 반응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불완전한 지성에게 생각 조절자를 통해 조절한다.


3:2.6 (47.4) 우주의 아버지는 일시적 물력이나 바뀌는 힘, 또는 변동하는 에너지가 아니다. 아버지의 힘과 슬기는 우주의 어떤 긴급 사태도, 이 모두를 이겨 나가기에 전적으로 넉넉하다.


3:2.7 긴급 판결이 내리고, 자연 법칙이 중단되고, 그릇된 적응이 인지되고, 그 상황을 시정하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인 듯한 상황이 일어나기는 한다. 그러한 하나님 개념은, 네 관점의 범위가 제한되어 있고, 너의 이해력이 한계로 인해 생긴다.


3:2.8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목적이 있고 총명하며, 현명하고 친절하며, 영원히 최선을 고려한다. 반드시 한 개인 존재나, 개별 민족이나, 개별 행성, 아니 개별 우주의 최선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낮은 자로부터 가장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관계된 모든 자의 복지와 최선을 위한 것이다. 시간 시대에는 부분의 복지가 때때로 전체의 복지와 다른 듯 보일지 모르지만, 영원의 궤도에서 그렇게 명백한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3:2.9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가족의 일부이며, 따라서 가끔 가족 훈련을 함께 해야 한다. 결코 그르칠 수 없는 의지의 선택을 집행하기 위하여, 완전한 성격자이신 하나님은 합동 행위자에게 권한을 부여한다. 완전한 성격자의 조사ㆍ선견ㆍ염려는 광범위하고 방대한 모든 창조의 영원한 최대 복지를 포함한다.


3:2.10 상당히 유물주의인 너의 관점, 그리고 네 존재의 성품에 본래부터 있는 한계가 너무 장애가 되어서, 너는 신의 많은 행위에 담긴 지혜와 친절을 보거나, 이해하거나, 깨달을 수 없다. 너는 신의 행위가 잔인하고, 철저히 무관심하는 듯이 보인다. 네가 하나님의 동기를 오해하고 그 목적을 왜곡하는 것은 인간의 선견이 한정되었기 때문이요, 너의 견문이 제한되고 이해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가 친히 행하지 않는 많은 일이 진화 세계에서 일어난다.


3:2.11 (48.3) 하나님의 힘이 우주에서 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보통 세 가지 상황에 따라 제한을 받는다:


3:2.12. 1.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특히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성품에 따라서,

3:2.13. 2. 아버지의 우주 성격자인 아들들을 통해 자비를 베풀려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3:2.14. 3. 삼위일체의 공정함과 정의에 따른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서.


3:2.15 우주의 아버지의 이 모든 특징은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서 통일되고, 삼위일체의 신다운 아들들 속에서 보편적으로 표현된다. 중앙 우주의 바깥에서 최상위의 진화적 계심이 제한하며, 궁극위의 궁극에 이르는 계심이 조절하고, 실존적인 세 절대자―신 절대자, 우주 절대자, 무제한 절대자―가 조정한다.

 

 

 

 

3. 하나님은 만물을 아신다

3:3.1 (48.8)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신다.” 신의 지성은 모든 창조의 생각을 의식하고 또한 알고 계신다. 사건들에 관한 하나님의 지식은 전반적이고 완전하다. “네 머리에 있는 바로 그 머리털의 수도 계산되었도다.”


3:3.2 우주의 아버지는 공간에 있는 별과 행성의 수를 실제로 아는, 온 우주에서 유일한 분이다. 인간의 자녀는 누구나 말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앉고 일어서는 것을 아시며, 멀리서 우리의 생각을 이해하고, 우리의 길을 모두 아시니라.” “만물이 벌거벗었고, 우리가 상관해야 하는 분의 눈에 열려 있도다.” 그리고 “그는 너의 뼈대를 알고, 네가 티끌인 것을 기억하시니라,” 이를 이해하는 것이 어떤 인간에게도 위로가 될 것이다.살아 계신 하나님을 언급할 때, 예수는 말씀했다: “너희의 아버지는 너희가 청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니라.”

