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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7 편 히브리인 사이에서 진화된 하나님 개념

. 저자 :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5년


97:0.1 (1062.1) 히브리인의 영적 지도자들은 이전에 아무도 하지 못했던 일을 해냈다. 철학자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추상적 하나님 개념을 학식화시켰다. 서민들조차 야웨를 종족의 아버지로 여길 수 있었다.


97:0.2 멜기세덱 시절에, 살렘에서 하나님 개념을 뚜렷하게 가르침 받았지만,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시절에 이 개념은 흐릿했고, 영적 지도자들의 가르침에 반응하여 히브리인의 머리 속에서 차츰차츰 발달하였다. 야웨의 성격 개념은 훨씬 더 연속된 점진적 발달이었다. 모세로부터 말라기까지 하나님의 성격 개념은 계속 성장하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이 궁극에 이 개념을 영화롭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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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무엘―처음 히브리 선지자


97:1.1 (1062.3) 둘러싼 민족들의 압력 때문에 히브리인은 중앙 집권적 정부를 조직하게 되었다. 이러한 행정 권한의 집중은 사무엘에게 개혁자로서 활동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었다.


97:1.2 사무엘이 최고의 야웨를 예배하라고 이스라엘 민족을 설득하려 했을 때, 그는 보편적 반대에 부딪쳤다. 히브리인 중에서 절반인 지식층만 상급 야웨 개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되었고, 나머지 반은 열등한 야웨 개념을 계속 간직하였다.


97:1.3 사무엘은 하루에 동료들과 함께 나가서 바알 장소를 스물이나 뒤엎을 수 있는 실용적 개혁자였다. 그는 순전한 강요의 힘으로 진전을 보았다. 말로 설교하는 일 보다 행동으로 옮겼다. 그는 열심히 유일한 하나님을 믿었고, 그 유일한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이라는 뚜렷한 개념을 가졌다.


97:1.4 그 시절에 야웨는 항상 뉘우치고 변덕스러운 하나님으로 생각되었다.야웨가 변함이 없다는 선언으로 사무엘은 신 개념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히브리인의 하나님은 전능하고 변함없는 창조자의 높이까지 비로소 올라갔다.


97:1.5 사무엘은 하나님이 성실하며, 계약을 지키는 것을 믿을 수 있다고 전파했다. “주는 그의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그래서 온 팔레스타인에 두루, 최고의 야웨를 섬기러 돌아오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 주 하나님, 주는 위대하시니, 주와 같은 이가 하나도 없고, 주 외에 어떤 다른 하나님도 없도다.”


97:1.6 (1063.3) 그때까지 히브리인은 야웨의 은총을 주로 물질적 번영 면에서 보았다. 이렇게 선언하면서 사무엘은 거의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주는 사람을 부하게도 만들고 가난하게도 만드시며, 낮추기도 하고 높이기도 하시니라." 모세 이후로, 겸손한 자와 복을 적게 받은 자에게 그렇게 마음을 위로하는 약속이 선포된 적이 없었고, 가난한 자들 속에서 절망하던 수많은 사람이 영적 지위를 개선할 수 있다는 희망을 비로소 가지게 되었다.


97:1.7 그러나 사무엘은 부족 신 개념을 넘어서 그다지 멀리 나아가지 못했다. 그렇기는 해도, 모세의 시절처럼, 다시 한 번 거룩하고 올바른 신을 묘사했다. “주처럼 거룩한 자가 하나도 없도다. 누가 이 거룩한 주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가?”


97:1.8 세월이 지나 나이 든 이 지도자는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진보했다. “주는 지식의 하나님이요, 행동을 저울로 재느니라. 주는 땅 끝까지 심판할 것이요, 자비로운 자에게 자비를 보이며, 또한 곧은 사람을 바르게 대하리라.”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외쳤다. “이제 주의 수중에 떨어지자. 주의 자비가 크도다.” “사람을 많이 구하든 적게 구하든, 주에게 아무 제한이 없느니라.”


97:1.9 사무엘의 후계자들은 그의 걸음과 도저히 발을 맞추지 못했다. 야웨가 누구보다도 높다고 주장하면서도,하나님이 자비롭다는 개념을 개발하지 못했다. 다른 신들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꾸준히, 되돌아가는 경향이 있었다.


