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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 편  인간이 만든 정부의 진화



.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 1934년


70:0.1 (783.1) 생계문제가 해결되자, 인간의 접촉을 규제하고, 산업의 발달은 법과 질서를 요구하고, 사유 재산은 정부를 필요로 했다.


사회를 규제하는 어떤 종류의 체계가 평화를 보장한다. 사회적 규제는 사회의 조직과 뗄 수 없고, 관계는 통제하는 권한이 있음을 뜻한다. 정부는 부족ㆍ씨족ㆍ가족ㆍ개인의 대립 관계가 조정되기를 강요한다.


정부는 살아남을 가치가 있고, 생존의 가치로 전통이 된다. 무정부는 비참을 더하고, 따라서, 정부, 곧 상대적 법과 질서는 천천히 태어났거나 태어나고 있다. 살기 위한 투쟁의 강압적인 요구는 문자 그대로 문명의 진보적인 길을 따라 인류를 몰아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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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의 발생


70:1.1 (783.4) 전쟁은 진화하는 사람의 자연스런 상태요, 평화는 문명이 진보한 정도를 재는 척도이다. 문명의 구조가 혼란에 시달릴 때는 인간의 상호 관계에서 생기는 염증을 폭력으로 해결하는 파괴적인 방법으로 즉시 되돌아간다.


전쟁은 오해와 염증에 대하여 동물처럼 반응하는 것이다. 나중에 질이 나빠진 아담 족속, 놋 족속, 산긱 종족들은 모두 싸움을 좋아했다. 안돈 족속은 일찍부터 황금률을 배웠으며, 오늘날도 그 에스키모 후손은 대체로 그 법을 따라 산다.


안돈은 자식들에게, 막대기로 나무를 때림으로 말다툼을 해결하는 것을 가르쳤다. 후일의 안돈 족속은 구경거리를 열어서 싸움을 해결하곤 했는데, 싸우는 자들이 서로 놀리고 비웃었고, 한편 청중은 박수로 이긴 자를 결정했다.


그러나 사회가 충분히 진화하기까지 전쟁과 같은 현상은 일어날 수 없다. 전쟁은 어느 정도의 조직이 있음을 의미한다.


사회 집단들이 생겨나자, 개인의 짜증은 집단의 감정 속에 파묻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먼저 내부 집단, 곧 부족이 평화를 누렸고, 그들은 언제나 바깥 집단, 다른 부족 사람들을 싫어했다.


70:1.6 (784.2) 초기의 족장들은 오해를 해소하려고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족의 돌싸움을 허가하는 것이 필요함을 흔히 발견했다. 이것은 그저 재미로 하는 외에 아무런 다른 이유가 없었고, 그냥 싸움을 즐겼다.


사람이 동물로부터 진화한 인간이기 때문이며, 싸움을 좋아한다. 초기에 전쟁의 원인은 다음과 같았다:


1. 배고픔은 식량을 얻기 위한 침략으로 이끌었다. 이러한 투쟁에서 초기의 평화로운 부족들은 실질적으로 멸종했다.


2. 여자의 부족 ―집안 일꾼이 모자라는 것을 해소하려는 시도였고, 여자를 훔치면 반드시 전쟁으로 이끌었다.


3. 허영심―부족의 용맹을 나타내려는 욕심. 우수한 집단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열등한 민족에게 강제하기 위하여 싸우려 한다.


4. 노예 ―노동 계급이 될 새 일꾼을 모집할 필요.


5. 복수는 이웃 부족이 동료 부족 사람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믿었을 때, 전쟁의 동기가 되었다. 애도는 머리 하나를 집으로 가져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복수하는 전쟁은 근대에 바로 이르기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다.


6. 오락 ― 초기 시절에 젊은 남자들은 전쟁을 오락으로 보았다. 평화가 답답할 때, 가까이 있는 부족들은, 노는 날로, 거짓 싸움을 즐기기 위해서, 약탈에 참가하려고 반 우호적 전쟁에 나가는 습관이 있었다.


7. 종교 ― 원시 종교들은 모두 전쟁을 인가했다. 초기의 사제들은, 유감스럽게도 보통, 군사력과 손을 잡았다. 오랜 세월 동안에 큰 평화 운동 중의 하나는 교회와 국가를 분리하려는 시도였다.


이 옛 부족들은 추장이나 주술사의 요청을 받고서, 전쟁을 일으켰다. 히브리인은 “전투의 하나님”을 믿었고, 미디안 족속을 멸하면서, 모든 남자를 도살하고, 모든 남자 아이와 처녀가 아닌 모든 여자를 죽인 행위는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해졌다.


70:1.16 (784.12) 그러한 잔학 행위는, 사람이 그 책임을 신들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신이 부추긴 것이 아니다.


한 여자 데보라가 히브리인을 통치했을 때에도, 바로 이 대규모의 잔학 행위가 계속되었다. 그 여자 장군이 이방인에게 승리했을 때 ‘모든 무리가 칼날에 이슬이 되게’ 만들었고, ‘하나도 남지 않았다.’


