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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란시아의 여섯 산긱 인종
- 홍인, 주황인, 황인, 녹인,
청인, 남인종,    여섯 인종을 두는 목적

 


제 64 편  진화하는 유색 인종



. 글쓴이: 유란시아에 거주하는 한 생명 운반자
. 기록시기 : 1934년


64:0.1 (718.1) 이 글은 거의 1백만 년 전, 안돈과 폰타의 시절부터, 빙하 시대의 끝까지 살았던 진화 종족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인류는 생긴 지 거의 1백만 년이 되었고, 이 이야기의 처음 절반은 유란시아에서 행성 영주 이전 시대에 해당한다. 인류 역사의 후반은 행성 영주 도착 후 여섯 유색 인종 출현 때부터이며, 대체로 구석기 시대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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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돈 토착민



64:1.1 (718.3) 원시인이 땅에서 진화로 나타난 것은 1백만 년이 조금 못 되었다. 원시인은 본능적으로 열등한 원숭이 족과 섞이는 위험을 피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해수면에서 9,000미터 높이의 티벳 고지로 원시인은 동쪽으로 이주할 수 없었다. 지중해가 커졌기 때문에 남쪽이나 서쪽으로도 갈 수 없었다. 북쪽에서 원시인은 (남으로) 전진하는 얼음에 부딪쳤다.


사람의 종교적 감정 중에 많은 것이 이 지리적 상황에 부딪혀 무력하다는 느낌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진취적인 이 안돈 족속은 남쪽에 나무에서 사는 열등한 친척들에게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이 안돈 족속은 숲을 피했다. 숲에서 사람은 언제나 저하되었고, 인간의 진화는 반드시 탁 트인 높은 위도 지방에서 앞으로 나아갔다. 트인 땅에서 겪는 추위와 배고픔은 행동과 발명과 지략을 자극한다. 안돈 부족은 혹독한 북쪽 기후에서 결핍을 견디면서 현재 인류의 개척자를 기르고 있었다.


이 사건들은 제3 빙하 시대에, 지리학 계산으로는 첫째 빙하기에 일어났다. 처음 두 빙하는 북 유럽에서 퍼지지 않았다.


빙하 시대의 잉글랜드는 프랑스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후 아프리카는 시실리 육지 다리로 유럽과 붙었다. 안돈 족속이 이주하던 때에, 서쪽에 잉글랜드로부터 유럽과 아시아를 거쳐, 동쪽에 자바까지 이어진 육로가 있었다. 오스트랄리아는 고립되어 특이한 동물상의 발전을 더 강화했다.


64:1.6 (719.1) 950,000년 전에 안돈과 폰타의 후손은 서쪽으로 유럽을 지나서 프랑스와 잉글랜드까지 갔다. 후일에는 동쪽으로 자바까지 파고들었고, 거기서 소위 자바인이 최근에 발견되었다. 그리고 나서 타스마니아까지 줄곧 여행했다.


서쪽으로 간 집단은 뒤떨어진 혈통에 적게 오염되었으나, 동쪽 집단은 동물 사촌과 자유롭게 섞였다. 나중에, 그들의 잡종 후손의 커지는 무리가 북쪽으로 돌아와서, 급히 확장하는 안돈 종족과 짝지었고, 그러한 유감스러운 연합은 우수한 핏줄을 어김없이 저하시켰다. 일찍 있었던 이 초기 문명은 절멸의 위협을 받았다.


유란시아에서는 늘 이와 같았다. 우수한 자가 열등한 자와 자유롭게 번식하라고 내버려두는 어리석음 때문에, 장래가 있었던 문명이 퇴화하고 소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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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폭스홀 종족



64:2.1 (719.4) 900,000년 전에 안돈과 폰타의 예술과 오나가의 문화는 지구의 표면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이때 열등한 잡종 집단이 프랑스 남부로부터 잉글랜드에 도착했다. 이 부족들은 거의 인간이 아니었다. 이들은 종교가 없었지만, 서툴게나마 부싯돌을 쓸 줄 알았고, 불을 지피기에 충분한 지능을 소유했다.


