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서 재단 번역본 한국어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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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담과 이브의 가정 생활
7. 동산의 생활

8. 천지 창조의 전설

 

 

제 74 편  아담과 이브



. 지은이: "동산의 목소리" 천사, 솔로니아
. 기록시기 : 1934년

74:0.1 (828.1) 아담과 이브는 서기 1934년(이 글을 쓸 때)부터 따져서 37,848년 전에 유란시아에 도착했다. 발표도 없이, 두 천사 수송기가 개량자 수송을 담당한 예루셈 직원들을 동반하고, 성전 근처에 천천히 내렸다. 아담과 이브의 몸을 다시 물질로 만드는 작업은 새로 지은 성소의 구역에서 이루어졌고, 열흘이 걸렸다. 그들은 동시에 의식을 찾았다. 물질 아들딸은 반드시 함께 봉사하며, 쌍을 이루어 일하라고 계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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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루셈 시절의 아담과 이브


74:1.1 (828.2) 아담과 이브는 예루셈에서 선임 물질 아들 집단에 속했고, 함께 14,311번이었다. 셋째 육체 시리즈에 속했고, 키는 240센티미터가 조금 넘었다.


유란시아로 오려고 선택되었을 때, 아담은 이브와 함께, 예루셈의 물리 실험실에 고용되어 있었고, 1만5천 년이 넘도록 생명 수정에 적용되는 실험 부문에서 지도자였다. 또한 훨씬 전에는 예루셈에서 새로 도착한 자들을 위한 여러 시민 학교에서 선생이었다. 그들의 유란시아 활동에서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유란시아에서 아담의 모험에 자원자를 모집한다는 발표가 있었을 때, 선임 집단 전체가 자원하였다. 멜기세덱 검사자들은 아담과 이브를 선택하였고, 이들은 라나포지와 최고자들의 승인을 얻었다.


아담과 이브는 루시퍼 반란 당시에 미가엘에게 끝까지 충성했다. 그들은 유란시아에서 일어난 일의 발표를 자세히 들었고, 그런 세계에서 어떻게 일할 것인가 샅샅이 가르침을 받았다. 그들은 에덴시아의 최고자들에게, 그리고 구원자별의 미가엘에게 충성한다는 합동 서약을 마쳤다. 또한 그들의 임무 세계에 대한 통치를 마칠때까지 유란시아 멜기세덱 관리 군단이 그들을 주관하도록 권고 받았다.


이 예루셈 쌍은 사타니아의 서울과 다른 곳에 자손 아들 50명과 딸 50명을 남겨 두었는데, 이 아이들은 진보의 함정을 피한 훌륭한 사람들이었고, 부모가 유란시아를 향하여 떠날 때, 관리자로서 모두 임명되었다. 이 아이들은 비물질화 본부까지 부모를 따라가서, 천사 수송을 위한 준비로, 인격이 의식을 잃고 잠들었을 때, 부모에게 작별을 알렸다.


74:1.6 (829.2) 이렇게 아담과 이브는 유란시아에서 닥칠 위험에 대하여 준비를 갖추고 충분히 가르침을 받고서 새 직책이 기다리는 곳으로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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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담과 이브의 도착


74:2.1 (829.3) 아담과 이브는 예루셈에서 잠에 들어갔고, 유란시아의 아버지 성전에서 깨어났다. 환영하는 군중 가운데서 익히 소문을 들어 왔던 반과 아마돈과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에덴의 언어는 안돈 족속의 방언이었다. 반과 아마돈은 24 글자로 된 새 알파벳을 만들어서 이 언어를 개량했고, 아담과 이브는 예루셈을 떠나기 전에 이 방언을 통달했기 때문에, 아마돈은 새 통치자가 자기 방언으로 말을 거는 것을 들었다.


“새들을 놓아 주어라. 약속된 아들이 오셨다는 말씀을 새들이 전하게 할지어다.” 하고 전달자들이 비둘기의 회합 장소까지 달려갔다. 신자들의 수백 촌락이 비둘기들을 계속 공급하고 있었다.


아담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근처의 부족 사람 수천 명이 반과 아마돈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아담과 이브를 환영하고, 보이지 않는 아버지께 경배를 드리려고 에덴으로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아담과 이브는 성전 북쪽의 언덕에서 열린 환영회까지 호위를 받았다. 아마돈은 접대 위원회의 의장이었고, 이 위원회는 아마돈을 포함하여, 여섯 산긱 종족으로부터 대표 한 사람씩, 중도자의 임시 우두머리, 놋 족속의 대변인 아난, 동산의 설계자 노아, 거주하는 생명 운반자 2명, 총 12명으로 구성되었다.