아주 일찍부터 독이 있는 무기가 쓰였다. 온갖 종류의 몸 부분 자르기가 실행되었다. 사울은 자기 딸 미갈을 위해서 내야 할 지참금으로, 다윗에게 필리스티아인 1백 명의 포피를 서슴지 않고 요구했다.


초기의 전쟁에는 부족 전체가 싸웠으나, 후일에는 두 부족이 싸우는 대신에, 그 두 사람만 결투에 들어갔다. 다윗과 골리앗의 경우처럼 대표 사이의 싸움에 모두를 거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전쟁이 처음으로 개선된 것은 포로를 잡는 것이었다. 다음에, 여자는 전투 행위에서 제외되었다. 전투가 복잡해지자, 군대 계급과 상비군이 생겨났다. 여자들은 언제나 군인들을 돌보았으며, 그들이 싸우도록 격려했다.


70:1.21 (785.4) 전쟁을 선언하는 관습은 공정 감각이 도래했음을 가리키며, 뒤이어 “문명화된” 전쟁 규칙이 차츰 발전되었다. 나중에는 어떤 거룩한 날에 싸우지 않는 것이 관습이 되었다. 다음에는 피난처의 권리를 공인하는 일이 따랐으며, 정치적 망명자는 보호를 받았다.


원시인의 사람 사냥으로 시작한 전쟁은 점차적으로 문명화된 국가의 질서정연한 체계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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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쟁의 사회적 가치


70:2.1 (785.6) 전쟁으로 생기는 어떤 이득을 얻으려고 끔찍한 대가를 치르는 것은 사회가 일시 야만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이었다. 전쟁은 효력이 센 약이요, 아주 비싸고 몹시 위험하다. 어떤 사회적 질병을 가끔 고치지만, 전쟁은 때때로 환자를 죽이고 사회를 파괴한다.


오늘날의 사회는 허다한 유익한 기술 혁신의 이익을 누리는데, 이것들은 처음에 전적으로 군사 목적이었고, 춤은 전쟁의 덕으로 비롯되었으며, 춤은 초기 형태의 군사 훈련의 하나였다.


70:2.3 (785.8) 전쟁은 다음 이유로 문명에 가치가 있었다:


1. 훈련, 곧 강제된 협동을 부과했다.


2. 사람들이 인내와 용기를 소중히 여기게 만들었다.


3. 민족주의를 육성하고 자리 잡게 만들었다.


4. 약하고 부적당한 민족들을 멸망시켰다.


5. 원시적 평등과 선택적 계층화 된 사회라는 착각을 해소했다.


문명이 천천히 진보함에 따라서 언젠가 전쟁을 버려야 한다. 옛날의 전쟁은 국가를 강화했지만, 현대의 전투는 문명 세계의 문화를 뒤집어엎는다. 고대의 전쟁은 열등한 종족의 학살을 초래했다. 현대 전투의 최종 결과는 가장 훌륭한 인간 혈통을 골라서 파괴한다. 지난 시대에 전쟁은 문명을 앞으로 나가게 한 사회적 효소였다. 지금은 포부와 발명이 그 결과를 달성한다. 전쟁은 문화발전에 급속히 손해가 되고 있다.


한때 의사들은 방혈(防血)이 여러 가지 병을 치료한다고 믿었지만, 의사들은 그 뒤로 이러한 질병의 대부분에 더 좋은 처방을 발견했다. 전쟁이 낳는 국제적 유혈 보다 더 나은 해결책을 국가들이 찾아야 한다.


70:2.11 (786.2) 유란시아의 나라들은 군사주의와 산업주의 사이에 벌어지는 싸움을 시작하였다. 산업주의가 군사주의를 이기려면, 다음의 위험을 피해야 한다.


1. 물질주의, 곧 영적으로 눈이 먼 상태로 강하게 흘러가는 경향.


2. 부와 권력의 숭배, 가치의 왜곡.


3. 사치의 악덕, 문화적 미숙.


4. 게으름, 봉사에 무감각한 것, 이 두 가지 위험이 커진다.


5. 바람직하지 않게 종족이 연약해지는 것, 생물학상의 악화.


6. 성격이 성장하지 않고 표준화된 산업에 노예가 되는 위협. 노동은 사람을 고상하게 만들지만, 고역은 감각을 마비시킨다.


70:2.18 (786.9) 군사주의는 독재이며 잔인하다. 산업주의가 더 문명화된 것이며, 창의성을 촉진하고 개성을 북돋아주도록, 산업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사회는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창의성을 길러주어야 한다.


전쟁을 영화롭게 기리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라. 전쟁이 사회에 무슨 이익을 가져왔는지 헤아리고, 전쟁의 대용품을 마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이 오랫동안 계속될 것이다.


