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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다툼
(disputes)


 

P.783:6, 70:1.3 안돈은 그의 아이들에게 막대기를 가지고 각자가 나무를 때림으로 말다툼 해결하는 것을 가르쳤다. 막대기를 먼저 분지른 자가 이긴 사람이었다. 나중의 안돈 사람들은 대중의 구경거리를 열어서 싸움을 해결하곤 했는데, 거기서 싸우는 자들이 서로 놀리고 비웃었고, 한편 청중은 박수로 이긴 자를 결정했다.

 


다비드의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

 

로마 전설에 나오는 두 집안의 세 쌍둥이 형제들.
이들의 이야기는 그당시의 법적 또는 의식적인 관습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하다. 호라티우스 형제는 로마인이었고 쿠리아티우스 형제는 알바인이었다(그 반대라는 설도 있음). 툴루스 호스틸리우스(BC 672~642 재위) 치하 로마와 알바롱가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이 쌍둥이 형제의 싸움 결과에 따라 분쟁을 해결하기로 합의했다.

싸움이 벌어져 호라티우스 형제 중 2명이 곧 죽었다. 그러나 남은 1명이 도망가는 척하면서 달려들어 이미 부상당한 쿠리아티우스 형제들을 차례로 죽여버렸다. 이 1명이 승리에 들떠 로마로 들어왔을 때 여동생은 오빠의 전리품 중 자신이 약혼자였던 쿠리아티우스 형제 중 1명에게 만들어준 외투가 있음을 발견했다. 슬픔을 감추지 못했던 그녀는 "적을 위해 슬퍼하는 로마 여인은 이렇게 죽으리라"라고 외치는 오빠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이 살인으로 호라티우스는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시민들의 탄원으로 사형을 면했다.

이 이야기는 모든 로마 죄수에게 대중들 앞에서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법적 관습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또 1가지 가능한 설명은 호라티우스가 자신의 죄를 정화하기 위해 멍에 아래를 지나가야만 했던 의식인 티길룸 소로리움(여동생의 빛) 의식을 설명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17세기에 피에르 코르네유가 쓴 프랑스 비극 〈호라티우스 Horace〉와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그림의 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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