97:1.10 이 시대의 선지자들은 히브리인의 왕좌에 앉을 임금을 기르도록 고안된 종교를 설파했다. “아 주여, 위대함ㆍ권능ㆍ영광ㆍ승리ㆍ웅대함이 주께 속하나이다. 주의 손 안에 권능과 힘이 있고, 주는 만인을 위대하게 만들고 힘을 줄 수 있나이다.” 이것이 사무엘과 그 직계 후계자들이 살던 시절에 하나님 개념의 형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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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엘리야와 엘리사


97:2.1 (1064.2) 기원전 10세기에 히브리 민족은 두 왕국으로 갈라졌다. 분단 이후에 영적 퇴폐의 물결을 막으려고 많은 선생들이 애썼으나, 엘리야가 나타나기까지 별 소득이 없었다. 엘리야는 사무엘의 시절에 지녔던 것과 비할 만한 하나님 개념을 북쪽 왕국에서 회복했다. 엘리야는 사무엘처럼 바알의 여러 제단을 뒤엎고 거짓 신들의 우상을 깨 버렸다. 우상을 숭배하는 왕의 반대를 무릅쓰고 개혁을 실행했다. 그의 과제는 사무엘이 부닥쳤던 것보다 더욱 거창하고 어려웠다.


97:2.2 엘리야가 부름받아 떠났을 때, 동료 엘리사가 뒤를 이었고, 미가야의 도움을 받아서 팔레스타인에서 진리의 빛을 살려 두었다.


97:2.3 아직까지 히브리인은 모세의 이상의 높이까지도 도달하지 못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시대는 상류 계층이 최고의 야웨 숭배로 돌아옴과 함께 막을 내렸고, 우주의 창조자 개념이 회복된 것을 구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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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야웨와 바알


97:3.1 (1064.5) 야웨 신자와 바알 추종자 사이에 오래 끈 논쟁은 종교 관념의 차이가 아니라 차라리 사회ㆍ경제 이념의 충돌이었다.


97:3.2 방랑하는 아라비아 부족 (야웨파)은 토지가 신이 씨족에게 주는 선물이요, 사고 팔 수 없다고 주장했다. “야웨가 ‘땅은 내 것이니 팔지 못할지니라’ 말씀하셨도다.”


97:3.3 북쪽의 가나안 족속 (바알파) 은 자유롭게 땅을 사고 팔고 저당 잡혔다. 바알 종파는 두 가지 주요 교리에 기초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유 재산을 정당화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바알이 비를 보낸다고 생각하였다. 그 종파는 대체로 땅ㆍ소유권ㆍ비옥함에 관심을 가졌다.


97:3.4 일반적으로 바알파는 집ㆍ땅ㆍ노예를 소유했으며, 귀족인 지주였다. 각 바알은 신성한 장소, 사제, "거룩한 여자" (의식에 쓰이는 창녀)들을 거느렸다.


97:3.5 땅을 보는 기본적 관점의 차이가 가나안인과 히브리인 사이에서 사회ㆍ경제ㆍ도덕ㆍ종교적으로 맹령할 적대감이 생겼지만, 종교적 쟁점은 되지 않았다. 공격적 선지자 엘리야 시절부터 야웨 대 바알 논쟁이 있었고, 야웨의 승리와 일신교를 향한 운동으로 끝났다.


97:3.6 (1065.3) 아합이 나봇 일가의 땅을 소유하려는 음모를 꾸며 그들을 죽였을 때, 엘리야는 옛 토지 관습으로부터 도덕적 쟁점을 만들었고, 바알파에 맞서서 힘찬 투쟁을 벌였다. 이것은 또한 도시의 지배에 맞서서 시골 사람들이 벌인 싸움이었다. 엘리야 밑에서 야웨는 엘로힘이 되었다. 일신교가 다신교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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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모스와 호세아


97:4.1 (1065.4) 부족 신―희생물과 예식으로 아주 오랫동안 섬김을 받던 신, 초기 히브리인의 야웨―가 자신의 민족 안에서도 범죄와 부도덕을 징계하려 하는 하나님이 되는 과도기에 아모스가 큰 걸음을 내디디었다. 모세의 시절 이후로, 그렇게 울려 퍼지는 진리가 팔레스타인에서 선포된 적이 없었다.


97:4.2 멜기세덱 시절 이후에 처음으로, 민족의 정의와 도덕에 2중 잣대 사용을 비난하는 소리가 사람의 귀에 들렸다. 아모스는 사무엘과 엘리야의 엄하고 공정한 하나님을 상상했지만, 또한 잘못한 것을 벌줄 때 히브리인과 어느 다른 민족을 조금도 달리 생각하지 않는 하나님을 보았다. 이것은 자기 중심의 “선민” 교리에 대하여 정면 공격이었고, 그 시절에 많은 히브리인이 이를 분개하였다.


