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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한한 하나님
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3. 응보와 공정
4. 신의 자비

 

 

 

제 2 편 하나님의 성품

 

. 글쓴이: 신성한 조언자
. 1934년


2:0.1 (33.1) 네바돈의 미가엘이 준 다양한 가르침에서, 아버지를 계시한 것을 보고 하나님의 성품을 최선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로 보고, 파라다이스 창조자를 참된 영적 아버지로 우러러본다면, 신의 성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2:0.2 육신화된 미가엘의 일생을 배경으로 삼으면, 우주의 아버지의 성품을 인간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2:0.3 우주의 아버지가 수여한 조절자와 창조 아들의 진실의 영이 필사 지성 속에 깃들지 않았다면, 하나님 개념을 키우려는 우리의 온갖 노력은 무익할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 개념의 확대를 돕기 위하여 인간의 마음 속에 신성한 이 영이 계신 것을 믿고서, 하나님의 성품을 인간의 지성에게 더 묘사해 보라는 명령을 나는 즐겁게 실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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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한한 하나님

 

2:1.1 (33.4) 아버지의 계심에서 나오는 빛이 눈부시게 밝아서, 비천한 인간에게는 아버지가 “짙은 어둠 속에서 사시는” 것과 같다. 그의 생각과 계획은 헤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는 수없이 크고 놀라운 일을 하시도다.” “하나님은 크시며, 우리는 그를 깨닫지 못하고, 그의 연세도 알아낼 수 없도다.”


2:1.2 “하나님은 오직 한 분, 무한한 아버지가 계시고, 그는 또한 충실한 창조자이라.” “신성한 창조자는 또한 우주 처분자, 혼의 근원이요 운명이라. 그는 최상의 혼, 시초의 지성, 모든 창조의 무제한 영이라.” “무한자는 스스로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니, 아주 뛰어나시도다. 그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요, 선하고 완전한 모든 목적을 가진 아버지라.”


2:1.3 아버지의 영원한 보편적 성격이 엄청나게, 무한히 명시되는데도, 아버지는 그의 영원ㆍ무한함을 무조건 스스로 의식한다. 하나님은 우주에서 완전히, 적절히, 완벽하게 자아를 평가하는 유일한 존재이다.


2:1.4 위대한 하나님은 스스로를 알고 이해하며, 그의 모든 완전한 시원적 속성을 무한히 자의식한다. 우주 군주는 모험에 들어갈 수 있고, 별자리 아버지는 실험할 수도 있고, 체계의 우두머리는 연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의 아버지는 처음과 끝을 보며, 하위 존재가 겪는 실험과 모험을 알아차리고 이해한다.


2:1.5 하나님에게는 아무 일도 새롭지 않고, 어떤 우주의 사건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위대하고 유일한 스스로 계신 이이다.


2:1.6 (34.5) 우주의 아버지의 모든 속성은 절대로, 아무 조건 없이 무한하다. 이 사실은, 그 자체로서 저절로, 유한한 물질 존재와 기타 낮게 창조된 지적 존재들과 직접 친히 교통할 수 없게, 자동으로 자신을 차단한다.


2:1.7 다양한 생물과 접촉하기 위하여 세 가지를 주선하셨다. 첫째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모습을 입고 (예수의 경우처럼) 체험을 겪는다. 둘째로, 천사 무리와 기타 존재들이 사람들에게 시중들고 봉사한다. 셋째로, 하나님이 직접 생각 조절자를 선물로 주셨다.


2:1.8 여러 방법으로 인간의 유한한 지성에게 가까이 가려고 파라다이스 아버지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내려오면서 그의 무한성을 수정하고, 묽게 하고, 희박하게 만든다. 그래서 절대성이 줄어들면서 방대한 우주의 여러 영역에 있는 다양한 지적 존재들과 가까운 접촉을 가질 수 있게 된다.


