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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1부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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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하나님의 본성

 

. 신성한 조언자
. 1934년


2:0.1
신(Deity)의 특성을 구성하는 신성한 본질의 어떤 특징을 연구할 때, 네바돈의 미가엘(Michael of Nebadon)이 육신을 입은 그의 훌륭한 필사 삶에서 펼쳐진, 아버지를 계시한 것을 통해 하나님의 본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고, 파라다이스 창조자를 참된 영적 아버지로 우러러본다면, 신성한 본성 또한 더 잘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신성한 본성에 대한 모든 계시들 중에서 가장 우리를 깨우치고 영적으로 교화시키는 것은 나사렛 예수( Jesus of Nazareth)가 자신의 신성에 대한 완전한 의식을 성취하기 전과 후에, 그가 보여준 모든 종교적 삶을 이해하는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우주의 아버지가 수여한 조절자창조 아들의 진리의 영이 필사 지성 속에 깃들지 않았다면, 하나님 개념을 키우려는 우리의 온갖 노력은 무익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개념의 확대를 돕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 속에 신성한 이 영이 계신 것을 믿고서, 하나님의 본성을 인간의 지성에게 더 묘사해 보라는 명령을 나는 즐겁게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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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한한 하나님

2:1.1 우리는 “무한자(Infinite)와 접하지만, 그를 발견하지 못한다. 비천한 생명존재들에게는 아버지가 “짙은 어둠 속에서 사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이 땅 위에 거하시겠느냐? 보라 하늘 (우주)과 하늘들의 하늘이 (우주들의 우주) 그를 담을 수 없다.” “그의 판단은 헤아릴 수 없고, 지나간 그의 길은 찾을 길이 없다!”

“무한자(Infinite)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나누어주시니, 그 무한함이 가장 뛰어 나시다. 그는 시작과 끝이요, 모든 선함과 완전한 목적을 가지신 아버지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신성한 동위자들을 제외하고, 체험하는 완전한 분이며, 참되고, 스스로를 완전히 평가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우주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끝을 보시며, 그의 신성한 계획과 영원한 목적은 그의 광대한 영토의 모든 우주들, 모든 세계들, 체계들, 별자리들에서 자신의 모든 하위 존재들이 겪는 모든 연구와 모든 모험을 실제로 받아들이고 이해한다.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 모든 시간이 주어진 순간에 존재한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유일하게 스스로 존재한다.

2:1.6 우주의 아버지의 모든 속성은 절대로,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하다. 이 사실은, 그 자체로서 저절로, 유한한 물질 존재와 기타 낮게 창조된 지적 존재들과 직접 친히 교통할 수 없게, 자동으로 자신을 차단한다.

다양한 생명존재들과 접촉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주선하셨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예수의 경우처럼) 체험을 겪는다. 둘째로, 천사 무리와 기타 존재들이 사람들에게 시중들고 봉사한다. 셋째로, 하나님이 직접 생각 조절자를 선물로 주셨다.

여러 방법으로 인간의 유한한 지성에게 가까이 가려고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내려오면서 그의 무한성을 수정하고, 묽게 하고, 희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절대성이 줄어들면서 방대한 우주의 여러 영역에 있는 다양한 지적 존재들과 가까운 접촉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가 무한 영원하고 첫째라는 사실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해왔고, 지금도 하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2:1.10 우주에서 진보하는 연속된 단계에서 생명존재의 상승 계획이 진행되는 것과 관련하여 아버지의 목적들이 드러남에 따라서 필사 인간은 그 목적을 이따금, 여기저기에서 얼핏 볼 수 있다. 무한한 아버지는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자녀의 유한함을 아주 확실히,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싼다.