이후에 자식을 많이 낳는 민족이 따라와 유럽에 퍼졌는데, 이들의 후손은 북쪽에서부터 남쪽에서 알프스와 지중해까지 대륙 전체에 곧 퍼졌다. 이들이 하이델버그 인종이다.


이 기간에 잉글랜드의 폭스홀 종족, 인도에 있던 바도난 부족들은 안돈과 오나가 문화의 잔재를 간직했다.


폭스홀 종족은 가장 서쪽에 있었고, 안돈 문화의 많은 것을 간직하였고, 이를 에스키모의 옛 조상에게 전해 주었다.


64:2.6 (719.9) 폭스홀 종족의 유물이 잉글랜드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았어도, 이 안돈 족속은 정말로 그 지역에서 처음으로 산 사람들이었다. 당시에 육지 다리는 아직도 프랑스를 잉글랜드와 연결했고, 안돈 후손은 강과 바다를 따라 살았기에, 이 촌락들은 이제 영국 해협과 북해의 바다 밑에 있다.


폭스홀 종족 중에 영적인 자들의 다수는 원시 종교 관습을 지속했다. 이들은 오늘날의 에스키모로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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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도난 부족


64:3.1 (720.2) 서쪽에 있는 폭스홀 종족 외에도, 동쪽 인도의 북서 고지의 언덕 지대에, 인간을 제물로 한 번도 바치지 않은, 안돈의 유일한 후손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바도난 사람들은 고원을 차지했고, 이 고원은 사냥감이 풍부했다. 그들은 투박한 돌, 오두막, 석굴, 반 지하 통로에서 살았다.


북쪽의 부족들은 갈수록 더 얼음을 무서워하게 되었고, 메소포타미아 반도가 차츰차츰 대양 속에 가라앉는 것을 지켜보았다. 바다에 잠기는 두려움 때문에, 이들은 고지에서 살았다.


바도난 종족의 동쪽, 인도 북부의 시왈릭 산에서, 사람과 인간 이전 집단 사이의 과도기 종류의 화석을 발견할 수 있다.


850,000년 전에 우수한 바도난 부족들은 짐승 같은 이웃들을 몰살하는 전쟁을 시작했다. 개량된 바도난 혈통의 혼합된 후손들이 네안데르탈 종족으로서 활동 무대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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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네안데르탈 종족


64:4.1 (720.7) 네안데르탈인은 인도 북서쪽의 중심들로부터 서쪽으로 프랑스까지, 동쪽으로 중국까지, 밑으로 북 아프리카까지도 퍼졌다. 거의 50만 년 동안 세계를 지배했다.


800,000년 전에는 사냥감이 풍부했다. 네안데르탈인은 뛰어난 사냥꾼이었고, 프랑스에 있는 부족들은 가장 뛰어난 사냥꾼에게 제일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주는 풍습을 처음으로 채택하였다.


사슴은 네안데르탈인이 먹을거리와 옷으로서, 또 연장을 만드는 데 쓰였다. 네안데르탈인은 안돈 시절의 수준에 이르기까지, 부싯돌 작업을 크게 개량하여 도끼와 곡괭이로 사용되었다.


750,000년 전에, 넷째 빙상이 남쪽으로 진행하였다. 네안데르탈인은 강을 덮는 얼음에 구멍을 뚫고, 공기구멍으로 올라온 물고기를 창으로 찔러 잡았다. 이 부족들은 다가오는 얼음 앞에서 물러났는데, 이때 얼음은 가장 널리 유럽을 침공했다.


이 시절에 시베리아 빙하는 남쪽으로 행진하였고, 원시인이 남쪽으로 움직이도록 강요했으나, 인간종이 많이 분화되어, 이제는 원숭이 친척들과 섞일 위험이 크게 줄어들었다.


64:4.6 (721.4) 700,000년 전에, 넷째 빙하가 유럽에서 물러가고 있었다. 사람과 동물은 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기후는 서늘하고 축축했고, 원시인은 다시 유럽과 아시아에서 번성했다.