평화가 물질적 복지에 최선이라는 것, 그리고 사회가 평화스런 방법으로 전쟁의 대용품을 마련할 때까지, 사람은 결코 평화를 정상 생활의 형태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70:2.21 (786.12) 옛날 방식의 전쟁은 선천적으로 위대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았지만, 지도자를 찾으려면, 사회는 이제 평화를 정복하는 일, 곧 산업ㆍ과학, 그리고 사회적 성취에 눈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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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기의 인간관계


70:3.1 (787.1) 가장 원시적 사회에서는 집단이 전부이다. 아이들조차 집단의 공동 재산이다. 진화하는 가족은 육아를 집단으로 대체하였고, 한편 새로운 씨족과 부족들은 사회적 단위로서 자리 잡았다.


성욕과 모성애는 가족을 일으킨다. 집단이 가족을 갖기 이전 시절에, 비공식으로 뽑은 개인들이 지도자가 되었다.


가족들은 씨족, 곧 친척 집합의 혈연으로 뭉치게 되었다. 나중에 는 부족, 영토를 가진 공동체로 진화하였다. 이 초기의 원시 집단들을 결속한 것은 상업과 무역이었다.


환상적 평화를 계획하는 어떤 궤변보다, 국제 무역 조직이 유란시아의 평화를 훨씬 더 증진할 것이다. 언어의 발달, 수송 및 통신 방법이 무역 관계를 수월하게 만들었다.


공통된 언어의 부재는 언제나 평화 집단의 성장을 막았지만, 돈은 현대 무역에서 보편적 언어가 되어버렸다. 대체로, 산업 시장이 현대 사회를 결속한다.


70:3.6 (787.6) 초기 시대에 각 부족은 낯선 사람을 죽이는 것, 나중에는 그들을 종으로 만드는 것이 관습이었다. 옛날의 친교 관념은 씨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으며, 씨족의 회원 자격은 죽은 뒤에도 계속된다고 생각되었다―이것은 가장 초기의 영생 개념의 하나이다.


부족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의식은 서로의 피를 마시는 것이었다. 어떤 집단에서는 침을 교환하였고, 이것이 입 맞추는 관습의 기원이다.


후일에는 붉은 포조주로 묽게 만든 피가 쓰였고, 결국은 오직 포도주를 마시고 입족 의식을 마쳤다. 히브리인은 받아들인 외국인을 친절하게, 형제처럼 다루었다. ‘너희와 함께 거하는 외국인은 너희 사이에 태어난 자와 같게 될지니, 너희는 그를 네 몸처럼 사랑할지니라.’


“손님 자격의 친교”는 임시 친교였다. 방문하는 손님이 떠날 때, 접시를 반쪽으로 깨뜨리고 한 조각을 떠나는 친구에게 주었고, 나중에 방문하는 제삼자가 이를 소개장으로 이용했다.


첫 평화 조약은 "피의 유대"였다. 평화 대사들이 만나서, 살갗에서 피가 날 때까지 찌르고, 서로의 피를 빨아 먹고 평화를 선언하곤 했다.


70:3.11 (788.2) 가장 일찍 있었던 평화 사절단은 적들의 성욕을 채워 주기 위하여 가장 예쁜 처녀들을 데려오는 남자 대표단이었다. 이를 받은 부족은 자체의 처녀들을 데리고 답례 방문을 하였고, 이렇게 평화가 정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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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씨족과 부족


70:4.1 (788.3) 첫 평화 집단은 가족이었고, 다음에는 씨족ㆍ부족, 나중에는 민족이었으며, 민족은 결국 영토를 가진 현대 국가가 되었다.

씨족은 다음과 같은 어떤 공통된 이익에 빚을 지고 있다:

1. 공통된 조상을 가졌다.

2. 공통된 종교 토템에 충성한다.

3. 같은 지방 사투리를 말한다.

4. 공통된 거처를 함께 쓴다.

5. 같은 적을 무서워한다.

6. 공통된 군사 체험을 가진다.


70:4.9 (788.11) 씨족의 수령들은 반드시 부족 추장에게 종속되었고, 초기의 부족 정부는 씨족들의 허술한 연합이었다. 오스트랄리아 원주민은 결코 부족 형태의 정부를 개발하지 못했다.

씨족의 평화 시 추장은 보통, 모계를 통해서 다스렸다. 부족의 전시 추장은 부계를 확립했다. 씨족들은 지역의 자치 정부에서 값진 목적에 쓰였지만, 크고 강한 국가의 성장을 아주 더디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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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부의 시작


70:5.1 (788.13) 국가의 정부는 점진적 진화의 산물이다. 초기의 씨족과 원시 부족들로부터 연속되는 체제의 인간 정부가 차츰 개발되었고, 이러한 정부는 생겼다가 없어졌다.


진짜 정부 단체의 처음은 장로 회의였다. 야만인도 지혜와 경험을 존중하였고, 장로들이 지배하는 오랜 세월이 뒤따랐다. 나이 든 소수가 이렇게 독재하는 통치는 차츰 족장의 관념으로 발전했다.