2:1.9 그가 무한 영원하고 첫째라는 사실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해왔고, 지금도 하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2:1.10 어떤 유한 존재도 신의 계획과 목적을 언제라도 충분히 파악하거나 이해하기가 본래부터 불가능하다. 사람은 무한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무한한 아버지는 온 우주에 있는 모든 자녀의 유한함을 아주 확실히, 충분히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싼다.


2:1.11 (35.4) 성격의 무한성은, 어쩔 수 없이, 모든 유한 성격을 포함한다. 따라서 “아버지 안에서 우리가 살고 움직이며, 우리의 존재를 가지니라” 선언하는 가르침은 진리요, 글자 그대로 진리이다. 필사 인간에게 깃드는, 우주의 아버지의 순전한 분신, 신의 그 분신은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 곧 가장 높은 아버지 무한성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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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성


2:2.1 (35.5) 하나님은 글자 그대로, 영원히 온 우주에 계신다. 모든 절대적 위엄과 영원한 위대함을 가지고,아버지는 현재의 순간에 거하신다. 신의 모습 전체에 무한한 완전성이 있다. 첫째 근원 중심의 계획과 목적은 그 자신처럼 영원하고 완전하며,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다.


2:2.2 아버지가 내리는 명령은 궁극에 완벽하고 완전히 충만하다. 우주의 아버지는 지혜롭고 완전한 최초의 목적을 뉘우치지 않는다. 그의 계획은 견고하고, 그의 권고는 바뀔 수 없으며, 그의 행동은 신답고, 잘못이 있을 수 없다.


2:2.3 하나님의 반응이, 겉보기에, 겉으로 바뀔지 모르지만, 그 표면 밑에, 바깥으로 나타나는 모든 표현 밑에, 영원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목적, 영구한 계획이 여전히 있다.


2:2.4 중앙 우주, 특히 파라다이스에서, 완전은 묽어지지 않고 어떤 단계에서 절대적이기도 하다. 삼위일체가 나타나는 모습은 신의 완전함을 다르게 펼쳐 보이지만 묽게 만들지 않는다.


2:2.5 공간 세계의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계획 전체가, 파라다이스에서 아버지의 완전함을 함께 체험하는 높은 운명으로, 의지를 가진 모든 인간을 높이 올리는 신성한 목적에 중점을 둔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이지도 않고, 독립되어 있지도 않다. 그는 광대한 온 우주에서 자의식을 가진 인간 모두에게, 결코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주신다.


2:2.6 (36.4) 모든 파라다이스 창조 아들이 짓는 진화 우주에서 투쟁하는 어떤 인간이 겪는 어떤 불완전한 체험도, 하나님은 함께 의식한다. 우주의 아버지는 우주 전체의 모든 도덕적 존재의 진화 생애에서, 미숙하고 불완전한 특징을 가진 체험에 실제로 참여한다.


2:2.7 인간의 한계, 악의 잠재성은 신의 성품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필사자가 겪는 악의 체험, 그리고 사람과 악의 관계는 모두, 시간 세계 자녀들의 도덕적 책임 속에서 아주 확실히, 늘 확대되는 하나님의 자아 실현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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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의와 공정

 

2:3.1 (36.6) 하나님은 올바르며 따라서 공평하다. 우주의 아버지의 정의는 인간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께 불의가 없으며, 그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선물을 받지 않음이라.


2:3.2 무한한 지혜는 어떤 주어진 경우에 내릴 정의와 자비의 비율을 영원히 중재한다. 마음을 다하여 죄를 지은 마지막 결과는 소멸이다. 죄의 편을 드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파괴해 왔다.


2:3.3 존재의 정지는 섭리 시대나 새 시대의 판결이 있을 때 공포된다. 유란시아와 같은 세계에서, 이 판결은 행성의 한 섭리 시대 끝에 온다.  행성 회의로부터 창조 아들의 법정을 거쳐서,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재판소에 이르기까지, 사법권을 가진 모든 법정이 나란히 행동함에 따라서, 존재의 정지가 그런 때에 공포될 수 있다.