포유동물 생명은 큰 빙하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빙하가 물러나자 유럽에 퍼졌다. 아프리카로부터, 시실리 육지 다리 위로, 곧은 엄니 코끼리, 코가 넓은 코뿔소, 하이에나, 아프리카 사자가 도착했고, 이 새로운 동물은 칼이 호랑이와 하마를 멸종시켰다.


650,000년 전에 간빙기의 중간이 되자, 날씨가 무척 따뜻해져서 알프스는 얼음과 눈이 녹아 버렸다.


600,000년 전에 얼음은 다시 남쪽으로 움직였다. 5만 년 동안 기후의 변화는 없었다. 유럽의 사람과 동물은 거의 바뀌지 않았다. 전기에 있던 약한 건조성이 줄어들었고, 알프스의 빙하는 강 유역까지 멀리 내려왔다.


550,000년 전에 빙하는 다시 사람과 동물을 남쪽으로 밀었다. 이때 사람은 넉넉한 넓은 지대, 북동쪽으로 아시아로 뻗고, 빙상과 당시에 지중해의 크게 확대된 흑해 연장 부분 사이에 놓여 있었다.


64:4.11 (721.9) 넷째와 다섯째 빙하가 있던 시절에 네안데르탈 종족의 문화가 더욱 퍼졌다. 거의 25만 년 동안 이 원시 민족들은 이동하며, 사냥하고, 싸우며, 잠시 나아졌지만, 우수한 안돈 조상과 비교해서 퇴보하고 있었다.


영적으로 인류의 문화는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갔다. 네안데르탈인은 미신을 넘어서 아무 종교가 없었다. 짙은 안개를 죽는 듯이 무서워했고, 자연력을 두려워하는 원시 종교가 차츰 개발되었고, 한편 풍부한 사냥감과 아울러 동물숭배는 줄어들었다. 두려움의 종교는 미지의 자연력을 달래려고 인간을 바치기에 이르렀다. 유란시아에서 뒤처진 인종들은 이 풍습을 바로 20세기까지 지속시켰다.


이 초기 네안데르탈인은 도저히 태양 숭배자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은 어둠을 무서워하며 살았고, 밤이 오는 것을 죽는 듯 두려워했다. 달이 다시 비치도록 유인하려는 노력으로 가장 나은 남자와 여자를 잡아 바치기 시작했다. 그 종족이 진보함에 따라서, 희생의 대상과 목적이 점진적으로 바뀌었지만, 종교 예식의 일부로서, 인간을 희생물로 바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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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유색 인종의 기원


64:5.1 (722.2) 500,000년 전에, 인도의 북서 고지에서 살던 바도난 부족들은 1백년이 넘게 종족 싸움을 이어갔고, 끝났을 때, 겨우 약 1백 가구가 살아남았다. 이들은 안돈과 폰타의 후손 가운데 가장 영리한 자들이었다.


이 바도난 부족 사이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갑자기 영리한 집단의 아이들을 낳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산긱 가족이었다. 유란시아의 여섯 유색 인종 모두를 낳은 조상이었다.


이 산긱 아이들은 19명이었는데, 동료들보다 머리가 더 좋았을 뿐 아니라, 살갗이 태양 빛에 노출되고 나서 여러 색깔로 바뀌는 독특한 성향을 나타냈다. 19명중 다섯은 붉고, 둘은 오렌지 색이고, 넷은 누렇고, 둘은 풀빛이고, 넷은 푸르고, 둘은 남빛이었다. 아이들이 나이가 들자 이 색은 더욱 뚜렷해졌고, 이 젊은이들이 짝지었을 때, 자손은 모두 산긱 부모의 피부색을 따르는 경향이 있었다.


이 무렵에 행성 영주가 도착하였다. 나는 이제 연대순의 이야기를 중지하고, 그동안에 우리는 유란시아의 여섯 산긱 인종을 따로 고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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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유란시아의 여섯 산긱 인종


64:6.1 (722.6) 보통의 진화 행성에서는 여섯 유색 인종이 하나씩 나타난다. 유란시아에서 여섯 인종이 한 가족 안에서 태어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유란시아에서 이전에 안돈 사람들이 나타난 것도 사타니아에서 새로운 일이었다. 지역 체계의 어느 다른 세계에서도, 그런 종족이 진화하는 유색 인종보다 먼저 진화하지 않았다.