초기의 장로 회의에서, 당대의 관습을 풀이했을 때는 법정이었다. 새로운 양식의 사회 관습을 세울 때는 입법 기관이었고, 그러한 선포와 법령이 집행되는 한도까지, 그것은 행정부였다.


어떤 부족에는 여자 회의가 있었고, 때때로 많은 부족이 여자 통치자를 가졌다. 홍인의 어떤 부족들은 “7인 회의”의 만장일치 통치를 따르는 면에서 오나모나론톤의 가르침을 보존했다.


여러 씨족의 수령들이 명령하는 군대는 한 사람이 지휘하는 강한 군대에 맞서서 승산이 없다는 것을 종족은 일찍부터 배웠다. 전쟁은 반드시 임금을 만들었다.


70:5.6 (789.4) 처음에 전쟁 추장은 군사 근무에만 뽑혔고, 평화시에는 그 권한을 일부 포기하였다. 이들은 평화 기간을 잠식하고, 다음 전쟁이 있기까지 계속하여 다스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 초기의 전쟁 군주들은 평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홍인은 흔히 두 벌의 추장―총재, 곧 평화시 추장, 그리고 상속되는 전쟁 추장―이 있었다. 평화시의 통치자는 또한 판관이요 선생이었다.


주술사가 어떤 초기의 공동체를 다스렸고, 그들은 흔히 추장으로서 사제, 의원, 최고 집행자로서 행동하곤 했다. 아주 흔히 초기의 왕의 문장은 최초에 사제의 옷의 표시나 상징이었다.


이런 단계를 거쳐서 행정부가 차츰 생기게 되었다. 씨족 및 부족 회의는 나중에 나타나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선구자가 되었다. 아프리카에는 오늘날 이 모든 형태의 원시 정부가 여러 부족 사이에서 실제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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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군주제 정부


70:6.1 (789.8) 완전한 집행 권한을 가진 추장이 나타난 뒤에야 국가가 생겼다. 한 인물에게 오로지 권한을 줌으로써 효과적 정부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사람은 발견했다.


족장이 임금이 되었을 때 그를 때때로 ‘민족의 아버지’라고 불렀다. 세월이 지나자, 왕이 신성한 기원을 가졌다는 믿음 때문에 통치권이 상속되었다.


세습하는 왕권은 이전에 임금이 죽고 후계자가 선출되는 사이에, 대혼란을 일으켰던 무정부 상태를 피했다. 왕의 가족과 귀족 제도의 관념은 또한 씨족이 “이름 소유권”을 가지는 관습에 기반을 두었다.


왕의 계승은 결국 초자연의 일로 간주되었고, 왕족의 피는 칼리가스티아 영주의 육체화된 참모진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이처럼 왕은 주물 성격자가 되었고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왕을 무서워하게 되었으며, 특별한 형태의 대화를 궁정에서 쓰도록 채택하였다.


초기의 주물 임금은 흔히 은둔 속에 두었다. 보통 한 대표가 그를 흉내 내도록 선택되었고, 이것이 수상의 기원이다. 첫 내각의 관리는 식량 관리자였고, 통치자들은 이내 상업과 종교를 책임지는 대표들을 지명했다. 초기 임금의 이러한 조수들은 인정받는 귀족이 되었고, 여자들이 전보다 더 존경받게 되자, 왕의 아내는 차츰 왕비의 위엄으로 올라갔다.


70:6.6 (790.3) 양심 없는 통치자들은 독을 발견함으로 큰 권력을 쥐었다. 임금의 적들은 금방 죽었다. 주술사ㆍ마술사ㆍ사제는 언제나 임금에게 강력한 저지 세력이었다. 지주, 곧 귀족들도 영향력을 미쳤다. 때때로 씨족과 부족들이 그저 들고 일어나서, 전제 군주와 폭군을 뒤집어엎었다. 폐위된 통치자는 자살하는 선택권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어떤 환경에서 자살하는, 고대 사회의 유행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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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원시의 클럽과 비밀 사회


70:7.1 (790.4) 혈연 관계는 처음 사회 집단들을 결정했고, 인간 관계는 친척인 씨족을 확대했다. 서로 결혼하는 것은 집단을 확대하였다. 이렇게 생긴 부족은 처음으로 정치 단체였다. 다음의 진보는 종교적 종파와 정치 클럽의 진화였다. 클럽은 두 등급, 사회ㆍ정치적 등급과 종교적이고 신비스런 등급으로 나누어졌다.


이들은 다음 이유로 비밀을 지켜야 했다.


1. 금기위반으로 통치자의 비위를 건드려서 오는 두려움.


2. 소수의 종교 의식을 거행하려고.


3. 가치 있는 정신이나 상업의 비밀을 보존하려고.


4. 특별한 마술을 즐기려고.