97:4.3 건성으로 종교를 믿고 기회주의이고 때때로 부도덕한 동료들을 비난하면서, 변치 않는 야웨의 어김없는 정의를 묘사하려고 애쓰면서 그는 행악자들에게 말했다, “비록 저희가 지옥으로 파고 들어가도 거기서 저희를 잡아내리라, 비록 저희가 하늘로 기어오르더라도, 거기서 저희를 끌어내리리라.” “그리고 적들 앞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도, 거기서 나는 정의의 칼을 지시하겠고 그 칼이 저희를 죽일지니라.” 나는 이스라엘의 집을 모든 나라 사이에서 체질하리라”하고 야웨의 이름으로 선언 했다.


97:4.4 아모스는 야웨가 "만국의 하나님"이라 선포하고, 의식(儀式)으로 올바름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97:4.5 호세아는 희생물이 아니라 뉘우침을 통해서 용서받기를 외쳤다. 그는 신이 인자하고 자비롭다는 복음을 선포하며 말했다, “내가 너와 언제까지나 약혼하리라. 옳도다, 올바름과 심판 속에서, 인자하고 자비롭게 너희와 약혼하리라.”


97:4.6 (1066.3) 호세아는 충실하게 아모스의 도덕적 경고를 계속했고, 하나님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 “저희를 꾸짖는 것이 내가 바라는 바라.” 그는 계속 회개와 용서를 설교하며 말했다, 그의 말씀의 요점은 늘 이것이었다. “내 백성에게 내가 자비를 베풀리라. 저희는 나 외에 아무 하나님을 알지 못할지니, 나 외에 아무 구원자가 없음이라.”


97:4.7 선택된 백성이라고 해서 야웨가 히브리인의 죄를 묵인하지 않는다고 호세아는 히브리인의 양심을 깨우쳤다. 호세아는 신이 자비롭다는 화음의 첫 음정을 시작했고, 후일에 이사야는 이를 아름답게 노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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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첫 이사야


97:5.1 (1066.5) 이때는 히브리 국가들에서 양심과 의식이 일깨워진 것을 뒤이어 첫 이사야가 등장했다.


97:5.2 이사야는 계속하여 하나님의 영원한 성품, 곧 무한한 지혜, 변함없이 완전히 믿음직한 성질을 설파하였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라, 나는 믿고 두려워 아니하리니, 주가 나의 힘이요 내 노래인 까닭이라.” ‘이제 와서 함께 의논하자’ ‘너희의 죄가 진홍 같아도, 눈과 같이 희게 될지라. 심홍처럼 붉어도 양털 같이 될지니라’ 주가 말씀하시니라.”


97:5.3 두려움에 질리고 혼이 갈급한 히브리인에게 이 선지자는 말했다. “일어나서 빛날지어다. 너희의 빛이 다가왔고, 주의 영광이 너희를 비춤이라.” “주의 영이 내 가까이 오시니, 좋은 소식을 유순한 자에게 전파하라고 그가 내게 기름을 부으셨음이라.” “마음이 상한 자를 동여매고, 포로에게 자유를, 묶인 자에게 감옥 문이 열렸음을 선포하라고 나를 보내셨음이라.” “나는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니, 내 혼이 내 하나님 안에서 즐거울지라,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나를 입히고, 올바름의 옷으로 나를 덮으셨음이라.” ...


97:5.4 이 이사야 뒤를 미가와 오바디아가 따랐고, 이 두 사자는 사제에게 지배된 히브리인 의식을 대담하게 비난하고, 두려움 없이 희생제도 전체를 공격했다.


97:5.5 미가는 말했다: "각 사람이 자기의 넝쿨 아래 앉을 것이며, 아무도 그에게 겁을 주지 말지니, 이는 각자가 하나님을 이해하는 대로 모든 사람이 살 것임이라."


97:5.6 (1067.3) 미가의 말씀은 늘 이러했다: “태운 헌물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 앞에 나갈까? 주가 숫양 1천 마리나 1만 강(江)에 가득 찬 기름으로 기뻐하실까?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내 첫 아이를, 내 혼이 지은 죄 때문에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 아, 사람아, 그는 나에게 무엇이 좋은지 보여 주셨다, 공정하게 행하고 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너희 하나님과 더불어 걷는 것 말고 주가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느냐?” 이때는 위대한 시대였다. 정말로 풍운의 시절이었으니, 2천 5백여 년 전에, 이처럼 사람을 해방하는 소리를 더러 듣고 믿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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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두려움 없는 예레미야


97:6.1 (1067.4) 예레미야가 다음으로 과감한 걸음을 내디디어 야웨를 국제적 신으로 만들었다.


97:6.2 예레미야는 히브리인이 다른 나라와 전쟁할 때 야웨가 그들 편을 들지 않는다고 두려움 없이 선언했다. 그는 야웨가 온 땅,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하였다. 마침내 야웨 개념은 행성의 신 수준으로, 우주의 위엄을 가진 높이까지도 올라갔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동료 중에 많은 사람은 히브리 민족과 따로 있는 야웨를 생각하는 것은 어려웠다.


