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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0 편 인간이 체험하는 종교



글쓴이: 네바돈의 한 멜기세덱


100:0.1 (1094.1) 활동적인 종교생활의 체험은 평범한 사람을 이상주의적 힘의 성격자로 변화시킨다. 종교는 각 개인을 발전시켜 모든 사람이 진보하도록 촉진하며, 모든 사람의 성취를 통해 개인의 발전이 확대된다.


100:0.2 다른 신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는 것은 서로의 영적 성장을 자극한다. 사랑은 종교적 성장이 일어나는 토양, 객관적 매력을 제공하며, 최고의 주관적 만족감을 낳기도 한다. 종교는 평범한 고역의 일상생활을 고귀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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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교적 성장


100:1.1 (1094.3) 종교는 태도와 가치의 향상을 낳지만, 개인적인 평가를 절대적인 수준으로 오직 높아질 때 반드시 해악이 생긴다. 유아적 평가는 자기만족의 기쁨에 있다. 성숙함은 다양한 삶과, 우주 관계에서 최고 개념에 대한 충성심도 포함한다.


100:1.2 어떤 이들은 너무 바빠 성장하지 못하여 영적인 침체로 심각한 위험에 빠져 있다. 진보하는 문명의 단계에서, 자신의 성장을 위하여 준비가 있어야 한다. 편견과 무지는 성장을 억제한다.


100:1.3 모든 성장하는 아이에게 자신의 종교적 체험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기회를 주라. 어른의 기존 체험을 아이에게 주지 말라. 진정한 교육의 성장은 이상을 높이고, 가치의 인식의 증가, 새로운 가치의 의미, 최고의 가치에 대한 충성을 확대한다.


100:1.4 아이들은 그들은 성인 동료들의 충성심에 오랫동안 깊은 감명을 받는다. 충실한 사람은 성장하는 사람이요, 성장은 감동을 주고 영감을 일으키다. 오늘을 충실하게 살라. 내일이 저절로 된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는 빠른 방법은 올챙이로 매 순간 충실하게 사는 것이다.


100:1.5 이 모두가 성장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성장은 또한 자기 비평―양심―에 근거를 둔 자아의 발견이 뒤따른다.
이는 양심이 정말로 자신의 가치 기준과 이상에 따라 스스로를 평가하기 때문이다.


100:1.6 (1095.1) 종교적 체험은 신체적 건강, 유전적 기질, 사회적 환경에 분명히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헌신하고자 하는 혼의 성장을 막을 수 없다. 성장하고 자아를 실현하고 싶은 어떤 타고난 욕구가 모든 정상 필사자에게 있으며, 이것은 특별히 억제되지 않으면 작용한다. 영적 성장을 기르는 확실한 기법은 최상의 가치 기준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적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100:1.7 종교는 증여, 수취, 대여, 학습 또는 잃어버릴 수 없다. 그것은 최후의 가치를 더욱 추구하여 성장하는 개인적 체험이다. 따라서 우주적 견지에서 성장은 의미가 쌓이고 가치가 확대된다. 그러나 사람의 고귀함 자체는 무의식적인 성장이다.


100:1.8 생각하고 행동하는 종교적 습관은 영적 성장 체제에 기여한다. 신성한 가치에 대한 발달된 감수성, 타인의 종교적 생활의 인식, 우주적 의미에 대한 성찰적 명상, 숭고한 문제 해결, 동료들과 영적 삶 나누기, 이기심의 회피, 추정된 신의 자비 거절, 하나님 앞에 서 있듯 사는 것을 포함한다. 종교적 성장의 여러 요인은 의도적일 수 있지만, 성장 그 자체는 어김없이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100:1.9 무의식적인 자연스런 종교적 성장이 잠재의식(하의식)의 기능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초의식적 창조 활동이다. 무의식의 종교적 성장을 깨닫는 체험은 초의식 (상의식)이 존재하여 활동하고 있다는 하나의 분명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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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적 성장


100:2.1 (1095.5) 영적 발전은 첫째로 참 영적 세력과 연락을 유지하고, 둘째로 영적 열매를 계속 맺는 데 달려 있다. 영적 진보는 사람이 영적으로 부족함을 머리로 인식하고, 아울러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는 목적을 의식하는 데 달려 있다.


100:2.2 영적 성장은 먼저 필요에 대한 각성, 다음에 의미에 대한 분별, 그리고 가치의 발견이다. 진정한 영적 발전의 증거는 사랑에 의한 동기 부여, 사심 없는 역활로 인한 생동감, 신의 완전한 이상을 전심으로 예배함으로, 신학적 믿음과 대조되는 종교적 실체를 구성한다.