70:7.7 (790.10) 그 비밀은 모든 회원에게, 나머지 부족 사람에 대해서 신비의 힘을 주었고, 허영심에도 호소했으며, 가입한 자들은 귀족들이었다. 남자 아이는 전에 여자들과 함께 채소를 거두었는데, 입회식이 있은 뒤에는 어른들과 함께 사냥했다. 여자처럼 여겨지는 것은 최고의 치욕이요, 부족에서 불명예였다. 게다가, 가입하지 않은 자들은 결혼이 허락되지 않았다.


원시 인간은 일찍부터 사춘기 청년들에게 성욕의 자제를 가르쳤다. 사춘기의 소년들을 부모로부터 떼어내는 것이 관습이었는데, 클럽의 주요 활동 가운데 하나는 사춘기의 청년들을 통제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사생아가 생기는 것을 막았다.


이 남자의 클럽이 다른 부족의 여자를 사용하는 데 돈을 치렀을 때, 상업화된 매춘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의 문란에 빠지지 않았다.


사춘기에 입문하는 의식은 보통 5년 동안 연장되었다. 입문의 일부로서 부족의 표시를 몸에 새겼다. 문신은 그러한 부족원의 표징으로서 시작되었다. 그러한 고문은, 상당한 고난과 함께, 이 젊은이들을 강하게 단련시켰고, 나중에 나타나는 운동 시합과 육체적 경기가 이 목적을 더 잘 수행한다.


70:7.11 (791.4) 비밀 사회들은 사춘기 도덕성의 개량을 목표로 하였다. 사춘기 예식의 주요한 한 목적은 소년에게 다른 남자의 아내를 가까이하지 말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훈련을 몇 년 동안 거친 다음에, 결혼 직전에 젊은 남자들은 보통 여가를 가지도록 잠시 풀려났고, 그 뒤에 집에 돌아와서 결혼하고 일생 동안 금기에 복종했다.


후일에 많은 부족이 여자들의 비밀 클럽을 인가했는데, 그 목적은 사춘기의 소녀들을 아내와 어머니가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었다. 입회한 다음에 소녀는 결혼할 자격이 있었고 ‘신부 보이기’에 나가는 것이 허락되었다.


결혼하지 않은 남자의 집단과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은 여자의 집단이 따로 조직되었을 때, 당장에 비밀 아닌 클럽들이 등장했다. 이 사회들은 정말로 처음 학교였다. 어떤 진보된 부족들은 달라마시아 선생들과 접촉을 가진 뒤에, 남녀 공학을 실험했고, 남녀 모두를 위하여 기숙사가 있는 학교를 가지고 있었다.


비밀 사회들은 주로 그 입회식의 신비스런 특징으로 말미암아, 사회 계층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비밀 사회들은 가면을 쓰기도 했고, 신호와 특별한 비밀 은어를 이용했다. 그들은 밤의 경찰로서 행동했고, 그밖에도 넓은 범위의 사회 활동 분야에서 일했다.


70:7.16 (792.1) 모든 비밀 결사는 선서를 부과하고 비밀을 지키라고 강요했다. 이 사회는 부족들이 전쟁할 때 첫 간첩이었고, 평화 시절에는 첫 비밀 경찰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양심 없는 왕이 바늘방석에 앉게 만들었다. 그들을 상쇄하기 위해서, 왕들은 자체의 비밀경찰을 길렀다.


이러한 사회 단체는 처음으로 정당을 낳았다. 처음 정당 정치는 “강한 자” 대 “약한 자”였다. 옛날에는 내란이 있은 다음에야 행정부가 갈렸는데, 이것은 약한 자가 강해졌다는 것을 풍부히 증명한다.


이 클럽들은 빌려준 돈을 걷기 위하여 상인에게 고용되었고, 세금을 걷기 위해서 통치자에게 고용되었다. 세금을 걷는 것은 오랜 투쟁이었는데, 그 형태 중의 하나는 십일조였다. 최초에 왕가 유지를 위해 부과되었지만, 성전 예배 지원 헌금으로 위장했을 때 모으기가 더 쉬웠다.


이 비밀 결사 들은 첫 자선 조직으로 성장했고, 나중에는 초기의 종교 단체―교회의 선구자―로 진화했다. 이 사회들 중에 더러는 부족 간의 사회, 국제단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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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사회 계급


70:8.1 (792.5) 인간의 정신적 육체적 불평등은 사회 계급이 나타날 것을 확실하게 한다. 사회 계층이 없는 유일한 세계는 가장 원시적 세계와 가장 진보된 빛과 생명 속에 안정된 세계이다.


사회가 야만 상태에서 미개 상태로까지 등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인해 여러 등급으로 분류되는 경향이 있다:


1. 자연스런 이유―결혼 및 친척 관계. 처음 사회적 구별은 추장과 무슨 인척 관계인가에 기초를 두었다.


2. 개인적 이유―능력과 끈기와 기술, 언어의 능숙, 지식, 일반적 지능의 인정이 곧 뒤따랐다.