97:6.3 예레미야는 또한 이사야가 묘사한, 공정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전파했다: “옳도다, 나는 영원한 사랑으로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그러므로 인자함으로 내가 너희를 당기었노라.” “이는 그가 사람의 아들딸에게 고통 주기를 기뻐하지 않으심이라.”


97:6.4 그러나 예루살렘이 포위된 동안, "이제 내가 이 땅을 바빌론의 임금 느부갓네살, 내 종의 손에 주었노라"하고 말했을 때, 이것은 반역죄로 생각되었다. 예레미야가 도시의 항복을 조언했을 때, 사제와 통치자들은 그를 컴컴한 지하 감옥의 구덩이 속에 처박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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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둘째 이사야


97:7.1 (1068.1) 유대인을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으로 회복시키려는 노력으로 유대인 사제들은 여러 우화를 만들어내고 기적으로 보이는 사건들을 불렸다.


97:7.2 포로 생활 기간에 유대인은 바빌로니아의 전통과 전설에 많이 영향을 받았다. 전설을 통해 항상 왜곡했는데도, 그들은 채택한 갈대아인 이야기의 도덕적 바탕과 영적 의미를 어김없이 개선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97:7.3 히브리인 사제와 서기관들은 머리 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는데, 이는 유대 나라를 복구하고, 종족의 역사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영감을 받아서 썼다고 우기지 않았고, 신성한 책을 쓴다고 떠벌이지도 않았다. 단지 포로 생활을 하던 동포의 용기를 북돋우려고 교과서를 준비하고 있었다. 후일의 사람들이 이것과 기타 기록을 모았고, 이 안내서에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97:7.4 유대인 사제들은 포로 생활이 끝난 뒤에 이 기록들을 아낌없이 이용해 먹었지만, 둘째 이사야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다. 둘째 이사야는 예레미야와 함께 야웨가 만국의 하나님인 것을 믿었다. 그는 가르침을 기록에 남겨 놓았다. 적대하는 사제들은 이를 무시하고 싶었어도, 그 아름다움과 웅대함을 존경하여 이 기록을 예전의 이사야의 기록 사이에 집어넣었다. 이처럼 둘째 이사야의 기록은 이사야서 40장에서 55장 끝까지 포함한다.


97:7.5 예수의 시절에 이르기까지, 어떤 스승도 둘째 이사야가 선포한 높은 하나님 개념에 이르지 못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 같이, 나의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고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


97:7.6 (1069.1) 마침내 마키벤타는 진짜 하나님을 인간에게 선포하는 선생들을 바라보았다. 첫 이사야는 우주를 창조하고 떠받드는 하나님을 전파하였다. “나는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두었노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라, 나 외에 아무 하나님이 없느니라. 하늘이 사라지고 땅이 고갈될지라도 나의 올바름은 언제까지나 버티고, 나의 구원은 대대로 버틸지니라. 너희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음이라, 절망하지 말지니, 내가 너희의 하나님인 까닭이라. 나 외에 아무 하나님이 없느니라.”


97:7.7 이와 같은 말씀은 포로가 된 유대인 뿐 아니라 그 이후로 허다한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주가 이렇게 말씀하시니라, ‘나는 너를 만들었고, 너를 되찾고 네 이름으로 너를 불렀노라, 너는 내 것이라.’” “보라, 내가 저희를 내 손바닥에 새겼음이라. 나는 내 손의 그림자로 저희를 가리기까지 하였노라.” “악한 자는 자기의 길을 버릴지며, 불의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주께로 돌아오게 하라. 그러면 주는 그에게 자비를 베푸시리라, 우리 하나님한테 돌아오게 하라, 그가 넘치게 용서할 것임이라.”


97:7.8 살렘의 하나님을 새로 가르치는 그의 복음을 다시 들어 보아라: “주를 섬기는 자는 힘을 다시 찾겠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가리라. 저희가 달려도 지치지 아니하겠고, 걸어도 쓰러지지 아니하리라.”


97:7.9 우주의 아버지의 무한한 속성을 그린 그의 글은 시(詩)와 같았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관하여 이보다 더 아름다운 말이 입에서 나온 적이 없다. 그의 신 묘사를 들어 보아라: “나는 영원에서 거하는 높고 높은 자이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나 외에 아무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발판이라.”


97:7.10 이 대담한 선생은 사람이 하나님과 무척 가까운 사이라고 선포했고,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으로 부르는 자마다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했고, 저희는 나를 찬양함을 보일지니라. 나, 나조차도, 스스로를 위하여 저희가 지은 죄를 지워버리는 자이라, 나는 저희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리라.”