74:2.6 (830.1) 다음에 선임 멜기세덱이 행성 관리 직책을 아담과 이브에게 넘겨주었다. 반은 물질 아들 딸이 최고자들과 미가엘에게 충성을 서약했고, 유란시아의 통치자라고 선포했다. 이로써 반은 멜기세덱 관리자들의 도움을 받아 15만 년이 넘도록 지녔던 권한을 양도했다.


아담과 이브는 세상 통치자의 자리에 취임하는 이때, 임금 다운 예복을 걸쳤다. 직물 짜기는 에덴 시절에 아직도 유행하고 있었다.


천사장들의 선포가 들렸고, 가브리엘의 방송하는 목소리가 사타니아의 606번 행성에서, 유란시아의 둘째 심판 점호, 제2 섭리 시대에, 잠자고 있던 생존자들이 부활될 것을 선포하였다. 영주의 섭리 시대는 지나갔고, 아담 시대, 곧 행성의 제3 시대가 열렸다. 세계적 혼란이 있었는데도, 유란시아의 새 통치자들은 유리하게 보이는 조건 하에서 통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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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담과 이브가 행성에 대하여 배우다


74:3.1 (830.4) 정식으로 취임하고 난 뒤에, 아담과 이브는 지구가 고립된 것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귀에 익었던 방송은 조용했고, 행성의 통신회로도 단절된 상태였으며, 함께 왔던 동료들도 돌아갔다. 유란시아는 반란으로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아담과 이브는 보름달이 비치는 동산을 거닐면서 다음 날을 계획하였다.


칼리가스티아의 배반이 있었던 고립되고 혼란에 빠진 유란시아 행성에서 아담과 이브의 첫날이 이렇게 끝났다. 너무나 쓸쓸했다.


둘째 날은 행성 관리자들 및 자문 위원회와 회의를 하면서 보냈다. 칼리가스티아의 계획이 완전히 물거품이 된 것에 관하여 자초지종을 모두 들었다. 신의 진보계획과 다르게 애쓰는 것이 어리석음을 충분히 깨달았다. 이렇게 둘째 날이 저물었다.


셋째 날은 동산의 검열에 쓰였다. 에덴 동산을 만들려고 수고한 사람들에게 명예를 돌리기 위해 만찬을 하며 검열을 마쳤고, 밤이 늦도록 동산을 거닐며, 자신들의 방대한 임무에 대해 이야기했다.


넷째 날에 아담과 이브는 동산 집회에서 연설했다. 죄와 반란의 결과로 유란시아의 폭락을 구제하기 위한 여러 방법을 설명했다. 이날은 대단한 날이었고, 행정부를 운영할 사람들을 위한 연회로 끝을 맺었다. 주목하라! 남자 뿐 아니라 여자들도 이 무리 속에 있었고, 달라마시아 시절 이후 처음이었다. 이브, 한 여자가, 남자와 함께 세상사의 명예와 책임을 나누는 것을 바라보다니, 놀라운 개혁이었다. 이렇게 넷째 날이 끝났다.


74:3.6 (831.3) 다섯째 날은 임시 정부를 조직하는 데 보냈고, 이것은 멜기세덱 관리자들이 떠날 때까지 활동할 행정부였다.


여섯째 날은 수많은 종류의 사람과 동물을 검열하는 데 쓰였다. 혼란 속에서 질서를 찾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더 많이 이해하였다.


아담은 한 번 보고, 모든 물질 생물의 기원과 성품과 활동을 묘사하는 이름을 줄 수 있었다. 아담이 온 사타니아에서 가장 노련한 해부학자 중의 하나인 것을 사람들은 몰랐다. 이브는 똑같이 능숙했고, 아담의 능숙함과 노련함에 동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여섯째 날이 저물었을 때, 아담과 이브는 “에덴의 동쪽” 새 집에서 처음으로 쉬었다. 지금까지 너무 바빴고, 기쁜 마음으로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하루 종일 쉴 것을 기대하였다.