1. 홍인. 이들은 여러 면에서 안돈과 폰타 보다 우수했다. 산긱 자손 중에서 처음으로 부족의 문명과 정부를 개발하였다. 그들은 언제나 일부일처 주의를 지켰다. 그들의 혼합된 후손들도 한 사람이 여럿과 짝짓는 일이 드물었다.


후일에 홍인은 아시아에서 황인 형제들과 오랫동안 분쟁이 있었다. 홍인은 자기들끼리 싸우는 조상의 성향을 물려받았고, 이 때문에 황인 부족들은 아시아 대륙에서 홍인을 몰아낼 수 있었다.


약 8만5천 년 전에, 홍인종의 나머지가 떼를 지어 북 아메리카로 건너갔고, 그 뒤에 베링 지협이 가라앉았다. 아무 홍인도 아시아로 돌아온 적이 없다. 그러나 시베리아, 중국, 중앙 아시아, 인도, 유럽의 전역에 걸쳐서 그들은 다른 유색 인종들과 섞인 혈통을 많이 뒤에 남겼다.


64:6.6 (723.5) 홍인의 직계 조상은 행성 영주의 본부와 접촉이 있었으나, 두 아메리카에 도착한 뒤에, 이 가르침을 잃어버리기 시작했고, 지적ㆍ영적 문화가 크게 쇠퇴하였다. 오래지 않아, 이 사람들이 다시 자기들끼리 아주 맹렬히 싸움에 빠져서, 홍인의 이 잔재가 급속히 멸망하게 만들 것처럼 보였다.


6만5천 년 전에, 오나모나론톤이 홍인들 사이에서 일시적 평화를 가져왔고, “큰 영”의 숭배를 부활시켰다. 오나모나론톤은 96살까지 살았고, 칼리포니아의 큰 세쿼이아 나무들 사이에서 본부를 유지했다. 후일에 그의 자손의 다수가 블랙 푸트 인디안 사이에서 현대까지 내려왔다.


시간이 지나자 오나모나론톤의 가르침이 어렴풋한 전통이 되었고, 서로 죽이는 전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러한 전쟁이 없었더라면, 홍인은 북 아메리카 대륙에서 위대한 문명을 세웠을 것이다.


홍인이 후일에 아담의 혈통과 섞일 기회를 놓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홍인은 백인을 다스릴 수 없었고, 기꺼이 백인을 섬기려 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 두 종족이 섞이지 않으면, 둘 가운데 하나가 망한다.


2. 주황인. 주황인은 무엇이라도 세우려는 특이한 충동이 있었다. 그들은 영주의 여러 학교로부터 큰 이익을 얻었고, 교육을 받으려고 대표들을 거기로 보냈다.


64:6.11 (724.1) 주황 민족은 처음으로 해안선을 따라서 아프리카로 들어갔으나, 결코 아프리카에서 발판을 확보하지 못했고, 나중에 도착하는 녹색 인종에게 멸종이 되었다.


끝이 오기 전에, 뛰어난 지도자 포슌타의 지휘 하에 생활이 개선되었고, 약 30만 년 전에, 그 본부는 아마겟돈에 있었다.


주황인과 녹색인 사이의 마지막 큰 싸움이 에집트의 나일 강 하류에서 일어났다. 주황 민족의 극소수가 살아남았다. 이들의 잔재는 녹색인과 나중에 도착하는 남색인에게 흡수되었다. 하나의 종족으로서 주황인은 10만 년쯤 전에, 존재를 그쳤다.


3. 황인. 원시의 황인 부족들은 처음으로 사냥을 그만두고, 안정된 공동체를 세우고, 농부에 바탕을 둔 가정생활을 개발했다. 지능 면에서 황인은 홍인보다 얼마큼 못했지만, 황인은 사회적으로 모든 산긱 종족보다 우수하였다. 여러 부족이 평화롭게 살기를 배웠기 때문에, 홍인종을 아시아에서 몰아낼 수 있었다.