97:7.11 (1069.6) 그는 우주의 아버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발판이라.” 사막의 베두인 족속이 가졌던 개념, 성이 나 있고 복수심이 가득하고 질투하는 야웨 개념은 거의 사라졌다. 최고이며 보편적인 새 야웨 개념이 필사 인간의 머리 속에 나타났고, 인간의 눈앞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되었다. 신의 정의를 깨닫는 것은 원시적 마술과 생물학적 두려움을 없애기 시작했다. 마침내, 사람은 법과 질서가 있는 우주에 대하여 듣고, 믿을 수 있고 확고한 속성을 가진 우주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97:7.12 숭고한 하나님을 외치는 이 전도자는 계속하여 사랑의 하나님을 선포하였다. “나는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뉘우치고 겸손한 정신을 가진 자와 함께 하노라.” “그리고 주가 너를 줄곧 안내하고 너의 혼을 채워 주시리라. 너는 물을 준 동산 같고 그침 없이 흐르는 샘물과 같을지니라.” 두려움을 없애는 멜기세덱의 복음과 신뢰를 낳는 살렘의 종교가 인류에게 축복을 내리려고 다시 한 번 앞을 비추었다.


97:7.13 선견이 있고 용감한 이사야는 최고의 야웨, 사랑의 하나님, 우주의 통치자, 애정을 가진, 온 인류의 아버지의 위엄과 보편적 전능을 숭고하게 그림으로써 민족주의적 야웨가 실제로 빛을 잃게 하였다. 이 위대한 선생은 전능한 창조자를 만인을 사랑하는 아버지로 그렸다.


97:7.14 이 둘째 이사야는 약속된 메시아의 임무에 대하여, 종족 면에서 자기 중심인 그릇된 많은 개념을 없애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나 이 노력에 완전히 성공하지는 못했다. 사제들의 민족주의가 없었다면, 두 이사야의 가르침은 약속된 메시아를 알아보고 받아들이기 위하여 길을 예비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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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성한 역사와 세속의 역사


97:8.1 (1070.4) 히브리인의 체험 기록을 신성한 역사로, 나머지 세상일을 세속의 역사로 보는 관습은 역사의 해석에 대하여 사람의 머리 속에 많은 혼란을 일으킨다. 이 문제는 유대인에게 세속의 역사가 없기 때문에 생긴다. 바빌로니아에 추방된 시절에 사제들이 이스라엘의 신성한 역사라고 생각된 기록을 준비한 뒤에, 그들은 "이스라엘 왕들의 업적"과 "유다 왕들의 업적"을 샅샅이 없애버렸다.


97:8.2 그래서 그들이 자기네 역사를 완전히 새로 쓰고 개작하려고 애썼는가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복잡한 그들 민족 체험의 기록을 간단히 살펴보아야 한다. 유대인은 신학을 떠나서 인생에 대하여 적당한 철학을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97:8.3 외래 통치자의 압제 밑에서 5백 년을 지낸 것은 유대인에게도 너무 지나쳤다. 선지자와 사제들은 외치기 시작했다: “언제까지, 아 주여, 언제까지니이까” 어느 옛 예언자는 하나님이 “택한 백성”을 구원하리라 약속했다. 아모스는 민족의 올바름의 기준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릴 것이라 전에 위협하였다. 둘째 이사야는 희생물을 바치고 대속하여 구원받는 것을 말했다. 에즈라는 율법을 지킴으로 번영할 것을 약속했다. 그래도 여전히 구원은 뒤로 미루어졌다. 다니엘은 메시아의 왕국이 즉시 세워진다는 각본을 제시했다.


97:8.4 이 모든 거짓된 소망이 좌절되었으므로 유대인 지도자들은 헛갈렸고, 파라다이스 아들이 사람의 아들로 육신화되어 왔을 때, 그를 알아보고 받아들이지 못했다.


97:8.5 하나님이 섭리로 여러 번 인간사에 간섭한 것이 참말이지만, 신학의 독단과 종교적 미신을 신의 간섭으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최고자들이 사람의 나라에서 다스린다”는 사실은 세속의 역사를 이른바 신성한 역사로 바꾸지 않는다.


97:8.6 (1071.4) 신약의 저자와 후일에 기독교 작가들은 뜻은 좋았지만, 히브리인의 역사를 왜곡하였다. 히브리인의 역사는 교리화되고 신성한 역사라는 허구로 바뀌었다. 이처럼 히브리인의 역사는 유대인 저자와 기독교 저자들에게 비참하게 이용되었다. 현세의 히브리인 역사는 철저히 교리화되었다. 신성한 역사라는 허구로 바뀌었고, 이른바 기독교 국가들의 도덕 개념과 종교적 가르침과 헤어날 수 없이 한데 묶이게 되었다.