3:3.3 하나님은 만물을 아는 무제한 능력을 소유하며, 모든 것을 의식한다. 그의 성격 회로는 모든 성격자를 포함하고, 인간에 관한 그의 지식은 간접으로내려오는 계열의 신다운 아들을 통해서, 깃드는 생각 조절자를 통해서 직접 보충된다. 더군다나 무한한 영은 항상 어디에나 계신다.


3:3.4 하나님이 죄가 일어나는 사건을 미리 알기를 선택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는 온통 확실하지는 않다. 그러나 미리 안다 하더라도, 그러한 선견은 그들의 자유를 털끝만큼도 간섭하지 않는다.

3:3.5 전능은 할 수 없는 것, 즉 신답지 않게 행위하는 힘을 의미하지 않는다. 전지도 알 수 없는 것을 안다는 의미가 아니다. 인간은 창조자의 의지가 미치는 테두리와 한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4. 하나님은 한계가 없다

3:4.1 (49.5) 우주들이 생겨남에 따라 연속하여 자신을 수여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의 잠재성이나 지혜의 저장을 전혀 줄이지 않는다. 파라다이스 아들들, 그에 종속된 여러 우주, 그리고 거기에 있는 다양한 생물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수여한 결과로서, 아버지는 소유한 물력ㆍ지혜ㆍ사랑의 잠재성을 결코 조금도 줄인 적이 없고, 그의 영화로운 성격의 어떤 속성도 잃어버린 적이 없다.


3:4.2 새 우주를 창조할 때마다 새로운 인력의 조정이 요구된다. 한계 없는 우주에 그지없는 물력과 힘을 이처럼 부여한 다음에, 무한자는 여전히 똑같은 정도의 물력과 에너지로 넘치게 충전되어 있을 것이다. 무제한 절대자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은 채로 있을 것이요, 마치 물력과 에너지와 힘을 허다한 우주 재산에 결코 쏟은 적이 없는 것처럼, 하나님은 여전히 똑같이 무한한 잠재성을 가지고 계실 것이다.


3:4.3 지혜도 마찬가지다: 지성이 그 영역의 생각 과정에 아주 아낌없이 분배된다는 사실은, 전혀 신의 지혜의 중심 근원을 빈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3:4.4 하나님이 보낼 수 있고 보내도 좋은 그러한 영 훈계자의 범위나 숫자에도 절대로 아무 제한이 없다. 이처럼 자신을 인간에게 주는 것은, 신성하게 자질을 받은 이 필사자가 점진적으로 연속하여 존재할 수 있는, 한없고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미래 가능성을 만들어낸다. 자신을 이처럼 무한히 분배하는 것은, 온통 슬기롭고 전지ㆍ전능한 하나님의 몸 안에 머무르는 슬기, 완전한 진리와 지식을 어떤 방법으로도 줄이지 않는다.


3:4.5 시간 세계의 필사자에게는 앞날이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에 거하신다. 신의 여러 속성이 무한한 것에 관하여, 나는 주제넘게 완전히 이해하고 말할 수 없다. 오직 무한한 지성이 무한한 존재와 영원한 행위를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3:4.6 (50.4)필사 인간은 하늘 아버지의 무한함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유한한 지성은 그러한 절대 진리나 사실을 꿰뚫어볼 수 없다. 그러나 바로 이 유한한 인간은, 그러한 무한한 아버지 사랑의 영향, 충분하고 줄어들지 않은 영향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이것은 인간의 영적 감수성의 차이, 하나님의 뜻에 응답하여 아버지를 사랑하는 능력에 따라 엄격히 제한된다.


3:4.7 하나님께 다가가는 가장 귀중한 방법은 사랑으로 접근하는 것이니, 하나님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독특한 관계는 우주의 사회학에서 사실적 체험이다, 창조자와 인간의 관계이다 ―아버지와 자식 사이의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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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힘든 상황에서도 건전한 인품이
자라는가?


2. 불공평한 상황에서도 동료에게
이타심을 발휘할 수 있는가?


3.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가?


4. 아주 큰 어려운 곤경에 빠진경우에도
믿음이 살아있는가?


5. 잘못된 세상에 직면해 있을 때
진리가 이끄는데로 기꺼이 갈 것인가?


6. 신다운 것에 접근하려고 늘
싸워야 한다.


7. 배반당하고 버림받을 수 있는 상황
에 있어도 충성할 수 있는가?