성격의 무한성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성격의 유한성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버지 안에서 살고 움직이며, 우리의 존재를 가진다” 고 선언하는 가르침은 진실―글자 그대로 진리―이다. 필사 인간에게 깃드는, 우주의 아버지의 순전한 분신, 신의 그 분신은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 곧 가장 높은 아버지의 무한성의 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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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2:2.1 아버지는 말씀하시기를: “나의 권고는 늘 유효하다; 내 아들(Son) 안에서 내가 뜻한 모든 영원한 목적에 따라, 나는 나의 기뻐하는 모든 일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첫째 근원 중심의 계획과 목적은 그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우주의 아버지는 지혜와 완전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의 계획은 견고하고, 그의 권고는 바뀔 수 없으며, 그의 행동은 신성하고 잘못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의 반응이, 겉보기에, 겉으로 바뀔지 모르지만, 그 표면 밑에, 바깥으로 나타나는 모든 표현 밑에, 영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 영구한 계획이 여전히 있다.

중앙 우주, 특히 파라다이스에서, 완전은 묽어지지 않고 어떤 단계에서 절대적이기도 하다. 삼위일체가 나타나는 모습은 신성의 완전함을 다르게 펼쳐 보이지만 묽게 만들지 않는다.

공간 세계의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계획 전체가, 파라다이스에서 아버지의 완전함을 함께 체험하는 높은 운명으로, 의지를 가진 모든 생명존재를 높이 올리는 신성한 목적에 중점을 둔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않고, 독립되어 있지도 않다. 그는 광대한 온 우주에서 자의식을 가진 모든 생명존재에게, 결코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주신다.

2:2.6 모든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이 짓는 진화 우주에서 투쟁하는 어떤 인간이 겪는 어떤 불완전한 체험도, 하나님은 함께 의식한다.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 전체의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 생애에서, 미숙하고 불완전한 특징을 가진 체험에 실제로 참여한다.

인간의 한계, 악의 잠재성은 신성한 본성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필사자가 겪는 악의 체험, 그리고 사람과 악의 관계는 모두, 시간 세계 자녀들의 도덕적 책임 속에서 아주 확실히, 늘 확대되는 하나님의 자아 실현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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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공정과 의로움

2:3.1 하나님은 의롭다; 그러므로 그는 공정하다. “주(Lord)는 모든 면에서 의롭다.” “주의 판단은 참되고 완전히 의롭다.” 우주 아버지의 공정은 그의 생명존재들의 행동과 수행들에서 영향을 받을 수 없다

무한한 지혜는 어떤 주어진 경우에 내릴 정의와 자비의 비율을 영원히 중재한다. 마음을 다하여 죄를 지은 마지막 결과는 소멸이다. 죄의 편을 드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괴해 왔다.

존재의 정지는 섭리 시대나 새 시대의 판결이 있을 때 공포된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 이 판결은 행성의 한 섭리 시대 끝에 온다.  행성 회의로부터 아들 창조자의 법정을 거쳐서,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재판소에 이르기까지, 사법권을 가진 모든 법정이 나란히 행동함에 따라서, 존재의 정지가 그런 때에 공포될 수 있다.

이 선고가 마지막으로 확인될 때, 그 존재들은 우주 잠재성으로 돌아가 분해된다. 성격은 창조의 대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최상 존재의 진화 체험을 일부가 된다. 그 신분은 마치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된다. 조절자의 경우, 그 경험적 영의 가치는 계속하는 조절자의 실체 속에서 살아남는다.

순전한 죄, 완전한 잘못, 고의적인 죄, 완전한 부정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자동으로 자살 행위이다. 그러한 우주의 실체없는 태도는 오직 일시적인 자비 때문에 - 공정한 판단이 있을 때까지의 관용 - 공정을 결정하기까지― 의로운 판결의 우주 법정 메카니즘을 찾을 때까지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2:3.6
지역 우주에서 창조 아들들(Creator Sons)의 통치는 사람을 창조하고 영성화(靈性化)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애정 어린 노력이 마침내 모두 영원히 거부될 때,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Ancients of Days)의 사법권 아래에서 활동하는 세력들에 의해 이 소멸하라는 최종 결정이 집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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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성한 자비


2:4.1 자비는 간단하게 지식의 완전함과 유한한 생명존재들의 환경적인 장애와 본성의 약점에 대한 충분한 인식해서 생기는 지혜에 의해 조절된 공정이다. “주(Lord)의 자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다다른다.”; 그렇다, “그의 자비는 영원하다.”