97:8.7 히브리인의 역사에서 중대한 시점을 간단히 되새기는 것은, 일상적인 현세의 역사를 신성한 역사로 바꾸려고 유대인 사제들이 어떻게 기록을 바빌론에서 고쳤는가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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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히브리인의 역사


97:9.1 (1071.6) 이스라엘 족속에게는 결코 12부족이 없었다. 겨우 서너 부족이 팔레스타인에 정착했다. 히브리 국가는 이른바 이스라엘 족속과 가나안 족속이 연합한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다. 히브리인이 가나안 족속을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냈다고 사제들이 기록했어도, 그들을 결코 몰아내지 않았다.


97:9.2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의식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뿌리를 내렸고, 후일의 유대인 의식은 남쪽 유다에서 생겼다. 유대인(유다 사람)은 언제나 북쪽 이스라엘 (에브라임) 사람들의 이름을 더럽히고 그 기록에 먹칠하려고 애썼다.


97:9.3 히브리인의 역사는 암몬 족속이 길르앗 족속을 공격하는 데 저항하려고 사울이 북부 씨족들을 불러 모음으로 비롯된다. 사울은 3천 명 남짓한 군대로 적을 무찔렀고, 이 공훈 때문에 임금이 되었다. 추방된 사제들은 사울의 군대를 330,000명으로 불렸고, 전투에 참여한 부족들의 명단에 "유다"를 보탰다.


97:9.4 군대의 인기로 사울은 임금이 되었고, 아무 사제나 선지자가 개입하지 않았지만, 사제들은 사무엘 선지가 사울을 임금으로 세웠다고 기록하였다. 그들은 다윗의 유다 왕권을 위하여 “신에게서 내려온 후계”를 세우기 위해서 이렇게 했다.


97:9.5 유대인 역사에서 가장 큰 왜곡은 다윗의 이야기이다. 다윗은 필리스티아 연맹에 들어갔고, 필리스티아 족속은 사울을 물리쳤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충성했더라면 이런 짓을 할 수 없었다. 다윗의 군대는 불평꾼의 집합이었다.


97:9.6 (1072.4)
사울이 길보아에서 필리스티아 족속에게 패한 것은 야웨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렸다. 이 패배를 유다의 편집인들은 사울이 의식을 잘못 치른 탓으로 돌렸다. 이 편집자들은 다윗의 왕권을 세우기 위한 배경으로 사울과 사무엘의 전통이 필요했다.


97:9.7 다윗은 헤브론에서 본부를 차렸고, 동료들은 다윗을 유다 왕국의 임금으로 선포했다. 유다는 대체로 히브리인 아닌 자들(켄, 갈렙, 예부스 및 기타 가나안 족속들)로 구성되었다.


97:9.8 신성한 역사와 세속의 역사의 차이점은 다윗 임금을 만드는 것에 관하여 구약에서 발견되는 두 가지 다른 이야기가 잘 설명해 준다. 그의 직계 추종자들은 나중에 신성한 역사에 관하여 길고도 지루한 설명을 준비했고, 거기에는 사무엘 선지가 신의 지시로 어떻게 다윗을 그의 형제들 사이에서 골랐는가, 공식으로 진행하여 정교하고 엄숙한 예식에 따라서 히브리인의 임금이 되도록 그에게 기름을 부었고, 그리고 나서 그를 사울의 후계자로 선포했는지 그려져 있다.


97:9.9 아주 여러 번 사제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가진 기적같은 거래에 관하여 지어낸 이야기를 준비한 뒤에, 그 기록에 이미 남아 있던 평범하고 사실에 관계되는 언급을 완전히 없애지 못했다.


97:9.10 다윗은 처음에 사울의 딸, 다음에는 나발의 과부, 다음에는 게수르 임금 탈마이의 딸과 결혼하여, 정치적으로 입지를 굳히려고 애썼다. 아내 밧세바는 말할 것도 없고, 예부스의 여인들로부터 여섯 아내를 골랐다.


97:9.11 (1073.1) 이런 민족으로부터 다윗은 사라지는 이스라엘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다 왕국이라는 허구를 만들었다. 유다의 부족은 유대인이기보다 오히려 이방인이었다. 다윗은 그때 예부스 족속과 조약을 맺었고, 연합 왕국의 서울을 예부스(예루살렘)에 세웠다. 필리스티아 족속이 흥분했고 곧 다윗을 공격했다. 다윗이 그들을 물리쳤고, 다시 한 번 야웨는 “만군의 주 하나님”으로 자리를 잡았다.