2:3.4 이 선고가 마지막으로 확인될 때, 그 존재들은 우주 잠재성으로 돌아가 분해된다. 성격은 창조의 대혼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최상존재의 진화 체험을 일부가 된다. 그 신분은 마치 태어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된다. 조절자의 경우, 그 경험적 영의 가치는 계속하는 조절자의 실체 속에서 살아남는다.


2:3.5 순전한 악, 철저한 잘못, 고의로 짓는 죄, 수그러지지 않는 불의는 본래부터, 자동으로 자살이다. 비현실적인 태도가 우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올바르게 판결하는 우주 법정의 장치, 정의를 결정하고 공평을 찾는 장치가 작용할 때까지, 일시 자비와 관용을 베풀기 때문이다.


2:3.6 (37.4) 지역 우주에서 창조 아들의 통치는 사람을 창조하고 영답게 변화시키는 통치이다. 필사자가 올라가는 파라다이스 계획을 효과적으로 집행하고, 반역자 및 그릇된 자들을 회복시키는 데 전념한다. 이런 사랑의 노력이 거부될 때, 옛적부터 늘 계신 이들의 사법권 활동 세력이 최종 소멸 선포를 집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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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의 자비


2:4.1 (38.1)
자비는 유한한 인간의 자연스런 약점과 환경의 장애를 충분히 인식하여 생겨나는 지혜로 정의가 가볍게 된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동정심이 가득하고 품위가 있으며, 오래 참고 자비가 풍성하시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를 부르는 자마다 구원을 받으리니,” “그가 넘치게 용서하실 것임이라.” “주의 자비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니라.”


2:4.2 하나님은 본래 친절하고 자연히 동정심이 많고, 언제까지나 자비롭다. 결코 그의 자애심을 불러일으키려고 하나님한테 어떤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에 관하여 모든 것을 아시므로 쉽게 용서하신다. 사람은 이웃을 이해하면 할수록 이웃을 용서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것도 점점 쉬워진다.


2:4.3 오로지 무한히 지혜로운 분별력으로, 올바른 하나님은 동시에, 그리고 어떤 주어진 우주 환경에서도, 정의와 자비를 베풀 수 있다. 하늘의 아버지는 결코 우주에 있는 자녀들에 대하여 모순되는 태도를 가져서 마음의 갈등을 겪지 않는다. 하나님은 결코 상반되는 태도로 고통을 받지 않는다.


2:4.4 사랑의 아버지는 좋은 성품 때문에 우주에 있는 자녀들 가운데 어느 집단의 어떤 구성원에게나, 지혜롭게 자비 베푸는 것을 도저히 아까워할 수 없다. 영원한 정의와 신의 자비를 합친 것은 인간의 체험에서 공평이라 부를 것이다.


2:4.5 신의 자비는 우주에서 완전과 불완전 수준 사이에 공평하게 조정하는 방법을 나타낸다. 자비는 진화하는 유한자의 형편에 최상위의 정의가 적응된 것이요, 시간 세계 자녀들의 가장 고귀한 관심과 우주 복지를 만족시키려고 영원의 정의가 수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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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하나님의 사랑

 

2:5.1 (38.6) 우주 사무에 대하여 하나님이 유일하게 친히 가지는 태도는 언제나 신의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그는 악한 자와 선한 자에게 태양이 비치게 하고, 올바른 자와 그릇된 자에게 비를 보내시니라.”


2:5.2 하나님은 놀라운 조절자를 인간의 지성에 깃들라고 보낸다.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이며,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와도 좋으니라.” 그는 “진리의 지식을 얻게 됨으로 모든 사람이 구원받게 하고자 하시니,” 그는 “누구도 멸망하기를 원치 않으시니라.”


2:5.3 하나님의 사랑의 성질은 아버지다운 애정이다. 그러므로 가끔 그는 “우리의 이익을 위하여 우리를 꾸짖어서, 우리가 그의 거룩함을 함께 가질 수 있게 하시니라.” 너희의 불같은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어떤 고통을 받아도 그도 같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여라.