100:2.3 종교는 우주에 대한 영적 반응 기법이 체험 수준까지 진보할 수 있다. 그렇게 영화로운 종교는 인격의 세 수준, 지적이고ㆍ모론시아적이고ㆍ영적인 것이 지성과 진화하는 혼 속에서, 깃드는 영과 함께 활동할 수 있다.


100:2.4 영적 성향은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고, 의미 있는 것에 담긴 진리를 헤아리고, 가치 기준에 담긴 선을 발견하는 능력을 높여 준다. 영적 발전은 발전하는 능력에 따라, 사랑의 이기적 성질을 없애는 데 비례하여 커진다.


100:2.5 실제의 영적 상태는 신에 도달한 정도, 조절자와 조화된 정도를 측정한다. 영생은 무한한 가치 기준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100:2.6 (1096.3) 자아를 실현하는 인간의 목표는 물질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어야 한다. 인간은 육체의 기쁨을 즐기고 인간적 사랑의 만족감을 누릴 자격이 있으며, 인간 관계와 현세의 제도에서 이익을 얻는다. 그러나 이것들은 불멸의 인격을 기르기 위한 영원한 기초는 아니다.


100:2.7 현세의 안전은 사라지기 쉽지만, 영적 보장은 깨어질 수 없다. 인간의 곤경ㆍ이기심ㆍ잔인ㆍ미움ㆍ악의ㆍ질투의 큰 물결이 필사자의 혼을 내려칠 때, 너희는 마음 속에 한 거점,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 영의 요새가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안심해도 좋다.


100:2.8 영에게서 태어난 개인들은 인생에 다시 자극받으며,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포부가 물거품이 되고 아주 간절한 꿈이 깨어지더라도, 우주에서 새롭고 더 숭고한 성취를 위한 방향 전환인 것을 분명히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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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상의 가치에 관한 여러 개념


100:3.1 (1096.6) 종교는 정적이고, 평안을 얻는 기법이 아니다. 그것은 활기찬 봉사를 위하여 혼을 준비시키는 충동이다. 종교는 최고의 목표, 영원한 상을 얻는 데 필수인 어떤 값이라도 치른다. 종교적 충성에는 완벽하게 바치는 마음이 있으며, 이것은 뛰어나게 숭고하다.


100:3.2 신자에게 하나님이란 낱말은 사람이 최고의 실체에 접근하고 신성한 가치를 인식하는 것을 가리키는 상징이다. 사람의 호불호는 선악을 좌우하지 않는다.


100:3.3 가치 기준을 숙고할 때, 가치 그 자체와 가치를 지닌 것을 구별해야 한다.


100:3.4 실체들이 의미가 있고 정신적으로 연결될 때, 정신이 그러한 관계들을 인식하고 이해할 때, 가치는 사람이 체험하는 것이다.


100:3.5 실체는 변화, 성장이 있음을 가리킨다. 성장이 없는 변화는 가치가 없다―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우주에 적응이 잘 되어 있을수록, 어떤 체험이라도 더 많은 중요성을 가진다. 가치 기준은 언제나 실재하면서도 잠재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 있는 것이요, 그리고 앞으로 있을 것이다.


100:3.6 (1097.3) 실재하는 것과 잠재하는 것을 연결하면 성장이 된다, 가치가 체험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은 그저 전진하는 것은 아니다. 전진은 언제나 의미가 있지만, 성장이 없으면 전진은 비교적 가치가 없다.


100:3.7 성장은 반드시 의식하지 않고 일어난다. 따라서 사랑은 자란다. 사랑을 만들어 내거나 돈으로 살 수 없고, 사랑은 자라야 한다. 진화는 성장을 일으키는 우주 기법이다. 사람이 성장에 유일하게 기여하는 것은 살아 있는 믿음을 동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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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성장의 문제

100:4.1 (1097.5) 종교 생활은 헌신하는 인생이고, 헌신하는 인생은 창조하는 인생이요, 독창적이고 자연스러운 인생이다. 새로운 종교적 통찰력은 갈등에서 생겨난다. 새 의미가 있는 것들은 오로지 갈등 속에서 솟아난다. 상급 가치를 지지하지 않을 때 갈등은 지속된다.


100:4.2 종교적 혼란은 불가피하다. 정신적 갈등과 영적 동요가 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다. 노력함은 영적 시력을 명확히 하고, 우주 통찰력이 강화된다. 게으른 동물 같은 지성은 우주 해결과 씨름하는 데 필요한 노력에 저항한다.


