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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귀환 여정
(the trip to Bethlehem)

* 이미지 클릭하면 원본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 이미지 자료출처 - http://lightandlife.org/
 

 

122:5.9 (1349.5) 요셉이 스물 한 살이 되었을 때, 나사렛 근방에 마리아의 집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서 결혼했다. 이 결혼은 거의 2년에 걸쳐 지속된 정상적 구애 끝에 이루어졌다. 그 뒤에 얼마 안 되어, 그들은 나사렛에 있는 새 집으로 옮겼는데, 요셉은 두 형제의 도움을 받아서 이 집을 지었다. 이 집은 근처의 높은 언덕 아래 가까이에 자리잡았고, 그 언덕에서는 마음에 썩 들게 둘레의 시골이 내려다보였다. 특별히 마련된 이 집에서, 아기를 기다리는 이 젊은 부모는 약속된 아이를 환영하려고 생각했고, 우주의 이 중대한 사건이, 그들이 집을 떠나서 유대 지방의 베들레헴에 있는 동안에 벌어질 것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다.

 

1.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출발 (BC 7년 8월 18일)
2.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 성전 방문 (BC 7년 8월 20일)
3.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도착 (BC 7년 8월 20일)
4. 마리아가 예수를 정오에 출산 (BC 7년 8월 21일)

122:7.1 (1350.3) 기원전 8년 3월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달), 케자 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제국의 모든 주민의 수를 세어야 한다, 징세 개선에 사용될 수 있는 인구(人口) 조사를 해야 한다고 칙령을 내렸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사람들의 수를 세려는” 시도는 무엇이나 반대하는 큰 편견을 가졌고, 이것은 유대 임금 헤롯의 심각한 집안 문제와 관련하여, 유대 왕국에서 1년 동안 인구 조사의 실시를 연기하게 만들었다. 로마 제국 전역에 걸쳐서, 이 인구 조사는 기원전 8년에 기록되었고, 예외로 헤롯의 팔레스타인 왕국에서는 1년 뒤 기원전 7년에 조사가 실시되었다.

122:7.4 (1350.6) 요셉과 마리아는 가난했다. 짐 싣는 짐승이 하나만 있었으므로 아이 때문에 배가 부른 마리아가 식량을 실은 동물에 올라탔고, 요셉은 그 짐승을 이끌면서 걸었다. 요셉의 아버지가 최근에 몸을 쓰지 못하게 되어서 부모를 부양하는 데도 돈을 내야 했기 때문에, 집을 짓고 가구를 장만하는 일이 요셉에게 몹시 힘에 겨웠다. 그리고 나서 이 유대인 부부는 기원전 7년 8월 18일에 아침 일찍, 초라한 집을 뒤로 하고 베들레헴으로 여행 길을 떠났다.
 

122:7.5 (1351.1) 여행의 첫날 그들은 길보아산 기슭의 언덕 둘레에 이르렀고, 거기서 그들은 요단강 가에 그날 밤 텐트를 치고서 어떤 종류의 아들이 태어날 것인가,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보았다. 요셉은 아들이 영적 선생이 될 것이라는 개념에 집착했고, 마리아는 유대인의 메시아, 히브리 국가의 구원자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고수하였다.

 

122:7.6 (1351.2) 8월 19일 밝은 이른 아침에, 요셉과 마리아는 다시 길을 재촉했다. 사르타바산 밑에서 요단강 유역을 내려다보면서 점심을 먹었고, 걸음을 계속하여 그날 밤 예리고에 다다랐으며, 거기서 그 도시 교외의 도로에 있는 어느 여인숙에서 멈추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서, 로마 통치의 억압, 헤롯, 인구 조사를 위한 등록, 유대인의 배움과 문화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알렉산드리아의 비교적 영향에 관하여 실컷 토론한 뒤에, 나사렛 나그네들은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다. 8월 20일 아침 일찍 다시 길을 떠났고 한낮이 되기 전에 예루살렘에 다다랐다. 성전을 찾아보고, 목적지를 향해 계속 걸어서, 오후 중반에 베들레헴에 도착했다.

1.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으로 출발 (BC 7년 8월 18일)

2. 요셉과 마리아가 예루살렘 성전 방문 (BC 7년 8월 20일)

3.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도착 (BC 7년 8월 20일)

4. 마리아가 예수를 정오에 출산 (BC 7년 8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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