2:5.4 하나님은 죄인에게 신답게 친절하다. 반역자들이 옳은 길로 돌아설 때, 이들을 자비롭게 받아들이며, “우리의 하나님이 풍성하게 용서하시기 때문이라.”


2:5.5 네가 찾는다고 해도 하나님을 찾아낼 수는 없지만, 깃드는 영이 이끄는 대로 파라다이스에 계신 아버지 앞에 네가 마침내 설 때까지, 너는 어김없이 안내를 받는다.


2:5.6 (39.5)
네가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인가. 너와 하나님 사이에는 건너야 할 멀고 먼 물리적 공간이 있다. 하나님은 그분 나름대로 그 사이에 이미 다리를 놓았다. 하나님은 네 안에 살고 너와 함께 고생하라고 스스로 자기의 영을 보냈다.


2:5.7 그토록 위대하고, 동시에 비천한 인간을 향상시키는 봉사에 그렇게 사랑으로 헌신하는 분을 예배하는 것이 나는 쉽고도 즐겁다. 창조력과 통제력이 막강하고, 완전히 선하고, 그토록 충실히 우리를 항상 보호하는 자애심을 보이는 분을 나는 자연히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놀라운 속성을 인식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성품 때문에 우리 모두가 아버지를 더욱 사랑한다.


2:5.8 공간 우주의 창조아들과 그 하위 행정가들을 관찰할 때, 성격자들이 참으로 우리를 사랑함을 깨닫는다. 이 사랑하는 체험은 대체로 사랑받는 체험에 대한 직접 반응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함을 알고 있으니, 비록 하나님이 최상ㆍ궁극ㆍ절대성과 같은 이 모든 속성을 벗어버린다 하더라도, 나는 계속 그를 지극히 사랑할 것이다.


2:5.9 현재, 그리고 영원한 시대의 끝없는 영역에 두루,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를 따라온다. 그 사랑에 대하여 성격자의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반응은 하나 밖에 없다: 너희는 갈수록 더 창조주를 사랑하게 될 터이고, 어린아이가 땅에서 부모에게 주는 것과 비슷한 사랑을 하나님께 바치게 될 것이다.


2:5.10 하나님의 사랑은 지혜롭고 멀리 내다보는 부모의 사랑이다. 너희가 받는 아버지 사랑을 가장 크게 계시한 것은 미가엘 아들이 땅에서 이상처럼 영적 일생을 살았던 수여 생명에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랑을 각 인간 혼에게 개인적으로 주는 분은 안에 깃드는 조절자이다.


2:5.11 (40.3) 너희가 쓰는 "사랑"이라는 용어는 아버지의 애정을 나타내는 데 적당치 않다. 어떤 표현을 빌리더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주의 인간에게 품는 비할 수 없는 애정을 가리키는 데 같은 표현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 파라다이스 아버지의 신다운 애정의 참된 성질과 지극히 아름다운 의미를 인간의 머리 속에 전할 낱말이 없음은 얼마나 유감인가!


2:5.12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이 깨닫지 못할 때 하나님의 나라는 단지 선한 나라가 될 뿐이다. 사랑은 하나님이 인간과 친히 가지는 모든 교통에서 지배적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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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하나님의 선하심

 

2:6.1 (40.5) 우리는 물리적 우주에서 신의 아름다움을 볼 수도 있고, 지적 세계에서 영원한 진리를 헤아릴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은 개인이 종교적 체험을 가지는 영적 세계에서 발견된다. 종교의 참 본질은 하나님이 선하심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종교에 있는 하나님은 또한 도덕성이 있고 선해야 한다. 하나님의 이 선하심은 하나님 성격의 일부이고, 이 선의 충만한 계시는 오로지 믿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몸소 겪는 종교적 체험에서 나타난다.


2:6.2 진화된 종교는 윤리적으로 될 수 있지만, 계시된 종교만이 진정으로 영적인 도덕성을 가질 수 있다. 예수는 부모 자식 관계에서 생기는 친밀한 수준, 대단히 감동적인 수준까지 올려놓았고, 필사자의 체험에서 이보다 더 부드럽고 아름다운 관계는 없다.