100:4.3 행복은 육체 체계, 정신 체계, 영 체계가 통일되었을 때 생겨난다. 사람은 행복에 관해서 참으로 깨우친 것이 없다. 가장 높은 행복은 영적 진보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 영적 성장은 오래 가는 기쁨, 너희가 알 수 없는 평화를 낳는다.


100:4.4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함으로, 사심 없이 사람을 사랑함으로, 인간 생활의 이 높은 수준에 이른다. 네가 동료 인간을 사랑하면, 너는 그들의 가치를 발견했음이 틀림없다. 예수가 사람을 그토록 사랑한 것은 사람을 무척 귀중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일단 이웃을 이해하면, 너는 너그러워질 터이고, 이러한 너그러움은 자라서 우정이 되고 무르익으면 사랑이 될 것이다.


100:4.5 너희의 원시 조상 한 사람을 상상해 보아라 ―키가 작고, 보기 흉하고, 더러운 뚱보이며, 앞을 무섭게 쏘아보면서, 다리를 벌리고 서서, 곤봉을 치켜올리고, 미움과 적개심으로 씩씩거린다. 그러한 그림은 도저히 사람의 신다운 위엄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림을 확대해 보자. 활기가 생긴 이 인간 앞에 칼이를 가진 호랑이가 웅크리고 있고, 그 사람 뒤에는 한 여자와 두 아이가 있다. 오직 이 둘째 스케치에서 필사자의 동기를 이해하기 때문에 칭찬할 가치가 있게 된다. 동료를 이해할 수만 있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100:4.6 (1098.3) 이웃의 동기와 감정을 속속들이 이해하는 데서 사랑이 태어난다. 오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보다 하루하루 네가 한 사람 더 사랑하기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이 총명하고 지혜롭게 헌신할 때, 사랑은 미움보다 더 잘 번진다. 그러나 오직 진정하고 사심 없는 사랑이라야 참으로 전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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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감화와 신비주의

100:5.1 (1098.4) 세상에는 길 잃은 혼이 가득하다. 종교적 권한에 복종하는 대신에 어떻게 생활 철학을 세우는가를 배운 사람들의 수가 너무 적다.


100:5.2 종교적 성장의 발걸음은 침체로부터 갈등을 거쳐서 안정된 길로, 현세의 목표로부터 영원한 목표로, 두려움에 빠진 처지로부터 신의 아들이 되는 자유로 이끈다.


100:5.3 최고의 이상에 충성함을 고백하는 것―하나님을 의식함을 정신으로, 감정으로, 영적으로 깨닫는 것은 자연스러운 점진적 성장이거나, 아니면 위기에서 성장을 겪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다마스커스 길에서 갑작스럽고 대단한 감화를 받았지만, 많은 참 신자가 갑작스러운 감화 없이 영적 진보를 이루었다.


100:5.4 종교적 감화와 연결된 현상의 대부분은 심리적 성질이 있지만, 영적 체험이 이따금 일어나기도 한다. 상의식 수준은 생각 조절자와 바로 접촉하는 지대이다. 한 가지 큰 위험은 놀라운 꿈이나 환상과 함께, 신비스러운 체험을 신이 인간과 접촉하는 것이라 잘못 여기는 것이다.


100:5.5 감정만으로는 거짓된 감화이다. 사람은 느낌뿐 아니라 믿음도 가져야 한다. 감화 받는 체험은 지적 실체, 감정적 실체, 영적 실체의 혼합이 될 것이다.


100:5.6 (1099.4) 이 상의식 수준은 깃드는 영 개체, 생각 조절자와 바로 접촉하는 지대이다. 지난 시절에, 신성한 존재들은 신비스러운 황홀경이나 병적 환상에 빠져 있는 상태가 아닌, 하나님을 아는 어떤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냈다.


100:5.7 생각 조절자와 접촉하는 더 좋은 방법은 사심 없는 기도를 통하는 것이다. 지성이 의식하지 못하는 수준에서 용솟음쳐 오르는 기억 중에 허다한 것이 신의 계시(啓示)요, 영의 인도라고 잘못 생각되어 왔다.


100:5.8 종교적 백일몽에 잠기는 습관은 현실 도피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인격이 오랫동안 고립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황홀경 같은 상태를 종교적 체험으로 길러서는 안 된다.


100:5.9 신비스러운 상태의 특징은 상의식인 영적 접촉 지대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하의식을 향하여 의식을 끌어당긴다. 많은 신비주의자가 정신적 분리를 정신이 비정상으로 표현되는 수준까지 밀고 갔다.