3. 우연―전쟁과 이민은 인간 집단을 분리하였다. 승자와 피정복자의 관계에서, 노예 제도는 자유로운 자와 매인 자로 일반적 사회의 구분을 가져왔다.


4. 경제적 이유―빈부의 차이. 재산, 노예의 소유는 한 사회 계급의 기초가 되었다.


5. 지리적 이유―도시나 시골에 따라서 계급이 생겨났다. 목자나 농부, 그리고 상인이나 산업가로 전문화되는 데 기여했다.


6. 사회적 이유― 사제와 선생, 통치자와 무사, 자본가와 상인, 보통 노동자와 노예가 있었다.


7. 직업적 이유― 계급과 조합을 세우는 경향이 있었다. 노동자는 주술사를 포함한 전문가 계급, 다음에 기술 노동자, 미숙련 노동자로 나누었다.


8. 종교적 이유―사제들은 오랫동안 따로 된 사회 집단이었다.


9. 종족의 이유― 둘 이상의 종족이 존재하면, 보통 피부색에 따른 카스트를 만들어낸다. 인도 최초의 카스트 제도는, 초기 에집트의 카스트와 마찬가지로, 피부색에 기초를 두었다.


10. 나이―소년은 아버지의 보호 밑에 남아 있고, 소녀는 결혼할 때까지 어머니가 보살폈다.


융통성 있고 변하는 사회 계급은 진화하는 문명에 필수이지만, 계급이 카스트가 될 때, 사회 수준이 굳어질 때, 개인의 발전을 뚜렷이 단축시키고 사회의 협동을 실질적으로 방해한다.


70:8.14 (793.6) 진보하는 문명에서 다음과 같은 생물학적ㆍ지적ㆍ영적 자원을 조작함으로 계급은 말소될 수 있다.


1. 종족 혈통의 혁신―열등한 인간 혈통을 골라서 없앤다.


2. 그런 생물학적 개량으로 증가된 두뇌력을 교육으로 훈련한다.


3. 필사자가 친척이요 형제라는 느낌을 종교적으로 깨우친다.


이러한 조치는 천년이 여러 번 지나야 열매를 얻을 것이다. 종교는 문명을 높이는 강력한 지렛대이지만, 건전한 정상 정신의 지레 받침이 없이 힘을 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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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인간의 권리


70:9.1 (793.11) 자연은 사람에게 아무런 권리를 주지 않는다. 단지 목숨과 그 목숨을 이을 세상을 준다. 사회가 사람에게 주는 첫째 선물은 안전이다.

차츰차츰 사회는 권리를 주장했고, 오늘날에 다음과 같다


1. 식량 공급의 보장.

2. 군사적 방어―준비를 통해 얻는 안전.

3. 개인에 대한 폭력과 사회의 무질서를 방지.

4. 성의 통제―결혼, 가족 제도.

5. 재산―소유할 권리.

6. 개인 및 집단 경쟁의 육성.

7. 젊은이를 교육하고 훈련하는 준비.

8. 무역과 상업의 촉진―산업의 발전.

9. 노동 조건과 보상의 개선.

10. 종교 관습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


70:9.13 (794.8) 권리가 기원을 알 수 없을 때 흔히 자연권이라 부른다. 그러나 인간의 권리는 자연발생이 아니며, 전부 사회적이다. 상대적이고 늘 변하고 있으며, 경기 규칙에 불과한, 인정된 여러 관계를 조정한 것이다.


어느 시대에 권리로 여길 수 있는 것은 다른 시대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수의 장애자와 퇴화된 자가 살아남은 것은 어떤 자연권을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당대의 사회, 곧 도덕 관습이 그렇게 선포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권리 중에 거의 아무것도 유럽의 중세에는 인정되지 않았다. 그때의 권리는 국가나 교회가 허락한 특권이나 은혜였다. 이 잘못에 대한 저항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믿음으로 인도했기 때문에, 똑같이 잘못되었다.


70:9.16 (794.11) 약하고 열등한 자는 언제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였다. 그들은 국가가 강하고 우수한 자에게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고 그밖에 부족한 것을 좋게 하도록 무리하게 시킨다고 항상 주장해왔다. 이런 결점은 그들의 무관심과 게으름에서 자연히 생긴 결과이다.


이 평등의 이상은 문명의 소산이다. 자연 속에 평등은 발견되지 않는다. 문화 수용 능력을 보더라도 사람이 평등히 태어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사회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한 권리를 제공할 수 없지만, 각자의 다른 권리를 공정하고 공평하게 관리할 것을 약속할 수 있다. 자연인에게 자아 유지를 추구하고, 자아 존속에 참여하고, 한편 동시에 어느 정도 자아 욕구의 충족을 즐기는 공평하고 평화로운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사회의 일이요, 임무이며, 자아에 관한 이 세 가지는 모두, 인간의 행복의 총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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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의의 진화


70:10.1 (794.13) 자연 정의는 사람이 만든 이론이며, 현실이 아니다. 순전히 이론적이며 허구이다. 자연은 원인에 대해 피할 수 없는 정의를 제공한다.