8. 세속적인 욕심을 버려야만 신다운
삶을 택할 수 있다.


9.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얻는 기쁨이
진정한 기쁨이다.

5. 아버지의 최상 통치


3:5.1 (50.6) 하보나 이후에 생긴 창조들과 연락하는 것은 아버지가 직접 하지 않고, 그의 아들 및 하위 성격자들을 통해서 연락한다. 하나님은 이 모두를 자신의 자유 의지로 하신다. 위임받은 성격자가 하나님이 맡긴 임무를 이해하지 못할 때, 아버지는 자신이 직접 의지를 행사하신다. 유보된 신의 권능과 잠재성의 한계 안에서, 아버지는 따로 행동하고, 스스로가 선택한 지시에 따른다. 그 선택은 언제나 어김없이 완전하고, 무한히 슬기로운 선택이다.


3:5.2 아버지는 그의 아들들을 통해서 다스린다. 우주 조직을 통해서 밑에까지 끊어지지 않은 일련의 통치자들이 있는데, 이것은 행성 영주에서 끝나며, 이들은 아버지의 광대한 영토에서 진화하는 구체들의 운명을 지도한다.


3:5.3 우주의 아버지는 반드시 뜻대로 못할지 모르지만, 한 행성의 운영과 운명의 경우에 신의 계획이 지배하며, 지혜와 사랑의 목표, 영원한 목표는 승리를 거둔다.


3:5.4 예수는 이렇게 말씀했다: “저희를 내게 주신 내 아버지는 누구보다 크시며, 아무도 아버지의 손에서 저희를 뺏앗을 수 없다.” 너희는 하나님이 제일 먼저라는 개념에 멈칫할지 모른다. 하나님이 만물의 파라다이스 중심에서, 확실하고 영구하게 보좌에 앉아 계시고 모든 지적 존재의 은혜로운 아버지인 것을 너희가 받아들이지 못하면 안 된다.


3:5.5 (51.4) 진화 인간의 생명은 불가피한 것들에 시달린다.


3:5.6. 1. 용기―건전한 인품―은 바람직한가? 어려움에 부딪치고 실망을 이겨야 하는 환경 속에서 자라야 한다.


3:5.7. 2. 이타심―동료에게 봉사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인생의 체험이 사회의 불공평한 상황에 부닥치게 만들어야 한다.


3:5.8. 3. 희망―큰 신뢰―는 바람직한가? 불안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늘 부딪쳐야 한다.


3:5.9. 4. 믿음―인간의 생각을 최고로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사람의 지성은, 아는 것보다 믿음의 범위에서 더 큰 어려운 곤경에 빠져야 한다.


3:5.10. 5.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가 이끄는 데로 어디든지 기꺼이 가려는 마음은 바람직한가? 잘못이 있는 세상에 직면해야 한다.


3:5.11. 6. 이상주의―신다운 것에 가까이 가는 개념―은 바람직한가? 사람은 비교적 선하고 아름다운 환경 속에, 더 나은 것을 향하도록 자극하는 환경 속에서 싸워야 한다.


3:5.12. 7. 충성―최고의 의무에 헌신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배반 당하고 버림 받을 가능성이 있는 세상에서 견디어야 한다.


3:5.13. 8. 사심 없는 태도―자기를 잊는 정신―는 바람직한가? 인정받고 싶고 명예를 받고 싶은 자아의 소리를 외면해야 한다. 버려야 할 자기 생활이 없다면, 신다운 생활을 택할 수 없다.


3:5.14. 9. 기쁨―행복으로부터 얻는 만족감―은 바람직한가? 사람은 고통스러운 다른 길과 고통받을 가능성을 늘 체험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아야 한다.


3:5.15 하보나 우주에는 완전한 거주민이 사는 완전한 세계가 10억개 있다. 그러나 자유를 누리려면 진화 인간은 틀릴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자유롭고 경험이 없는 지적 존재는 처음에 도저히 한결같이 지혜로울 수 없다. 오로지 인간의 의지가 일부러 비도덕적 판단을 의식하면서 지지하고, 알면서 고를 때에야 잘못된 판단(악)의 가능성이 죄가 된다.