하나님은 본래 친절하고 자연히 동정심이 많고, 언제까지나 자비롭다. 결코 그의 자애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나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아시므로 쉽게 용서하신다. 사람은 이웃을 이해하면 할수록 이웃을 용서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것도 점점 쉬워진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그의 우주에 있는 자녀들을 향한 갈등으로 결코 고통을 받지 않는다. 모든 것을-알고 계신 하나님은 모든 신성한 속성과 그의 영원한 본성의 무한한 성질이 요구하는 것을 완전히, 동시에, 똑같이 만족시키는 우주 행위를 선택함에 있어서, 그의 자유의지를 직접 행하신다.

자비는 선과 사랑에서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산물이다. 사랑을 베푸시는 아버지의 선한 본성은 우주에 있는 그의 자녀들의 모든 집단의 각 구성원에게 지혜롭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아까워할 수가 없다.

2:4.5 신성한 자비는 완전과 불완전 사이의 우주 단계에서 공평한 조정 기법을 나타낸다. 자비는 최상위의 공정이 적용된 것이다. 자비는 공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니다. 자비는 시간과 공간의 창조의 다양한 지적 존재들 위에 머물러서 지혜롭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베푸는 파라다이스 삼위일체의 공정이며, 우주의 아버지와 그와 연관된 창조자(Creators)들의 신성한 지혜로 확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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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의 사랑

2:5.1 “하나님은 사랑이다.”; 그러므로 우주 문제에 대하여 그가 친히 가지는 유일한 태도는 항상 신성한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아버지는 그의 생명을 우리에게 줄 만큼 우리를 넉넉히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인간의 지성(mind) 속에 깃들라고 보내는 놀라운 조절자는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 반응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다; “누구든지 하나님께로 올 수 있다.” “진리를 알게 됨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신다,”

창조자(Creators)들은 사람들이 신성한 법칙들을 어리석게 위반함으로써 생기는 비참한 결과로부터 그들을 구하려고 가장 먼저 애쓰시는 분들이다. 심지어 너희의 불같은 시련 속에서도, “우리의 모든 고난 속에서 그는 우리와 함께 고통을 받는다." 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은 죄인에게 신답게 친절하다. 반역자들이 옳은 길로 돌아설 때, 이들을 자비롭게 받아들이며, “우리의 하나님이 풍성하게 용서하시기 때문이다.”

네가 찾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깃드는 영이 이끄는 대로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 앞에 네가 마침내 설 때까지, 너는 어김없이 안내를 받는다.

2:5.6
네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너와 하나님 사이에는 건너야 할 멀고 먼 물리적 공간이 있다. 하나님은 그분 나름대로 그 사이에 이미 다리를 놓았다. 하나님은 네 안에 살고 너와 함께 고생하라고 스스로 자기의 영을 보냈다.

그렇게 사랑으로 헌신하는 분을 예배하는 것이 나는 쉽고도 즐겁다. 창조력과 통제력이 막강하고, 완전히 선하고, 그토록 충실히 우리를 항상 보호하는 자애심을 보이는 분을 나는 자연히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본성 때문에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더욱 사랑한다.