2:6.3 “하나님이 넘치게 선한 것은 잘못하는 사람을 뉘우치게 하느니라.” “모든 좋은 재능, 모든 완전한 재능은 빛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느니라.” “하나님은 선하며, 그는 사람의 혼이 영원히 쉴 안식처로다.” “주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니라. 오래 참고 넘치게 선하고 진실하도다.” 그는 구원의 하나님이로다.” “마음이 상한 자를 치료하고, 혼의 상처를 고치시도다. 그는 사람에게 전능한 후원자이로다.”


2:6.4 후기의 히브리 선지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아버지라고 선포했고, 예수는 하나님이 각 사람의 아버지라는 것을 드러냈다. 자기를 잊는 것은 부모의 사랑에 본래부터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사랑한다. 그는 우주의 어떤 성격자에게도 파라다이스 아버지이다.


2:6.5 하나님이 올바르심은 그가 우주의 도덕 법칙의 근원임을 암시한다. 진리는 하나님이 계시자요, 선생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사랑은 애정을 주고 사랑을 갈망하며, 부모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그러한 분별 있는 친교를 찾는다. 올바름은 신다운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랑은 아버지의 태도이다.


2:6.6 (41.4) 그의 은혜나 용서를 얻기 위하여 중재자가 필요하지도 않다. 신의 올바름은 엄중히 처벌하는 정의에 지배되지 않는다. 아버지인 하나님은 재판관 하나님을 초월한다.


2:6.7 하나님은 결코 격노하거나, 복수심이 가득하거나, 성을 내지 않는다. 하나님의 자비가 거부되었을 때 정의가 그 자비를 조절하고, 흔히 지혜가 그의 사랑을 절제하는 것이 참말이다. 하나님과 동위에 있는 자들이 영원한 독자성이 있는데도,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안에는 절대적 통일이 있다.


2:6.8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 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사사로운 태도를 취하지 않는 것은, 죄가 영적 실체가 아니요, 죄는 인격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정의는 죄의 존재를 인식할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고, 하나님의 법은 죄를 없애버린다. 필사자의 지성이 그에게 깃드는 영 조절자와 완전히 한 편일 수 있는 것 같이, 또한 죄인이 마침내 죄와 한 편이 될 때, 이 신다운 성품의 태도가 변하는 듯이 보인다. 죄의 편이 되는 필사자는 전적으로 비영적 성품이 되고 궁극에 존재의 말소를 맛보게 된다.


2:6.9 성격자의 세계와 얼굴을 마주 대하면, 하나님이 사랑하는 성격자인 것이 밝혀진다. 영적 세계를 마주 보면, 하나님은 친히 베푸는 사랑이요, 하나님의 선하심은 신의 자유 의지에, 곧 사랑하고 자비를 베풀고, 참을성을 보이고 용서를 베푸는 보편적 성향에, 기초를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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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성한 진실과 아름다움


2:7.1 (42.2)
모든 유한한 지식과 인간의 깨달음은 상대적인 것이다. 높은 근원에서 얻었다 하더라도 지식과 정보는 상대적으로 완벽하고, 지역 안에서 정확하고, 개인적으로 참일 뿐이다.


2:7.2 물리적 사실은 상당히 확고하지만, 진리는 우주의 철학에서 살아 있고 유연한 요소이다. 진화하는 성격자들의 의사 소통은 겨우 부분적으로 현명하고, 상대적으로 참될 뿐이다. 인격자들은 오직 체험이 미치는 데까지만 확신할 수 있다.


2:7.3 신성한 진리, 최종의 진리는 변치 않고 보편성이 있지만, 영적인 것은 지식의 상대적 완벽성 , 서로 다른 개인적 체험 때문에, 때때로 그 세부가 다를 수 있다. 위대한 첫째 근원 중심의 법칙과 법령, 생각과 태도는 영원히, 무한히, 보편적으로 참되다. 동시에 창조 아들들이 각자의 우주에서 작용하는 그들의 계획과 기법을 따르며, 또한 무한한 영과 기타 관련된 모든 하늘 성격자가 마련한 지역 계획 및 절차와 조화된다.