97:9.12 그러나 야웨는 어쩔 수 없이 가나안의 신들과 이 영광을 얼마큼 나누어야 했는데, 다윗 군대의 대부분이 히브리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다의 편집자들이 놓쳐서 너희 기록 중 내막을 드러내는 이 말이 나타난다: “야웨가 내 앞에서 내 적들을 부수었도다. 그런즉 그는 그곳의 이름을 바알 페라짐이라 불렀더라.” 다윗의 병사들 가운데 80퍼센트가 바알의 신도였기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했다.


97:9.13 기브온 족속은 에브라임 족속과 평화 조약을 맺었는데, 사울은 가나안 도시 기브온을 쳤다, 이 때문에 야웨가 그를 버렸다고 지적함으로 사울이 길보아에서 졌다고 다윗은 설명했다. 가나안 족속과 화해하는 정책과 걸음을 맞추어, 다윗은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을 교수대에 달리도록 기브온 족속에게 넘겨주었다.


97:9.14 필리스티아 족속을 물리친 뒤에 다윗은 “야웨의 상자”를 손에 넣었고, 예루살렘으로 가져 와서, 그의 왕국에서 공식으로 야웨를 숭배하게 하였다. 다음에 그는 이웃 부족들―에돔 족속, 모압 족속, 암몬 족속, 시리아인―에게 무거운 조공을 바치게 하였다.


97:9.15 다윗의 부패한 정치 조직은, 히브리인의 도덕 관습에 어긋나게, 북쪽에서 땅의 개인 소유를 시작했고, 필리스티아 족속이 이전에 거두었던 카라반 관세를 대번에 장악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아를 결국 죽인 일련의 끔찍한 일들이 생겼다. 반란이 터진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압살롬을 선동자로 부를지 모른다. 그의 어머니는 가나안 사람이었다. 밧세바의 아들―솔로몬―외에도 왕좌를 얻으려고 다투는 자가 여섯이나 있었다.


97:9.16 (1073.6) 다윗이 죽은 뒤에 솔로몬은 사치스런 왕궁과 기타 건축 사업으로 나라를 파산시켰고, 그의 후궁들은 거의 1천 명에 이르렀다.


97:9.17 이때가 되자 실로에 있던 야웨의 성전은 신용을 잃었고, 나라의 모든 숭배는 예부스에, 화려한 왕실 예배당에 집중되었다.


97:9.18 이스라엘과 유다 사이에는 여러 번 전쟁이 있었다. 이스라엘은 땅을 사고 팔기 시작한 전제 군주의 통치를 받았다.


97:9.19 아합 임금이 나봇한테서 땅을 사려고 했을 때 문제가 터졌다. 그의 아내 나봇은 "엘로힘과 임금"의 이름을 모독했다는 죄명으로 나봇의 땅을 몰수하라는 서류에 아합의 이름을 위조했다. 엘리야가 그 장면에 나타나서 아합이 나봇 가족을 죽인 것을 비난하였다.


97:9.20 예호아하스와 아들 예로보암이 이스라엘을 적들로부터 구원하였고, 어느 악당 귀족이 사마리아에서 다르렸는데, 그의 약탈 행위는 다윗 왕조에 필적하였다.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자, 엘리야, 아모스, 호세아가 비밀 기록을 시작하였고, 이것이 유대교와 기독교 성경의 진짜 시작이었다.


97:9.21 (1074.3) 이스라엘 왕이 아씨리아에 더 조공 바치기를 거절하자 3년 동안 포위가 시작되었고, 북쪽 왕국은 사라졌다. 유다에서는 몇 사람의 손에 토지가 집중되었다. 이내, 야웨의 성전과 나란히, 바알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생겼다. 이 공포의 통치는 소년 임금 요아스가 이끈 일신교 폭동으로 인하여 막을 내렸고, 그는 35년 동안 야웨를 위한 투쟁을 벌였다.


97:9.22 이내 야웨의 성전과 나란히, 바알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생겼다. 소년 임금 요아스의 일신교 폭동이 공포의 통치를 끝냈다. 시골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 다음 임금 아마시아를 살해하고, 그의 아들 웃시야를 왕좌에 앉혔다. 유다는 아씨리아에 조공을 바침으로 1백 년 동안 존재했다. 첫 이사야는 예루살렘이 야웨의 도시이니까, 결코 무너지지 않으리라고 그들에게 말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서슴지 않고 예루살렘이 망하리라고 선포했다.


97:9.23 소년 임금 마낫세의 통치 밑에서 활동하던, 썩고 부유한 정치가 일당이 유다의 진짜 파멸을 가져왔다. 아씨리아의 멸망과 에집트의 우세는 한동안 유다에게 구원을 가져왔다.