진화하는 공간 우주에서 용감히 투쟁하는 창조 아들들(Creator Sons)과 그 하위 행정가들을 관찰할 때, 우주의 이 작은 통치자들이 크고 깊은 애정을 가졌음을 나는 발견한다. 이 성격자들이 참으로 우리를 사랑함을 깨닫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고 영원한 시대의 끝없는 영역에 두루,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를 따라온다. 그 사랑에 대하여 성격자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은 하나 밖에 없다: 너희는 갈수록 더 창조주를 사랑하게 될 터이고, 어린아이가 땅에서 부모에게 주는 것과 비슷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지혜롭고 멀리 내다보는 부모의 사랑이다. 너희가 받는 아버지 사랑을 가장 크게 계시한 것은 미가엘 아들이 땅에서 이상처럼 영적 일생을 살았던 수여 생명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랑을 각 인간 혼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분은 안에 깃드는 조절자이다.

2:5.11 너희가 쓰는 "사랑"이라는 용어는 아버지의 애정을 나타내는 데 적당치 않다. 어떤 표현을 빌리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주의 인간에게 품는 비할 수 없는 애정을 가리키는 데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성한 애정의 참된 성질과 지극히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의 머리 속에 전할 낱말이 없음은 얼마나 유감인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이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선한 나라가 될 뿐이다. 사랑은 하나님과 생명존재가 친히 가지는 모든 교통에서 지배적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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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의 선하심

2:6.1 우리는 물리적 우주에서 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고, 지적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를 헤아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개인이 종교적 체험을 가지는 영적 세계에서 발견된다. 종교의 참 본질은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종교에 있는 하나님은 또한 도덕성이 있고 선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 선하심은 하나님 성격의 일부이고, 이 선의 충만한 계시는 오로지 믿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몸소 겪는 종교적 체험에서 나타난다.

진화된 종교는 윤리적으로 될 수 있지만, 계시된 종교만이 진정으로 영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있다. 예수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 생기는 친밀한 수준, 대단히 감동적인 수준까지 올려놓았고, 필사자의 체험에서 이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관계는 없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동정심이 가득하다. 그는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마음이 상한 자를 치료하고, 혼의 상처를 고치신다. 그는 사람에게 전능한 힘을 가진 후원자이시다.”

후대의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선포했고, 예수는 각 사람의 아버지로서 하나님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모든 인간적 개념은 예수의 삶 속에서 초월적으로 빛난다.

의로움은 하나님이 우주의 도덕 법칙의 근원임을 암시한다. 진리는 하나님을 계시자로, 가르치는 자로 나타낸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사랑을 갈망하며,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한 이해할 수 있는 친교를 추구한다.

2:6.6 그의 은혜나 용서를 얻기 위하여 중재자가 필요하지도 않다. 신의 올바름은 엄중히 처벌하는 공정에 지배되지 않는다. 아버지인 하나님은 재판관 하나님을 초월한다.

하나님은 결코 분노하거나, 복수심이 가득하거나, 성을 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비가 거부되었을 때 공정이 그 자비를 조절하고, 지혜가 흔히 그의 사랑을 절제하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님과 동위에 있는 성격자들에게 영원한 독자성이 있는데도,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는 절대적 통합이 있다.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사사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은, 죄가 영적 실체가 아니요, 죄는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정은 죄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필사자의 지성이 그에게 깃드는 영 조절자와 완전히 한 편일 수 있는 것 같이, 죄의 편이 되는 필사자는 전적으로 비영적 성품이 되고 궁극에 존재의 말소를 맛보게 된다.

성격자의 세계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은 사랑하는 성격자로 발견된다. 영적인 세계에 직면했을 때, 그 사랑은 개인적 사랑이다; 종교적 체험에서는 하나님은 이 둘 다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의지를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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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성한 진리와 아름다움


2:7.1
모든 유한한 지식과 인간의 깨달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높은 근원에서 얻었다 하더라도 지식과 정보는 상대적으로 완벽하고, 지역 안에서 정확하고, 개인적으로 참일 뿐이다.

물리적 사실은 상당히 확고하지만, 진리는 우주의 철학에서 살아 있고 유연한 요소이다. 진화하는 성격자들의 의사 소통은 겨우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인격자들은 오직 체험이 미치는 데까지만 확신할 수 있다.