그러나 상황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아담은 동산 거주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지능을 너무 압도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들이 엎드려 그들을 신으로서 예배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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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첫 소동


74:4.1 (832.1) 여섯째 날 밤 아담과 이브가 잠자는 동안에 아버지의 성전 근처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흥분한 남녀 몇 백 명은 아담의 친근한 민주적 방법이 너무 겸손하다고 판단했고, 이는 신이 육체의 모습을 입고 내려왔거나, 실제로 신일 수 있어 숭배를 받아 마땅하다고 결정했다.


아담과 이브의 출현은 이들에게 벅찬 일이었다. 사람마다 존경심과 숭배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절하고 엎드려서, 그 고귀한 쌍을 정오에 아버지의 성전으로 모셔오자고 함께 휩쓸렸고, 정말로 진지했다.


반이 항의했지만 일축되었다. 아마돈은 보초일로 자리에 없었다. 흥분한 에덴 사람들은 반도 너무 겸손하고 티를 내지 않으며, 어떻게 그리 오래 살았는지, 또한 아담이 오는 것을 알고 준비한 것을 들었으므로, 그를 붙잡아 찬미하려고 산까지 메고 올라가려 했을 때, 반은 무리를 헤쳐 나가서, 중도자의 우두머리를 황급히 아담에게 보냈다.


일곱째 날의 새벽에, 아담과 이브가 이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중도자들은 사람 태우는 새들로 아담과 이브를 성전으로 수송했다. 아담은 신의 아들 계급에 관하여 장황하게 이야기하고, 오직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가 지명하는 자들만 숭배를 받아도 좋다고 사람들에게 분명히 일러주었다. 아담은 그가 어떤 명예도, 그리고 어떤 존경도 받겠지만, 결코 숭배는 안 된다! 하고 알기 쉽게 설명했다. 일곱째 날 아침이었다.


그날은 중요한 날이었다. 한낮이 되기 바로 전, 예루셈에서 행성 통치자들의 취임 인정 소식을 가져온 천사 사자가 도착할 무렵이었다. 아담과 이브는 군중을 떠나면서 아버지의 성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은 이제 아버지의 성전에 가서 그분께 경배하십시오. 다시는 하나님 외에 아무도 경배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십시오.” 그들은 다 아담이 지시하는 대로 했다. 사람들이 성전 근처에서 엎드려 있는 동안 물질 아들과 딸은 산 위에서 홀로 서 있었다.


74:4.6 (832.6) 이것이 안식일 전통의 기원이었다. 에덴에서는 항상 성전에서 이 일곱째 날 정오 집회를 헌정하였다. 오전에는 육체의 질적 개선, 한낮은 영적 예배, 오후는 문화에 신경을 쓰며, 저녁은 함께 기뻐하며 보냈다. 이것은 한 번도 에덴에서 법이 되지 않았지만, 아담의 행정부가 땅에서 지배하는 한, 관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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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담의 행정


74:5.1 (833.1) 멜기세덱 관리자들은 아담이 온 뒤에 거의 7년 동안 계속하여 근무했으나, 마침내 세상사를 아담에게 맡기고 예루셈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아담은 여러번 조언자들에게 땅에서 남아있길 간청했지만 거절되었다. 물질 아들들이 세상사의 운영을 완전히 책임져야 할 때가 왔다. 사타니아의 천사 수송기들은 멜기세덱 12 존재와 반과 아마돈를 태우고 예루셈을 향하여 자정에 행성을 떠났다.


아담은 멜기세덱들의 조언에 따라, 바깥 세계와 무역 관계를 시작하려고 공업 기술을 육성하기 시작했다. 에덴이 붕괴되었을 때, 1백 개가 넘는 원시 제조 공장이 가동하고 있었고, 가까이 있는 부족들과 널리 무역 관계가 수립되었다.


오랜 세월 동안 아담과 이브는 세상을 개선하는 기법을 교육받았다. 동산에 모여든 지구 인구의 노른자를 제외하고 야만인ㆍ미개인, 반(半)문명화된 인간이 사는 세계에서 아담의 문화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일 준비된 집단이 여기저기 겨우 몇이 있었다.


아담은 세계 정부를 세우려고 노력을 기울였지만 끈질긴 저항에 부디쳤고, 집단 통제 제계를 작동시켜 중대를 모두 에덴 연맹으로 연합시켰다. 그러나 일을 시작하는 순간에, 칼리가스티아와 달리가스티아의 저항에 부딪쳤다. 몰락한 영주는 아직도 땅에 있으면서 저항하고 있었다. 아담은 종족들에게 칼리가스티아에 대해 경고하려고 애썼지만, 이들은 필사자의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어려웠다.


