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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요한
(Apostle Jo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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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8.10 (1342.5) 4. 요한의 복음. 요한에 따른 복음은 다른 기록에 담겨 있지 않은, 유대 땅에서, 그리고 예루살렘 근처에서 예수가 하신 일을 많이 적는다. 이것이 이른바 세베대의 아들 요한에 따른 복음이며, 비록 요한이 이 복음서를 쓰지 않았어도 그 생각을 불어넣었다. 처음 기록된 뒤에, 바로 요한이 쓴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려고 여러 번 편집을 거쳤다. 이 기록이 만들어졌을 때, 요한은 다른 복음서들을 가지고 있었고, 허다한 것이 빠져 있음을 알았다. 따라서, 서기 101년에 그는 케자리아에서 온 그리스계 유대인 동료 나단에게 글을 쓰기 시작하라고 격려했다. 요한은 기억을 더듬고, 이미 존재하는 세 가지 기록을 참조함으로 자신의 자료를 주었다. 그는 자신이 적은 저서가 하나도 없었다. “요한 1서”라고 알려진 편지는 그의 지도 하에서 나단이 쓴 작품을 소개하는 편지로서, 요한 자신이 썼다.

 

 
139:4.1 (1553.6) 사도가 되었을 때 요한은 스물 네 살이었고, 열두 사도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렸다. 그는 미혼이었고 부모와 함께 벳세다에서 살았다. 어부였고, 안드레와 베드로와 동업하여, 형 야고보와 함께 일했다. 사도가 되기 전과 후에 요한은 주의 가족을 상대하는 일을 맡아서 예수의 개인 대리자로서 활동했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살아 있는 한, 이 책임을 계속해서 맡았다.

사도 요한이 AD26년에 24살이었다면, 그는 AD 2년에 태어나야 한다. 몇몇 학자들은 요한이 도미티안 황제 통치 시기에 밧모섬으로 유배되었다고 말한다. (AD 81~96)

우리가 알고 있듯이, 요한의 기록들은 대체로 적어도 다른 두 사람들이 대신 기록했을 것이라고 그들은 또한말하고 있다. 요한이 살아있을 동안 계시록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추측은 5%도 되지 않는다.

 
176:2.8 (1915.5) 주가 사도들에게 하신 모든 강연 가운데 아무것도, 예루살렘의 멸망과 그 자신이 다시 온다는 이 두 가지 주제에 관하여 올리브산에서 이 화요일 저녁에 하신 이 강연만큼 그들의 머리 속에서 그렇게 뒤죽박죽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이 특별한 기회에 주가 하신 말씀을 기억한 것에 근거를 두고 후일에 쓴 기록들 사이에 일치되는 것이 거의 없었다. 그 결과로, 그 화요일 저녁에 말씀한 많은 것에 관하여 기록을 비워두었을 때, 많은 전통이 생겨났다. 그리고 2세기 아주 일찍, 칼리굴라 황제의 궁정에 부속되었던, 어떤 셀타라 하는 사람이 쓴, 메시아에 관한 어느 유대인 묵시록이 마태 복음 속에 통째로 복사되었고, 나중에 (일부가) 마가와 누가의 기록에 첨가되었다. 셀타의 이 기록에서, 열 처녀의 비유가 나타났다. 복음 기록의 어느 부분도 일찍이 이날 저녁의 가르침처럼 혼동되어 잘못 설명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결코 이렇게 혼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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