세상의 영적 정부로부터 멀리 떠나갔으나, 한 번 밝은 시대가 있었는데, 약 10만 년 전에 싱랑톤이 부족들의 지도권을 맡고, “하나의 진리”를 숭배할 것을 선포하였다.


64:6.16 (724.6) 황인종이 큰 무리로 살아남은 것은 부족 사이에 평화를 지켰기 때문이다. 싱랑톤의 시절부터 현대 중국의 시기까지, 황인종은 유란시아의 민족들 중에서 평화로운 축에 속했다. 이 종족은 나중에 들여온 아담 혈통의 유산, 적지만 강력한 유산을 받았다.


4. 녹색인. 녹인종은 원시인 중에 능력이 뒤떨어지는 집단이었다. 약 35만 년 전에, 판탓의 지도 하에서 문화의 부흥을 겪었다.


녹인종은 세 가지로 갈라졌다. 북쪽 부족은 황인종과 청인종에게 정복되었다. 동쪽 집단은 인도 민족과 혼합되었다, 남쪽 부족은 아프리카로 들어가서 열등한 주황 민족을 멸망시켰다.

녹인종과 주황 민족에는 거인 혈통이 있었고, 이들은 에집트에 국한되었다. 그들의 많은 지도자가 키가 240에서 270센티미터나 되었다.


승리한 녹색인의 나머지는 남인종에게 흡수되었다.


64:6.21 (725.2) 5.청인. 청인은 위대한 민족이었다. 청인은 일찍부터 창을 발명했고 현대 문명의 기술의 초보를 알아냈다. 청인은 황인이 가진 혼 및 감정과 함께, 홍인의 두뇌력을 소유했다. 아담의 후손은 다른 유색 인종보다 청인을 더 좋아했다.


초기의 청인은 칼리가스티아의 참모진에 속한 선생들에게 설복당했고, 나중에 왜곡한 가르침 때문에 큰 혼란에 빠졌다. 다른 원시 종족들처럼 그들은 칼리가스티아 배반으로 빚어진 소동으로부터 결코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고, 자기들끼리 싸우는 성질을 결코 완전히 극복하지도 못했다.


칼리가스티아가 몰락한 뒤 약 5백년이 되어, 올란도프가 청인종 사이에서 큰 선생이 되었고 “최고 우두머리”라는 신을 섬기도록 청인종을 이끌었다. 후일에 이 종족이 아담 혈통과 혼합함으로 아주 큰 진보를 이루었다.


유럽의 구석기 시대에 관한 연구와 탐구는 대체로 이 고대의 청인의 연장ㆍ뼈ㆍ공예품을 발굴하는 것과 상관된다. 유란시아의 백인종은 이 청인의 후손이며, 처음에 황인과 홍인이 조금 섞여 수정되고, 나중에 보라종의 큰 부분을 동화함으로 크게 개선되었다.


6. 남인종. 모든 산긱 종족 가운데 흑인은 진취성이 가장 떨어졌다. 그들은 고지의 고향으로부터 아프리카로 여행해서 그 대륙을 점령했고, 대대로 노예로서 강제로 옮겨졌을 때를 제외하고, 그 뒤로 늘 거기에 남아 있었다.


64:6.26 (725.7) 남인종은 아프리카에서 고립되었기 때문에 아담의 피를 거의 얻지 못했다. 오르보논의 시절에 영적 각성이 있었고 “신 중의 신”을 잠시 믿었으나 거의 잊어버렸다.


뒤처져 있지만 이 남색인 종족들은 하늘의 권력 앞에서 어느 다른 지상 종족과 똑같은 지위를 가지고 있다.


여러 종족 사이에 격심한 투쟁이 있었으나, 행성 영주의 본부 가까이에서 좀더 깨우치고 최근에 가르침을 받은 여러 집단은 비교적 화평한 가운데 함께 살았다. 루시퍼 반란 시절까지 세계 종족들은 큰 문화적 업적을 이룩하지 못했다.