100:5.10 영적 명상에 잠기는 더욱 건전한 태도는 신을 예배하고 감사드리는 기도에 있다. 신비스러운 교통의 시작에 기여하는 요소들은 그러한 정신 상태가 위험한 것을 가리킨다. 육체의 피로, 금식, 정신의 분리, 깊은 아름다움을 의식하는 체험, 선명한 성욕 충동, 두려움ㆍ걱정ㆍ분노, 그리고 야단스러운 춤과 같은 것들이 신비스러운 상태를 촉진한다. 그러한 것들은 하의식 정신에서 기원을 가진다.


100:5.11 (1100.2) 나사렛 예수는 아버지와 교통하기 위하여 결코 그런 방법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 예수는 아무런 하의식의 망상이나 상의식의 착각을 겪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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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종교적 생활의 표시


100:6.1 (1100.3) 종교는 생명의 특정한 기능이 아니라, 생활 방식이다. 참된 종교는 신자가 자신과 인류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졌다고 판단하는 어떤 실체에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것이다.

100:6.2 종교에서 최고 가치는 참으로 진정한 영적 가치를 가진 우주 실체이다.


100:6.3 성실한 신자는 우주 시민임을 의식하고, 초인간 능력의 근원과 접촉함을 의식한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우수하고 고결한 단체에 속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기쁨에 떨고 활력을 얻는다.


100:6.4 자아는 더욱 높은 자제를 부과하고 감정의 갈등을 줄이고 필사자의 인생을 참으로 살 가치가 있게 만든다. 인간을 초월하는 이상을 달성하려는 이 뜨거운 노력의 특징은 반드시 참을성ㆍ인내심ㆍ불굴ㆍ관대함이 늘어나는 것이다.


100:6.5 참된 종교는 실천하는 사랑이요, 봉사하는 인생이다. 초연하면서 유머 감각을 잃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 존재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지 않지만, 인생의 모든 것에 새로운 의미를 더해준다. 그런 종교는 새 종류의 열심ㆍ열의ㆍ용기를 불러일으킨다. 평범한 사회적 의무에 충실히 헌신함으로, 고삐를 쥐지 않으면 극도로 위험하다.


100:6.6 (1101.1) 종교 생활의 가장 놀라운 표시 중에 하나는 힘차고 숭고한 평안이니, 이것은 어떤 인간도 이해하기 힘든 평안이요, 모든 의심과 소동이 없음을 가리키는, 우주에 대한 자세이다. 그러한 수준의 영적 안정은 실망에 면역이 되어 있다.


100:6.7 최상위의 실체를 깨닫고, 궁극위의 목표를 추구하는 신자의 의식 속에 승리의 영광을 깨달을 때 보장받는 느낌을 갖는다.


100:6.8 진화된 종교가 진정한 체험이기 때문에, 영적 시력이 확대됨으로 생기는 새로운 충성은 새 수준의 사랑과 헌신, 봉사와 친교를 창조한다. 그리고 향상된 이 모든 사회적 전망은 하나님이 아버지이고 사람이 형제인 것을 더욱 크게 의식하게 한다.


100:6.9 진화된 종교와 계시된 종교의 차이점은 계시 종교의 신다운 지혜가 순전히 체험으로 얻은 인간의 지혜에 더해지는 것이다. 인간의 종교 안에서 얻는 체험은 신다운 지혜와 우주 통찰력을 받도록 능력을 개발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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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최고의 종교 생활


100:7.1 (1101.5) 보통 필사자는 나사렛 예수가 육체를 입고 머무른 동안에 얻은 완벽한 인품의 높이까지 이르지는 못해도, 누구나 예수의 인격이 완전해진 길을 따라서, 통일된 성격을 개발하는 것이 가능하다. 주의 성격이 완전하기보다 균형된 것, 성격이 아름답게, 치우치지 않게 통일된 것이다. 예수를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은, 어떤 사람(빌라도) 은 고발자들 앞에 서 있는 주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이 사람을 보라!”


100:7.2 예수의 강건한 인품은 따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참으로 성실했고, 어떤 위선도 없었다. 전혀 꾸밈이 없었고, 언제나 진심이었다. 겉치레에 몸을 굽히지 않았고, 위선을 떨지 않았다. 진리를 가르친 그대로 그는 진리를 실천하였다. 그는 바로 그 진리였다. 그는 의심하지 않고 모든 진리에 충성했다.


100:7.3 주는 무척 분별이 있었고, 사람이 가까이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가 베푼 모든 봉사는 대단히 실용적이었고, 한편 그의 모든 계획은 그러한 인가된 상식에 벗어나지 않는 특징을 가졌다. 어떤 가르침에도, 무슨 일을 행해도, 특별한 예의 바른 감각과 아울러 언제나 지극한 분별이 있었다.