사람이 파악하는 정의는 사람이 자기의 권리를 찾는 것을 뜻하며, 점진적 진화의 문제였다. 정의의 개념은 영이 부여한 지성에서 구성될 수 있지만, 완전히 발육되어 공간 세계로 솟아나지는 않는다.


원시인은 모든 현상을 사람에게 할당했다. 누가 죽었을 경우, 야만인은 무엇이 그를 죽였는가가 아니라, 누가 죽였는가 물었다. 죄를 벌할 때 범죄자의 동기는 무시되었고, 판결은 입은 손해에 따라서 정해졌다.


가장 초기의 원시 사회에서는 여론이 직접 작용했고, 법을 담당하는 관리가 필요 없었다. 집단 전체가 각 개인의 행동을 규제했다.


사람들은 귀신이 주술사와 사제들을 통해서 정의를 베푼다고 아주 일찍부터 믿었다. 범죄를 찾기 위해 초기에 쓴 방법은 독물ㆍ불ㆍ고통으로 시련을 주는 것이었다. 이런 시련이 논쟁을 반드시 공정하게 해결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독물을 주었을 때, 피고가 게워 버리면 무죄였다.


70:10.6 (795.3) 구약은 결혼 생활의 죄에 대한 시험을 기록한다. 한 남자가 자기 아내가 정절을 지키지 않았다고 의심하면 사제에게 이를 보고했고, 사제는 그 아내에게 거룩한 물과 성전 마루에서 쓸어모은 더러운 것의 혼합물을 마시게 했다. 여자가 몸이 아프지 않으면, 그 여자는 고소당한 죄목에서 풀려났다.


진화하는 모든 부족이 범죄를 찾아내는 이 포학한 방법을 언젠가 실행한 적이 있다. 결투는 혹독한 시련으로 죄를 정하는 재판이 현대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3천 년 전에 히브리인이 정의를 시행하는 그런 원시 방법을 쓴 것에 놀라서는 안 된다. 그러나 생각 있는 사람들이 성스러운 기록 안에 그러한 미개 상태의 유물을 남겨두려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깊이 고찰해보건대, 결혼의 부정을 판결함에 있어서 불공정한 지시를 한 사람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회는 일찍부터 눈에는 눈, 목숨에는 목숨으로 복수하는 것을 인정하였다. 복수는 원시생활의 목표가 되었지만, 종교는 이 풍습을 고쳤다. 계시된 종교를 가르치는 선생들은 언제나 선포했다, “‘복수는 나의 일이라’ 주가 말씀하시니라.”


자살은 흔한 형태의 복수였다. 살아서 복수할 수 없다면, 죽어서 귀신이 되어 돌아와서 적에게 노여움을 퍼부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죽었다. 이 믿음이 널리 퍼져서, 적의 문간에서 자살한다는 위협은 적을 항복시키기에 넉넉했다. 달라마시아 사람들의 가르침은 이 관습을 크게 줄였으며, 최근에는 여가ㆍ편안ㆍ종교ㆍ철학이 합쳐서 인생을 더 즐겁고 바람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단식 투쟁은 이 옛 시절의 복수 방법의 현대판이다.


70:10.11 (796.1) 가장 초기 형태의 진보된 부족 율법 중의 하나는 피의 복수를 하나의 부족 일로 떠맡는 것이었다.


또 한 가지 진보는 금기 위반에 대하여 벌금을 물게 하는 것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포함하여 모든 것에 값이 매겨지게 되었다. 모세는 그들이 “사람 죽인 죄를 지은 살인자의 목숨 대신에 아무 배상을 받지 말라, 그를 반드시 죽여야 할지니라”하고 가르쳤다.


이처럼 처음에는 가족이, 다음에는 씨족이, 나중에는 부족이 정의를 시행하였다.


산 채로 태워 죽이는 벌은 한때 보통 관습이었다. 모세는 많은 범죄, 특히 심각한 성적(性的) 성질을 가진 범죄는 화형에 처함으로 벌을 주어야 한다고 지시했다.


반역은 처음으로 죽을 죄였다. 가축을 훔치는 것은 보편적으로 당장 사형에 처했고, 최근에도 말을 훔치는 것은 비슷하게 벌을 받았다. 그러나 벌의 무거움은 점차적으로 범죄 억제책이 아님이 발견되었다.


70:10.16 (796.6) 사회가 범죄를 벌하지 못할 때, 집단의 분개심은 사적인 징벌로 나타난다. 피신처의 조항은 이런 집단의 분노를 피하는 수단이었다. 사적 징벌은 개인의 사사로운 조정을 국가에게 넘겨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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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법과 법정


70:11.1 (796.7) 도덕 관습과 법은 구별하기가 힘들다. 도덕 관습은 형성 과정에 있는 법 및 경찰의 규제이다. 오랫동안 규명되지 않은 도덕 관습은 엄밀한 법, 분명한 규칙, 잘 규명된 사회 관습으로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다.


