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란시아서 재단 번역본 한국어 사이트            

세포리스
(Sepphoris)
<갈릴리 호수>

 

열 살 되던 해 (서기4년), 예수는 갈릴리 바다에서 삼촌과 함께, 두 달 동안 고기잡이 경험을 가졌다. 그는 어른이 되기 전에, 솜씨 좋은 어부가 되었다.

갈릴리는 예루살렘과 유대 지방보다 생활비가 1/4 쯤 들었다.

갈릴리 호수에 있는 고기잡이 산업을 살펴보려고 아버지와 처음 여행 갔을 때, 예수는 어부가 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그는 목수가 되었고, 나중에는 종교 선생이 되었다.


<오늘날의 세포리스>

 

124:1.12 (1368.1) 일과 카라반의 여행이 뜸할 때, 예수는 아버지와 함께 근처의 가나ㆍ엔도르ㆍ나인으로 구경 삼아 또는 일 때문에 여러 번 여행했다. 소년일 때도 세포리스를 자주 찾아보았는데 이곳은 나사렛으로부터 북서쪽으로 겨우 4.8킬로미터 조금 넘는 거리에 있었고, 기원전 4년부터 서기 약 25년까지 갈릴리의 서울이요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 중의 하나였다.

 

 

<유라시아서 기록된 세포리스 >

세포리스와 티베리아스는 갈릴리 호수 주변에 위치하며 헤롯 안티파스 총독과 관계가 깊다.

세포리스는 헤롯 안티파스의 고향이며, 무역중심 도시이며, 도덕적으로 타락한 곳이기도 했다. (125:1.2).

티베리아스는 갈릴리의 서울인 세포리스를 대신하는 갈릴리의 새서울 중심도시이다. (129:1.2)

가버나움은 티베리아스에서 가까웠다. 티베리아스는 헤롯 안티파스가 새로 건축한 도시로서,

안티파스는 갈릴리의 세포리스에서 거주하다 티베리아스로 이주하였다. (135:12.1)

아버지 요셉이 세포리스 헤롯 안티파스 총독의 집에서 일하다 기중기가 덮쳐서 돌아가셨다 (126:2.1).

안티파스는 아버지 요셉의 임금조차 지불하지 않았다.

예수가 22살 되던 때 나사렛에서의 목수일을 야고보에게 넘기고 세포리스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일 마치고 밤에 걸어서 나사렛까지 간 기록이 나온다.


세포리스 하면 세포리스의 레베카가 있다. 예수를 무척 사랑하여 결혼하기 원했던 여인이며,
무역상을 하는 부자인 아버지의 도움을 얻어 청혼을 넣었다.

결혼할 수 없다는 예수의 고백을 들은 후 마음이 너무 아팠지만,

이후 다른 모든 청혼을 거절하고, 예수를 존경하며, 예수의 사역에 동참하였다 (127.5).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고 죽으신후 장례가 성급히 처리되는 시간 동안

남자들은 모두 성급히 돌아갔지만, 몇 명의 여인들은 이 모든 과정을 숨어서 지켜보았는데,

어디에 매장되는가를 확인하기까지 함께 했던 여인들 중에 세포리스의 레베가가 있었다.

“...예수께서 죽으신 그 금요일의 무덤에 머물렀던 여인들은 막달라 마리아,

클로바의 아내 마리아, 예수의 또다른 이모 마르다, 세포리스의 레베카 였다. (188:1.7)”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