2:7.4 유물론의 부분적 지식은 악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것은 선과 악, 두 가지로 이루어진 지식이다. 진실이 아름다운 것은 진실이 충만하고 균형이 있기 때문이다. 진실을 찾을 때, 사람은 신성하게 실재하는 것을 추구한다.


2:7.5 추상의 허위는 실체의 한 모습에만 집중하고 그러한 고립된 모습이 진실 전체라고 선언하는 버릇이요, 이런 버릇에 빠질 때 철학자는 아주 끔찍한 잘못을 저지른다.


2:7.6 (42.7) 진리를 인식하고 나서 행복이 뒤따르며, 이는 진리를 실행에 옮길 수 있고 진리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잘못에는 실망과 슬픔이 뒤따른다. 실체가 아닌 까닭에, 잘못은 체험 속에서 실체가 될 수 없다. 신성한 진리는 그 영적 향기로 가장 잘 분별된다.


2:7.7 영원한 추구는 통일, 신과 일치되기를 찾는 것이다. 방대한 물리적 우주는 파라다이스 섬 안에서 한데 모이고, 지적 우주는 지성의 하나님, 곧 합동 행위자 안에서 한데 모이며, 영적 우주는 영원한 아들의 성격 안에서 단합한다. 필사자는 생각 조절자와 우주의 아버지의 직접 관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 안에서 하나가 된다.


2:7.8 최고의 아름다움을 식별하는 것은 실체를 발견하고 통합하는 것이다. 신이 선한 것이 영원한 진실임을 분별하는 것, 이것이 궁극의 아름다움이다. 인간 예술의 매력조차도 그 통일성이 주는 조화에 있다.


2:7.9 히브리 종교의 큰 잘못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과학의 사실적 진리, 그리고 예술의 매력 있는 아름다움과 연결짓지 못한 것이다. 현대 종교에서 지나치게 강조되고 고립된 도덕은 많은 20세기 인간의 헌신과 충성을 붙잡지 못하고 있으며, 그 도덕적 명령에 덧붙여, 과학과 철학과 영적 체험의 진리, 물리적 창조의 아름다움, 지적 예술의 매력, 진정한 인품 성취의 중대성을 똑같이 고려한다면, 그 도덕은 스스로 회복할 것이다.


2:7.10 이 시대의 종교적 도전은, 영적 통찰력으로 멀리, 앞을 내다보는 남녀, 곧 우주의 진리, 우주의 아름다움, 신의 선하심에 관한 확대되고 지극히 통합된 현대적 개념으로부터 새롭고 흥미 있는 생활 철학을 감히 만들 자들을 향한 것이다. 이처럼 도덕에 관한 새롭고 올바른 선견은 사람의 머리 속에서 모든 선한 것을 끌어당기고, 인간의 혼에서 최선을 끌어내려고 도전할 것이다.


2:7.11 (43.4) 모든 참된 아름다움―물질적 예술이나 영적 균형―은 참되고도 선하다. 모든 진정한 선은―개인적 도덕이든, 사회의 형평이든, 또는 신성한 봉사이든―똑같이 참되고 아름답다. 건강과 건전한 정신과 행복은 진실ㆍ아름다움ㆍ선이 인간의 체험 속에서 섞임에 따라서, 이 셋이 통합된 것이다.


2:7.12 진리는 일관성이 있고, 아름다움은 사람을 끌어당기며, 선은 안정을 가져온다. 실체인 것의 이러한 가치가 인격자의 체험 속에 조정될 때, 그 결과는 지혜로서 조절되고 충성으로 자격을 갖춘, 높은 수준의 사랑이 된다. 모든 우주 교육의 참 목표는 우주에서 고립된 아이가 확대되는 체험 속에 나타나는 더 큰 실체들에 대하여 잘 순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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