74:5.6 (833.6) 에덴 사람들 사이에서도 칼리가스티아의 가르침에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은 아담에게 늘 문제를 일으켰다. 아담은 이들과의 교제를 즉시 중지하고, 반이 조직하던 방법으로 에덴 사람들을 1백인씩 중대로 나누고, 각 중대에는 중대장, 그리고 10명의 집단을 책임지는 부관들을 두었다.


아담과 이브는 대의 정치를 실현하려고 왔지만, 자격을 갖춘 정부는 하나도 없었다. 에덴의 체제가 무너지기 전에, 아담은 바깥에서 무역 및 사회 중심을 거의 1백 개 세웠고, 강력한 개인이 아담의 이름으로 이끌었다. 이전에 반과 아마돈이 이 중심들의 대부분을 조직한 적이 있었다.


한 부족이 다른 부족에게 대사를 보내는 것은 아담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정부의 진화에서 큰 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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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아담과 이브의 가정 생활


74:6.1 (834.3) 아담 가족의 집터는 12.8 평방 킬로미터가 조금 넘었다. 이 집터 둘레로 30만 명이 넘는 순수한 자손들을 돌보도록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겨우 첫째 건물 단위가 완성되었을 뿐, 아담의 가족이 늘어나기도 전에, 에덴의 계획 전부가 물거품이 되었다.


아담손은 유란시아에서 보라 인종의 맏아들이며, 멜기세덱들이 떠나기 전에, 이브는 다섯 아이―세 아들과 두 딸―의 어머니였다. 임무의 불이행이 일어나기 전에, 딸 32명과 아들 31명을 낳았다. 아담과 이브가 에덴 동산을 떠났을 때, 가족은 4대로 이루어졌고 순수 핏줄 후손은 1647명이 되었다. 동산을 떠난 뒤에 필사자와의 공동부모로서 2명을 제외하고 아이들을 42명 두었다.


아담의 아이들은 한 살이 되어 어머니의 젖을 떼었으나, 동물의 젖을 먹지 않았다. 이브는 아이들에게 이가 생길 때까지, 견과의 즙과 과일 주스를 알맞게 섞어 주었다.


아담의 지역 바깥에는 불로 익혀 먹기가 유행했지만, 아담의 집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먹을 것이 익었을 때, 과일 따위가 먹기 좋은 것을 알았다. 하루에 한 번, 정오 뒤에 먹었고, 아담과 이브는 생명나무의 열매와 함께, 우주 방사물로부터 직접 “빛과 에너지”를 빨아들였다.


아담과 이브의 몸은 어렴풋한 빛을 발산했지만, 관습을 좇아서 반드시 옷을 입었다. 낮에는 거의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어도, 저녁때는 밤 옷을 걸쳤다. 그들의 몸에서 방사되는 빛이 대체로 옷에 가려졌으니까, 머리에서 방출되는 빛만 사람들이 알아볼 수 있었고, 이것이 후광의 기원이다.


74:6.6 (834.8) 아담과 이브는 약 8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서로, 그리고 친자식들과 교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힘은 악의 불협화음과 교란에 생각이 굴복할 때, 순간적으로 정지되었다.


아담의 아이들은 16살이 될 때까지 학교를 다녔고, 나이든 아이들이 더 어린 아이들을 가르쳤다. 어린아이들은 30분마다, 큰 아이들은 시간마다 활동을 바꾸었다. 오늘날 종족들의 놀이와 유머는 대체로 아담의 핏줄로부터 유래한다. 아담 족속은 모두 날카로운 유머 감각이 있었을 뿐 아니라 음악을 잘 이해했다.


약혼하는 평균 나이는 18살이었고, 이들은 2년 동안, 결혼에 관한 교육을 받았다. 스무 살에 결혼할 자격이 있었다.


후일에 신들로부터 내려왔다고 생각되는 왕족들의 형제와 자매가 결혼하는 관습은 아담 후손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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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동산의 생활


74:7.1 (835.4) 아담의 아이들은 서쪽 학교를 4년 동안 다녔고, “에덴의 동쪽”에서 살고 일했다. 16살이 될 때까지, 예루셈 학교의 방법으로, 지적 훈련을 받았고, 16살부터 20살까지 여러 유란시아 학교에서 가르침을 받고, 거기서 낮은 학급에서 선생으로 봉사하였다.