3:5.16 (52.2) 완전한 신성한 우주에는 누구나 본래부터 진리ㆍ아름다움ㆍ선을 충분히 이해한다. 하보나 세계들의 거주민에게는 비교가 되는 가능한 여러 가치 수준이 필요 없다. 대조되고 생각을 강요하는 모든 도덕적 상황이 없어도 선을 찾아내고 선을 고를 수 있다. 인간의 머리가 파악하고 인간의 혼이 얻는 신다운 것은 무엇이나 체험으로 얻은 것이다. 그것은 몸소 체험하는 실체이며, 따라서 잘못이 없는 하보나 인격자의 선천적 선과 올바름과 반대로, 독특한 재산이다.


3:5.17 하보나의 인간들은 용감하게 타고났지만, 사람다운 의미에서 용감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우주가 안정되어 있음을 믿지만, 필사 인간을 동물의 지위로부터 파라다이스 문 앞까지 올라가게 하는 유익한 신앙을 도무지 모른다. 그들은 이상주의자이지만, 환희에 이르는 선택으로 이상주의자가 되는 최고의 기쁨을 도무지 알지 못한다. 충성스럽지만, 불이행의 유혹에 부딪쳐서, 마음을 다하여 총명하게 의무에 헌신하는, 떨리는 기쁨을 결코 맛본 적이 없다. 그들은 사욕이 없지만, 싸우기 좋아하는 자아를 당당하게 정복하는 체험을 얻은 적이 없다. 그들은 쾌락을 즐기지만, 고통 받을 뻔했다가 달아나는 기쁨이 얼마나 단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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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버지의 수위성

 

3:6.1 (52.4) 신으로서 사심없이 우주의 아버지는 권한을 버리고 권력을 넘겨주신다. 그래도 아버지는 제일 먼저이다. 하나님은 창조의 복지와 운명에 대하여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권한으로, 그의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전능한 거부권을 어김없이 행사한다.


3:6.2 우주는 어쩌다가 생기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지도 않는다. 우주는 지은 작품이요, 따라서 창조자의 뜻에 통째로 지배된다. 하나님의 뜻은 신성한 진리요, 살아 있는 사랑이다. 우주는 하나님이 지은 작품이요, 따라서 창조자의 뜻에 통째로 지배된다.


3:6.3 모든 종교 철학은, 시간이 지나면, 유일한 하나님이 우주를 통일하여 다스린다는 개념에 도달한다. 인간의 지성은 우주의 아버지가 현실임을 인정하지 않고서 도덕적 존재인 인간을 설명할 수는 없다.


3:6.4 기계론적 철학자는 보편적 최고의 의지가 있다는 관념을 거부한다고 공언하며, 최고 의지의 작용을 깊이 숭배한다. 그 기계론자는 그 법의 창조자에게 영문도 모르고 얼마나 존경을 표하는가!


3:6.5 사람에게 깃드는 생각 조절자의 개념을 제외하고, 하나님을 인간처럼 여기는 것은 큰 잘못이다.


3:6.6 (53.4)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고통을 받는가? 나는 모른다. 창조 아들은 필사자처럼 고통받을 수 있는 것이 아주 확실하고, 때때로 고통받는다. 영원한 아들과 무한한 영은 다른 의미에서 고통을 받는다. 그는 필사 민족들에 관하여 이르셨다, “너희가 어떤 고통을 받아도 내가 고통을 받노라.” 의문할 여지 없이, 그는 아버지답게, 동정하는 느낌을 가진다. 그는 참으로 고통받는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고통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3:6.7 하나님은 성격 존재이며, 최고의 의지를 행사하고, 신(神)의 자의식을 체험하며, 창조 지성이 내리는 명령을 실행하고, 영원한 목적을 이루는 만족감을 추구하며, 우주에 있는 자녀들에게 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을 보인다. 개인적인 아버지의 이러한 특성은, 미가엘, 곧 너희 창조 아들이 유란시아에서 육신화했을 때 그의 수여 생애에서 드러난 특성을 살펴봄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3:6.8 아버지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고, 아들 하나님은 사람에게 봉사한다. 영 하나님이 베푸는 은총을 통해서 신의 아들들이 예정한 방법으로 아버지 하나님을 찾는 모험, 늘 올라가는 모험을 하라고 영 하나님은 우주의 자녀들에게 영감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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