이 여러 종족들은 때때로 문화적ㆍ영적 부흥을 체험하였다. 만산트는 행성 영주 이후 시대에 큰 선생이었다. 특히 칼리가스티아 반란이 터지고 나서 아담이 도착하기까지 길고도 어두운 시대에 문명의 붕괴를 막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64:6.30 (726.2) 공간 세계에서 셋이나 여섯 유색 인종을 진화시키는 계획에는 좋은 이유가 많이 있으나 다음을 지적하고 싶다.


1. 다양성은 우수한 혈통이 살아남을 기회를 마련하는 데 필수이다.


2. 다른 민족들이 우수한 유전 인자를 보유할 때, 이들의 교배는 더 나은 민족을 낳는다. 우수한 아담 혈통과 철저하게 섞였다면 유란시아 민족들은 큰 이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한 실험을 현재의 종족 조건 밑에서 실행하려는 시도는 상당히 파괴적일 것이다.


3. 종족의 다양화는 건전한 경쟁을 자극한다.


4. 종족 지위의 차이, 종족 집단의 차이는 인간의 관용과 이타주의가 발달하는데 필수이다.


5. 진화 민족들이 높은 영적 수준에 이를 때까지, 인종의 동질성은 바람직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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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유색 인종의 분산


64:7.1 (726.8) 산긱 종족들이 팽창하기 시작했을 때, 다섯째 빙하(지질학 계산으로는 셋째 빙하)가 유럽과 아시아 위로 남향하고 있었다. 몇 천 년 동안, 동 아시아로 이주하는 길이 박혀 버렸다. 그리고 높아진 아라비아로 아프리카에 이르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다.


거의 10만 년 동안, 이 산긱 민족들은 산기슭 언덕 근처에 퍼져 얼마큼 서로 섞였다.


행성 영주 시절과 아담 시절 사이에, 인도는 가장 국제적 인구의 고향이 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혼합은 녹색인ㆍ주황인ㆍ남색인 종족을 아주 많이 품게 되었다. 이 2차 산긱 민족들은 남쪽 땅에서, 살기가 더 쉽고 편안함을 발견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나중에 아프리카로 옮겨 갔다. 1차 산긱 민족들, 곧 우수한 민족들은 열대 지방을 피했다. 홍인은 북동쪽으로 아시아로 갔고, 황인이 그 뒤를 바짝 따라갔으며, 한편 청인은 북서쪽으로 유럽으로 이주했다.


홍인은 일찍 북동쪽으로 옮겨 가기 시작했고, 아시아의 동북부를 모두 차지했다. 그들 뒤에 황인 부족들이 바짝 따라갔고, 이들은 홍인을 아시아로부터 북 아메리카로 몰아냈다.


아시아에서 비교적 순수한 핏줄의 홍인종 잔재가 사라질 때 11 부족이 있었고 7천명이 조금 넘었다. 이 홍인종을 따라왔던 세 집단이 있었는데 5천 년 안에 이 융합된 민족은 세 집단으로 나뉘었고, 멕시코, 중앙 아메리카, 남 아메리카에서 각자 문명을 세웠다. 남 아메리카의 가지는 아담의 피를 약간 받기는 했다.


64:7.6 (727.3) 초기의 홍인과 황인은 아시아에서 섞였고, 이들의 혼합 자손은 동쪽으로, 그리고 남쪽 바닷가를 따라갔는데, 이들은 오늘날의 갈색인이다.


황인종은 동 아시아의 중부 지역을 차지했고, 여섯 유색 인종 가운데 가장 큰 무리로 살아남았다. 홍인ㆍ녹색인ㆍ주황인 이 세 종족은 그들의 적인 다른 종족들에게 마침내 거의 전멸되기 전에, 실질적으로 자체를 파괴했다.


다섯째 빙하가 물러가자, 청인은 안돈 부족들이 갔던 옛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옮겨 갔다. 그들은 연달아 파도를 이루어 유럽에 쳐들어갔고, 그 대륙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유럽에서 청인은 안돈의 후손인 네안데르탈 족속과 마주쳤다. 예전에 있던 이 유럽의 네안데르탈인은 빙하로 말미암아 남쪽과 동쪽으로 밀려갔고, 청인을 흡수할 위치에 있었다.