서쪽 학교 체계의 목적은 온통 교제였다. 오전은 원예와 농업에, 오후 시간은 경쟁하는 놀이에 쓰였다. 저녁은 사회적으로 교제를 가지고 개인의 친교를 개발하는 데 이용되었다. 종교 및 성(性) 교육은 가정의 분야, 부모의 임무로 여겼다.


74:7.3 (835.6) 이 여러 학교에서 가르침은 다음에 관한 교육을 포함하였다:


1. 건강과 몸을 돌보기.


2. 황금률, 사회 교제의 기준.


3. 개인의 권리와 집단의 권리의 관계, 공동체에 대한 의무.


4. 여러 지구 종족의 역사와 문화.


5. 세계 무역을 진보시키고 개선하는 방법.


6. 임무와 감정의 갈등을 조정하는 것.


7. 놀이ㆍ유머ㆍ경기의 개발.


74:7.11 (835.14) 학교와 동산의 활동이 모두 방문객에게 열려 있었다. 한 유란시아인이 동산에서 머무르려면, “입양되어야” 했다. 입양된 자는 아담 수여의 계획과 목적에 관하여 교육 받고, 이 사명을 지키겠다는 뜻을 알리고, 아담의 사회적 통치와 우주의 아버지의 영적 통치권에 충성함을 선언했다.


동산의 법은 달라마시아 율법에 기초를 두었고, 일곱 항목 아래에 선포되었다:


1. 건강 및 위생 법칙.

2. 동산의 사회 규칙.

3. 무역과 상업의 법규.

4. 공정한 놀이 및 경쟁 법칙.

5. 가정생활의 규칙.

6. 황금률을 지지하는 시민 법규.

7. 최상의 도덕률인 일곱 가지 명령.


에덴의 도덕 법규는 달라마시아의 일곱 계명과 거의 같았다. 이 계명들을 지키는 이유를 가르쳤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금령에 관하여, 생각조절자가 깃드는 것이 살인하지 않아야 하는 추가 이유가 제시되었다. 그들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누구나 자기의 피를 흘려야 할지니, 하나님이 그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드셨음이라”하고 가르쳤다.


74:7.21 (836.10) 에덴에서 대중 예배 시간은 한낮이었고, 해질녘은 가족 예배 시간이었다. 아담은 정해진 기도를 막으려고 최선을 다했고, 효과적 기도는 완전히 개인적인 것, “혼의 간구”이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에덴 사람들은 달라마시아 시절의 기도와 형태를 고집했다. 아담은 또한 종교 의식에서 피의 희생제물 대신 땅의 열매를 바치 려고 애썼지만, 동산이 무너지기 전에는 거의 진전이 없었다.


아담은 종족들에게 남녀평등을 가르치려고 애썼다. 이브가 남편 옆에서 일하는 방식은 동산에 있는 모든 거주자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때까지 인류는 모든 출산이 “아버지의 허리”에서 거한다고 가정했다. 단순히 어머니는 임신하고 갓난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존재로만 여겼다.


아담은 당대의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가르쳤지만, 그것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비록 아담이 실패했지만, 진화 민족들이 어쩌다가 확보한 이 소량의 수입된 종족의 피로부터 엄청난 이득이 생겼다.


아담은 지구의 복지와 향상을 일했지만, 더 이상 혼합 잡종들을 진보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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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천지 창조의 전설


74:8.1 (836.14)
유란시아를 엿새 동안에 창조했다는 이야기는 아담과 이브가 동산을 처음 훑어보는 데 꼭 엿새를 보냈다는 전통에 근거를 두었다. 이 상황은 달라마시아 사람들이 소개한 한 주의 기간을 사람들이 신성시하게 만들었다. 예배하려고 일곱째 날을 고른 것은 전적으로 우연히 생겼다.


세상을 엿새 안에 만들었다는 전설은, 사실 3만 년도 더 지나서, 나중에 생각한 것이다. 그 이야기의 한 가지 특징인 해와 달의 갑작스런 출현은, 오랫동안 가렸던 먼지 구름으로부터 태양과 달이 갑자기 출현한 전통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아담의 갈비로부터 이브를 빚어냈다는 이야기는 아담이 도착하기 45만 년도 더 전에 유형 참모진이 온 것과 관련하여 살아 있는 물질을 서로 교환한 천상의 수술이 혼동되어 압축된 것이다.