법은 반드시 처음에 부정적이고, 무엇을 하지 말라 한다. 초기의 사회는 부정적으로 작용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너희는 죽이지 말라”는 것이었다. 금기는 본래부터 부정적이다. 이것은 원시 사회가 무엇을 막으려고 조직되었다.


증언을 더 진실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 달라마시아 시절에 맹세가 생겨났다. 맹세는 자신에게 저주를 선언하는 것이었고, 자기가 태어난 집단에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았다.


범죄는 부족의 도덕 관습을 어기는 것이었고, 죄는 귀신이 인가한 금기를 어기는 것이었다. 그러나 범죄와 죄가 구분되지 않아서 오랫동안 혼란이 있었다.


사람은 이기심으로 살인하지 말라는 금기를 만들었고, 사회는 이를 관습으로 인가하였으며, 한편 종교는 관습을 도덕법으로 만들었다. 이 세 가지가 인생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였다.


70:11.6 (797.4) 율법은 구체화되고 공인된 여론이 법전으로 기록된 것이다. 도덕 관습은 축적된 체험이었고, 나중에 지식인들이 성문화된 법을 작성했다.


법정 판결에서 선례를 언급하는 것은 재판관이 성문화된 법을 변하는 사회 조건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나타낸다.


재산에 관한 투쟁은 다음 방법으로 처리되었다:


1. 싸움에 걸린 재산을 없애버린다.

2. 무력으로―논쟁하는 자들은 싸움으로 해결했다.

3. 중재로―제삼자가 결정했다.

4. 장로들에게 상소함으로―나중에는 법정에 상소했다.


70:11.13 (797.11) 초기의 법정은 주먹 싸움으로 판결했다. 판사는 단지 심판이나 중재인이었다. 그들은 인가된 규칙에 따라서 싸움이 진행되도록 처리했다. 격투 전에 진 자는 이긴 자에게 비용과 벌금을 지불해야 했기 때문에 재판관에게 보증금을 냈다. 후일에는 언변 쟁론으로 바뀌어졌다.


원시의 정의 관념은 공정을 찾기보다 논쟁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공중의 무질서와 개인의 폭력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개인의 불공평에 대해 별로 분개하지 않았다. 권력을 가진 자는 권력을 이기적으로 쓸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도 문명의 지위는 법원의 철저함과 공평성, 판사들의 진실성에 의해 정확하게 결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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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국가 권한의 분배


70:12.1 (797.13) 잘 조정된 행정부ㆍ입법부ㆍ사법부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유지되었을 때, 대의정치 종류의 국가 정부가 진화 민족들을 최선으로 규제한다는 것을 우주 행정가들은 배웠다.


이상적 정부는 대의정치 체계이다. 원시 장로 회의가 가졌던 권력은 차츰, 절대 군주에게 집중되었고, 장로 집단은 자문 단체로서 지속하였다. 후일에 입법 기관이 나타났고, 판결하는 최고 법정이 따로 확립되었다.


임금은 처음에 불문률의 집행자였고, 나중에는 제정된 법령을 집행했다.


최근에 어떤 유란시아 국가들은 이 도덕 관습을 통치를 위한 근거 자료로 성문화하였다.


유란시아의 필사자들은 자유를 가질 자격이 있고, 정부를 만들고 헌법을 채택해야 한다. 이렇게 하고 나서 유능한 자를 최고 집행자로 뽑아야 한다. 입법부 대표와 판사들은 경험으로 지혜를 가진 자들만 선출해야 한다.


70:12.6 (798.5) 자유를 유지하고 싶으면, 사람은 헌장으로 다음을 방지해야 한다.


1. 행정부나 입법부가 부당하게 권력을 강탈하는 것.

2. 무지하고 미신을 믿는 선동자들의 술수.

3. 과학적 진보의 지연.

4. 평범이 지배하는 막다른 골목.

5. 사악한 소수의 지배.

6. 야심 있고 머리 좋은, 독재를 꿈꾸는 자의 통제.

7. 공포가 일으키는 비참한 혼란.

8. 양심 없는 자들이 착취하는 것.

9. 국가가 세금으로 시민을 노예로 만드는 것.

10. 사회 및 경제적 공평을 이루지 못하는 것.

11. 교회와 국가의 통합.

12. 개인의 자유를 잃는 것.


70:12.19 (798.18) 이를 방지하는 것이 헌법을 따르는 법정의 목적이요, 목표이다.


유란시아에서 늘 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적응하고, 권력을 분산시키고, 지혜로운 행정가들을 뽑음으로 정부를 완전하게 만들어야 한다. 신성한 형태의 정부가 있지만, 그런 것은 계시될 수 없고, 각 행성의 남녀가 천천히 힘들여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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