97:9.24 아씨리아를 도우려고 네코의 막강한 군대가 에집트에서부터 올라오자, 요시아는 패배했고, 유다는 에집트에 조공을 바치는 처지로 떨어졌다. 이처럼 진짜 에집트 종살이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나서 바알 정치가들이 궁전과 사제를 모두 장악한 시기가 뒤따랐다.


97:9.25 느부갓네살이 네코를 타도한 뒤에, 유다는 바빌론의 통치를 받게 되었고, 10년의 유예 기간을 주었으나 곧 반란을 일으켰다.


97:9.26 (1075.2)
히브리인은 바빌로니아의 군대가 잠시 물러나서 기뻐했으나,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멸망이 다가오는 것을 일러 주었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야웨와 바알의 싸움은 포로 생활로 끝이 났다.


97:9.27 바빌론에서, 유대인은 특별한 관습을 가졌으므로, 그들의 이념이 이기려면 이방인을 개종시켜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대 종교는 정말로 바빌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동안에 생성되었다.


97:9.28 불멸의 교리도 또한 바빌론에서 모습을 갖추었다. 유대인은 미래가 그들의 복음의 강조에서 멀어졌다고 생각했다. 이제 처음으로 종교는 정치ㆍ사회학ㆍ경제학으로부터 점점 더 분리되어야 하는, 인간의 생각 및 행동 체계로서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97:9.29 유대 민족의 신성한 역사로 여겨 왔던 많은 것이 평범한 세속 역사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다. 유대교의 토양으로부터 기독교가 자라났지만, 유대인은 기적의 민족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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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히브리 종교


97:10.1 (1075.6) 이스라엘 족속의 지도자들은 유일한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특별 수고를 하라고 선택된 백성이라고 그들을 가르쳤다. 메시아는 그들과 온 세계 위에 평화의 왕으로서 군림하리라고 전에 유대인들에게 약속했다.


97:10.2 작별 웅변에서 놀라운 하나님 이야기를 모세가 제시했으나 히브리 씨족들은 이를 물리쳤다. 마찬가지로, 히브리 민족의 잔재는 사제층의 의식을 지지하고 둘째 이사야의 훌륭한 가르침을 물리쳤다.


97:10.3 그 이후 세례자 요한의 시절까지 이스라엘은 영적 후퇴를 겪었으나, 유대인은 우주의 아버지 개념을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리스도 뒤 20세기에 이르기까지도, 그들은 이 신 개념을 줄곧 따랐다.


97:10.4 한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까지 일신교의 횃불을 넘겨 준 충실한 선생들이 끊이지 않고 모세로부터 세례자 요한까지 이어졌다.


97:10.5 결국 유대인은 정치적 신분을 잃었지만, 하나님을 믿는 히브리 종교는 흩어진 유랑자들의 가슴 속에 줄곧 살아 있다. 이 종교가 살아남은 것은 추종자들이 높은 가치 기준을 보존하였기 때문이다. 유대 종교는 한 민족의 이상을 보존했지만, 철학이 모자랐고, 미학적 성질이 거의 빠져 있었다. 하지만 도덕적 가치를 보존하고 지속하였다. 최고의 야웨는 뚜렷하고, 선명하고, 개인적이고 도덕이 있었다.


97:10.6 (1076.3) 유대인은 거의 아무 민족도 따른 적이 없을 정도로, 정의ㆍ지혜ㆍ진리ㆍ올바름을 사랑했지만, 신의 이러한 성질을 지적으로 파악하고 영적으로 이해하는 데 모든 민족 중에서 가장 적게 기여하였다. 히브리 신학은 다른 두 세계 종교, 기독교와 모하메드교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97:10.7 유대 종교는 또한 그 제도 때문에 버티었다. 제도화된 종교의 잘못을 보고서, 그들은 집단 활동의 기법을 없애려 한다. 모든 의식을 없애는 대신에, 의식을 개혁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에스겔은 개인의 도덕적 책임을 주장하는 데 그들과 합세했지만, 그는 또한 우수하고 정화된 의식을 충실히 지키는 관행을 확립하는 데 손을 댔다.


97:10.8 이스라엘의 선생들은, 일찍이 유란시아에서 있었던 종교의 진화에서 가장 큰 공적을 이루었다: 폭발하는 시나이 화산의 신령, 야만스러운 악귀 야웨라는 미개한 개념으로부터, 만물의 창조자요, 사랑이 가득하고 자비로운, 온 인류의 아버지 개념이 되기까지 점진적인 변화가 있었다. 네바돈 미가엘로 인하여 더욱 커지고 아주 아름답게 확대될 때까지, 우주의 아버지를 인간이 가장 높게 상상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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