산긱 부족들은 안돈 족속의 퇴보된 후손보다 대부분의 면에서 훨씬 우수했다. 이 산긱 피의 주입, 특히 청인의 피는 네안데르탈 종족을 두드러지게 개선하였고, 이것은 동쪽으로부터 유럽을 휩쓴, 갈수록 더 영리한 부족들이 잇달아 파도처럼 밀려온 데서 나타났다.


64:7.11 (727.8) 뒤따르는 간빙기에, 이 새 네안데르탈 종족은 잉글랜드로부터 인도까지 뻗었다. 고대 페르시아 반도에 있던 청인의 잔재는 주로 황인과 섞였고, 아담의 피를 얼마큼 받은 뒤에, 현대의 아랍 사람으로서 지속했다.


현대 민족들의 산긱 조상을 확인하려면, 아담의 피로 인하여 혈통이 개선된 것을 계산에 넣어야 한다.


우수한 종족들은 온대 기후를 찾았고, 주황ㆍ녹색ㆍ남색 종족들은 육지 다리 위로, 연달아 아프리카로 몰려갔다. 그 다리는 서쪽으로 물러가는 지중해를 인도양으로부터 떼어냈다.


종족 기원의 중심으로부터 마지막으로 떠난 산긱 종족은 남색인이었다. 팔레스타인을 통해서 흑인의 집단 이동이 일어났고, 이들은 에집트에서 녹색인을 멸종시켰다. 이 남인종은 주황인의 잔재와 녹색인 혈통의 상당수를 흡수했고, 어떤 남색인 부족들은 이 종족 혼합으로 말미암아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주황인, 다음에 녹색인, 그 뒤에 흑인이, 그리고 더 후에는 남색인, 청인, 녹색인의 잡종 민족이 에집트를 정복한 것으로 보인다. 아담이 도착하기 오래 전에, 유럽의 청인과 아라비아의 혼합 종족은 남인종을 에집트로부터, 아프리카 대륙에서 멀리 남쪽으로 몰아냈다.


64:7.16 (728.5) 산긱 민족의 이동이 막을 내리자, 녹색인과 주황인 종족은 사라졌고, 홍인은 북 아메리카, 황인은 동 아시아, 청인은 유럽을 차지했으며, 남인종은 아프리카로 몰려갔다. 인도에는 혼합된 2차 산긱 종족이 있었고, 갈색인은 아시아 해안의 섬들을 지키고 있다. 더 순수한 안돈 족속은 유럽의 가장 북쪽 지역에서, 그리고 아이스랜드와 그린랜드와 북 아메리카의 동북부에서 산다.


빙하가 멀리 진행했을 때, 안돈 부족들의 서쪽 가지는 잉글란드 섬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그들은 배를 만들고, 얼음이 없는 새 땅을 찾아 나섰지만 대다수는 망망한 바다에서 죽었다.


8만 년 조금 더 전에, 홍인이 북 아메리카로 건너간 뒤에, 에스키모 후손은 그린랜드를 떠나서 좁은 해협을 건너서 알라스카에 도착했다. 청인의 혼합 혈통 가운데 더러가 서쪽으로 여행하여 후일의 에스키모인들과 섞였다. 이 연합은 에스키모 부족들에게 조금 유익했다.


약 5천 년 전에, 헛슨 만 해안가에서, 인디안 부족과 에스키모 족이 만나서 서로 결혼하였다. 이 에스키모인들은 수가 더 많은 홍인에게 흡수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약 1천 년 전에 백인이 처음으로 대서양 해안에 어쩌다가 상륙할 때까지, 북 아메리카 홍인이 어느 다른 인간 혈통과 가진 유일한 접촉이다.


이 초기 시절의 투쟁은 용기와 용맹, 아니 영웅심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너희의 초기 조상이 가졌던 견실하고 튼튼한 특성 가운데 많은 것이 후일 종족들한테서 사라진 것을 우리(생명 운반자)는 아쉽게 생각한다. 이것은 때때로 위대하고 숭고한 정신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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