대다수의 민족들은 아담과 이브가 지구에 도착하고 나서 그들을 위하여 지어진 육체를 입었다는 전통에 영향을 받았다. 많은 집단이, 점진적으로 창조―진화―되었다는 초기의 관념 대신에, 어떤 특별 창조 방법으로 사람이 진흙에 기원을 가졌다는 이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진화의 사실은 현대에 발견된 것이 아니다. 땅에 있는 다양한 종족들의 진화 개념은 딱할 정도로 뒤범벅이 되었다. 많은 원시 부족은 그들이 여러 가지 동물의 후손이라고 믿고 “토템”으로 고르는 관습을 가졌다. 일부 북미 인디안 부족들은 그들이 비버와 코요테에서 유래했다고 믿었고, 어떤 아프리카 부족들은 하이에나, 한 말레이 부족은 리머, 한 뉴 기니아 집단은 앵무새로부터 유래한다고 가르친다.


74:8.6 (837.5) 아담 족속의 문명과 접촉을 가졌기 때문에, 바빌로니아인은 사람의 창조설을 불리고 꾸몄다. 사람이 신들로부터 바로 내려왔다고 가르치고, 그 민족이 귀족의 기원을 가졌다고 고수했지만, 이것은 사람이 진흙에서 창조되었다는 교리와 어울리지 않는다.


천지 창조에 관한 구약의 설명은 모세의 시절이 훨씬 지난 후이다. 모세는 히브리인에게 그렇게 왜곡된 이야기를 가르친 적이 없다. 그는 창조로부터 이스라엘 백성까지 간단 요약된 이야기를 제시하였고, 이는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 창조자 우주 아버지를 경배하기를 원했다.


초기의 가르침에서 모세는 아담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다. 초기의 전통은 아담 이전의 문명이 있음을 인정했다. 아담 이전의 인간에 대한 모든 언급을 근절하려 했던 후일의 편집자들이 소홀히 하여, 카인이 "놋의 땅"으로 가서 거기서 아내를 얻었다고 내막을 드러내는 언급을 없애지 못한 사실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뒤에 오랫동안, 히브리인은 널리 사용된 글자가 없었다. 이들은 이웃의 필리스티아인, 즉 높은 크레테 문명으로부터 정치적으로 피신한 자들에게 알파벳 쓰기를 배웠다. 히브리인은 기원전 약 900년까지 글자가 없었기 때문에, 몇 가지 천지 창조 이야기가 유행하였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에서 포로 생활 이후 수정된 메소포타미아 판을 받아들였다.


유대인의 전통은 모세에 관해 고정되었고, 아브라함의 핏줄을 추적하여 아담까지 미치려고 애썼기 때문에, 유대인은 아담이 온 인류의 시조라고 가정했다. 야웨는 창조자였고, 야웨가 아담을 만들기 전에 세상을 창조하였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아담이 엿새를 보냈다는 전통이 이야기에 섞였고, 그 결과 엿새 안에 천지를 창조했다는 전통이 기록되었고, 후일에는 모세가 그 글을 썼다고 명예를 돌렸다.


74:8.11 (838.3) 유대인 사제들이 (바빌로니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을 때, 천지창조 이야기를 마쳤고, 이 이야기를 모세가 적었다고 주장했다. 기원전 500년 무렵까지 당대의 히브리인은 이 글을 신이 준 계시라고 여기지 않고, 신화 같은 이야기로 여겼다.


모세의 가르침이라고 소문난 이 가짜 서적은 프톨레미 왕의 눈에 뜨였고,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새 도서관을 위한 70인 학자 위원회에게 이것을 그리스어로 옮기게 하였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나중에 “성서”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신학 체계들과 동일시됨으로 오랫동안 많은 서양 민족의 철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기독교의 선생들은 천지창조 관념을 이어받았고, 한때 황금시대가 있었는데 사람이 타락했다는 이론을 형성하였고, 이것은 어째서 사회가 유토피아 상태가 아닌지를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는 사람에게 실망을 준다. 아담의 잘못 때문에 인류를 벌하려는 복수심에 불타는 신을 암시할 뿐 아니라, 사람이 진보하지 않고 후퇴한다는 믿음에 근거를 두기 때문이다.


“황금시대”는 신화이지만, 에덴은 사실이었고, 동산의 문명은 실제로 멸망하였다. 아담과 이브는 동산에서 117년 동안 버티었고, 이브와 아담이 성급하고 판단을 잘못 내려서, 재앙을 신속히 가져오고 파멸을 초래할 정도까지 온 유란시아의 발전하는 걸음을 늦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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