신성한 진리, 최종의 진리는 변치 않고 보편성이 있지만, 영적인 것은 지식의 상대적 완벽성 , 서로 다른 개인적 체험 때문에, 때때로 그 세부가 다를 수 있다.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의 법칙과 법령, 생각과 태도는 영원히, 무한히, 보편적으로 참되다. 동시에 창조 아들들이 각자의 우주에서 작용하는 그들의 계획과 기법을 따르며, 또한 무한한 영과 기타 관련된 모든 하늘 성격자가 마련한 지역 계획 및 절차와 조화된다.

유물론의 부분적 지식은 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선과 악, 두 가지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진실이 아름다운 것은 진실이 충만하고 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찾을 때, 사람은 신성하게 실재하는 것을 추구한다.

철학자들은 실체의 고립된 측면을 전체적 사실로 선언하는 것에 현혹될 때 가장 심각한 오류를 범한다. 현명한 철학자는 항상 모든 우주 현상의 이면에 존재하는, 존재하기 전의 창조적인 설계를 찾으려 할 것이다.

2:7.6 진리를 인식하고 나서 행복이 뒤따르며, 이는 진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에는 실망과 슬픔이 뒤따른다. 실체가 아닌 까닭에, 잘못은 체험 속에서 실체가 될 수 없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 향기로 가장 잘 분별된다.

영원한 추구는 통일, 신과 일치되기를 찾는 것이다. 방대한 물리적 우주는 파라다이스 섬 안에서 한데 모이고, 지적 우주는 지성의 하나님, 곧 합동 행위자 안에서 한데 모이며, 영적 우주는 영원한 아들의 성격 안에서 단합한다. 필사자는 생각 조절자와 우주의 아버지의 직접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

최고의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것은 실체를 발견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신이 선한 것이 영원한 진실임을 분별하는 것, 이것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인간 예술의 매력조차도 그 통일성이 주는 조화에 있다.

히브리 종교의 큰 잘못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과학의 사실적 진리, 그리고 예술의 매력 있는 아름다움과 연결짓지 못한 것이다. 현대 종교에서 지나치게 강조되고 고립된 도덕은 많은 20세기 인간의 헌신과 충성을 붙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 도덕적 명령에 덧붙여, 과학과 철학과 영적 체험의 진리, 물리적 창조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진정한 인품 성취의 중대성을 똑같이 고려한다면, 그 도덕은 스스로 회복할 것이다.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영적 통찰력으로 멀리, 앞을 내다보는 남녀, 곧 우주의 진리, 우주의 아름다움, 신의 선하심에 관한 확대되고 지극히 통합된 현대적 개념으로부터 새롭고 흥미 있는 생활 철학을 감히 만들 자들을 향한 것이다. 이처럼 도덕에 관한 새롭고 올바른 선견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모든 선한 것을 끌어당기고, 인간의 혼에서 최선을 끌어내려고 도전할 것이다.

2:7.11 모든 참된 아름다움―물질적 예술이나 영적 균형―은 참되고도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은―개인적 도덕이든, 사회의 형평이든, 또는 신성한 봉사이든―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과 건전한 정신과 행복은 진실ㆍ아름다움ㆍ선이 인간의 체험 속에서 섞임에 따라서, 이 셋이 통합된 것이다.

진리는 일관성이 있고, 아름다움은 사람을 끌어당기며, 선은 안정을 가져온다. 실체인 것의 이러한 가치가 인격자의 체험 속에 조정될 때, 그 결과는 지혜로서 조절되고 충성으로 자격을 갖춘, 높은 수준의 사랑이 된다. 모든 우주 교육의 참 목표는 우주에서 고립된 아이가 확대되는 체험 속에 나타나는 더 큰 실체들에 대하여 잘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2:7.13 [유버르사에서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권한으로 활동하는 한 신성한 조언자가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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