100:7.4 사람의 아들은 언제나 침착하여 적들조차 진지한 존경심을 보였다. 그들은 그가 앞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예수는 신다운 열심이 가득했지만, 결코 광신을 보이지 않았다. 감정이 살아 있어도 결코 가볍지 않았다. 상상력이 있었으나 언제나 실용적이었다. 그는 솔직하게 인생의 현실에 부딪쳤으나 결코 무디거나 단조롭지 않았다. 용기가 있어도 결코 무모하지 않았고, 신중했으나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동정심이 있어도 감상에 빠지지 않았고, 독특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경건해도 거룩한 체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나 매우 침착했으니, 인품이 아주 완전히 통일되었기 때문이다.


100:7.5 예수의 독창성은 억눌리지 않았다. 의심 없는 확신을 가지고 말했고, 절대 권한을 가지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에서 가장 독창적인 것은 신을 두려워하고 희생물을 바치는 관습 대신에 사랑과 자비를 강조한 것이었다.


100:7.6 (1102.3) 예수는 넓은 견지에서 세상을 보았다. 그는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도하라고 추종자들에게 타일렀다.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온 인류, 아니 한 우주조차도 담았다.


100:7.7 예수에 관하여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였더라”하고 사람들이 참되게 말했다. 어린아이가 땅에서 부모를 의지하는 것처럼 아버지를 의지했다. 실망에 면역이 되었고, 박해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는 실패로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100:7.8 그는 사람들을 형제처럼 사랑했고, 동시에 사람들의 타고난 자질과 얻은 성질이 어떻게 다른지 헤아렸다. “그는 두루 다니며 좋은 일을 하였더라.”


100:7.9 확고히 하나님을 믿고 사람을 신뢰했기 때문에 예수는 자신 있는 태도를 지킬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믿었기 때문에, 언제나 감동을 주도록 사람들에게 마음을 썼다. 언제나 그의 신념에 충실했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헌신하려고 각오가 굳었다.


100:7.10 주는 언제나 너그러웠다. 그는 지치지 않고 말했다,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복이 있다.” 그는 말했다, “여러분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한없이 너그러웠지만 결코 낭비하거나 사치스럽지 않았다. 구원을 받으려면 믿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구하는 자는 누구든지 받을 것이다.”


100:7.11 (1102.8) 그는 솔직했으며, 언제나 친절했다. 죄인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한다고 거침없이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놀랍게 솔직하면서 내내 그는 어김없이 공정했다.


100:7.12 때때로 인간적 슬픔의 잔을 깊숙이 들이켰는데도, 예수는 변치 않고 명랑했다. 두려움 없이 그는 존재의 현실에 부딪쳤고, 그래도 하늘나라 복음을 위한 열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결코 열심이 그를 지배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일”에 아낌없이 헌신했다. 이 신다운 열심을 구경하는 우주는 높은 수준의 영적 생활에 필사자가 최고로 헌신하는 본보기로 평가했다.


100:7.13 이 갈릴리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즐거운 사람이었다. “기뻐하고 지극히 즐거워하라”하고 늘 말했다. 그러나 의무가 요구할 때, “그늘진 죽음의 골짜기”를 기꺼이 용감히 걸었다. 즐거워했지만 동시에 겸손했다.


100:7.14 그의 용기는 그의 인내심과 같았다. 때 이르게 행동하도록 압력을 받았을 때, 그는 오직 “내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로 대답하곤 했다. 그는 악을 보고서 자주 분개하였고, 죄를 참지 못했다. 죄를 분개하는 태도는 결코 죄인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지 않았다.


100:7.15 그의 용기는 대단했지만 그는 결코 어리석지 않았다. 그의 표어는 “두려워 말라”는 것이었다. 그의 용기에 신중함이 있었고 이성(理性)으로 자제되었다. 그는 참으로 용감했지만 결코 만용을 부리지 않았다.


100:7.16 (1103.4) 주는 존경심의 본보기였다. 젊을 때에도 그의 기도는 이렇게 시작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그 이름이 거룩하옵소서.”


100:7.17 예수가 위대한 것은 선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린아이들과 사귀었다. 부드러웠어도 사생활에서 잘난 체하지 않았고, 동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를 주라고 불렀다.


100:7.18 예수는 오늘날, 갈릴리에서 한 것처럼, 그는 계속 필사자의 체험을 통일하고 인간의 수고를 조정한다. 그는 생명을 하나가 되게, 인품을 고귀하게, 체험을 단순하게 만든다. 그는 인간의 지성 속에 들어가서 그 지성을 높이고 변화시키고 그 모습을 바꾸게 한다. 글자 그대로 “누구든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오래된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는 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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