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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유란시아서 3부 유란시아의 역사

아담손과 안드종족
(Adamson & Andite)
* 이미지 자료출처 - http://lightandlife.org/
아담의 첫째 아들 아담손;
메소포타미아 북쪽,
보라인종의 2차 문화의 중심

 

74:6.2 아담손은 유란시아에서 보라 인종의 맏아들이며,...

76:3.3 아담 사람들의 행정 지도자들은 첫 번째 동산의 아들들로부터 세습적으로 유래되었다. 아담의 첫아들 아담손은 둘째 에덴의 북쪽에서 보라 인종의 2차 중심을 세웠다. 아담의 둘째 아들 이브손은 훌륭한 지도자이자 행정가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의 큰 조력자였다. 이브손은 아담만큼 오래 살지 못했고, 그의 큰아들 얀사드는 아담 부족들의 우두머리로서 아담의 후계자가 되었다.

 

2차 중도자들의 조상(조부)인
아담손과 라타
*보라종족과 놋종족의 초인간 부류

 

77:5.6 아담손과 라타는 아이가 67명인 가족을 거느렸다. 그들은 위대한 핏줄을 가진 세계 지도자들을 낳았지만, 그보다 무엇인가 더 하였다. 이 두 존재가 정말로 초인간이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네 번째마다 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이들은 독특한 계급이었다. 그들 중 네 번째 아이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았다. 세계 역사에서 그런 일이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라타는 크게 걱정되었다―미신을 믿기까지 했다―그러나 아담손은 1차 중도자들의 존재를 잘 알았고, 무언가 비슷한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두 번째로 이상한 자녀가 태어나게 되자, 그는 그들을 따로 짝지어 주기로 결정하였는데, 하나는 남자였고 다른 하나는 여자였기 때문이었으며, 이것이 2차 계급 중도자들의 기원이다. 이러한 현상이 멈출 때까지, 100년 동안에 거의 2,000명이 존재하게 되었다.

 

카스피 바다 남단의 동쪽 지역에
위치한 아담손 문명.


아담 문화권(안드 종족)의
활발한 문명과 생명질 분산.

코펫 산맥 근처 & 카스피해를
거점으로 모든 종족에게 분산.

 

77:5.9 아담손 사람들은 아담손과 라타의 시절부터 거의 7천 년 동안, 높은 문화를 유지했다. 나중에 그들은 이웃의 놋 사람과 안돈 사람들과 섞이게 되었고, 또한 “고대의 영웅들” 사이에 끼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있었던 진보의 어느 정도는 지속하여 후일에 유럽 문명으로 꽃핀 문화적 가능성의 잠재 부분이 되었다.

77:5.10 이 문명의 중심은 코펫 닥 가까이, 카스피 바다의 남단의 동쪽 지역에 위치했다. 투르키스탄의 구릉 지대에서 조금 올라가서, 한때 보라 인종의 아담손 족속의 본부였던 것의 자취가 있다. 코펫 산맥의 낮은 구릉 지대에 놓인, 좁고 비옥한 옛 지대에 자리잡은 이 고지의 터에서, 아담손 후손 4개의 다른 집단에 의해 각각 4개의 다양한 문화가 형성되었다. 그들 가운데 둘째 집단이 서쪽을 향하여 그리스와 지중해의 섬들로 옮겨갔다. 아담손의 후예의 나머지는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오는 마지막 안드 인파의 섞인 핏줄과 함께, 북쪽과 서쪽으로 이주해서 유럽으로 들어갔고, 그들도 또한 인도를 침입한 안드ㆍ아리아 족속 사이에 끼었다.

78:1.3.1. 보라 인종―아담 자손들과 아담손 자손들. 아담 문화권의 주요한 중심은 둘째 동산에 있었고, 여기는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의 삼각 지역에 놓여 있었다. 이 지역은 정말로 서양과 인도 문명의 요람이었다. 보라 인종의 2차 중심, 곧 북쪽 중심은 아담손 사람들의 본부였고, 이것은 코펫 산맥 가까이 카스피 바다의 남쪽 해안의 동쪽에 놓여 있었다. 이 두 중심으로부터 문화와 생명질이 주변 지역들로 퍼져 나갔고, 이것은 오래지 않아 모든 종족에게 즉각적으로 활기를 띠게 하였다.

 

초기(아담의 후예) 이동 &
후기 안드(아담손과 라타의 후예)
종족의 이동 시기

 

78:3.9 이 종족의 분산은, 광범위한 기후변화들과 결합하여, 유란시아 문명의 안드 시대를 개시하는 세계무대를 준비하였다. 이 초기의 이동은 B.C. 25,000년에서 15,000년까지, 1만 년의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후일의 이동, 곧 안드 사람들의 이동은 B.C. 15,000년부터 6000년까지 연장되었다.

 

안드 종족이란;
순수 보라 인종
+ 놋종족 및 진화 민족의 1차 혼합

 

78:4.1 안드 종족들은 순수한 핏줄의 보라 인종과 놋 사람 및 진화 민족들이 1차적으로 섞인 것이다. 무릇 안드 종족은 현대 민족들보다 아담의 피를 훨씬 높은 비율로 가졌다고 생각해야 한다. 주로, 안드 종족이라는 용어는 종족의 유산이 8분의 1에서 6분의 1까지 보라 종족들을 부르는 데 쓰인다. 현대의 유란시아 사람들은, 북쪽의 백인조차 이 비율보다 훨씬 적게 아담의 피를 지닌다.

78:4.4 이 초기 안드 종족들은 아리아인이 아니었고, 아리아인 이전의 사람들이었다. 백인이 아니었다; 백인이 되기 이전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서양 민족도 동양 민족도 아니었다. 그러나 여러 나라 말이 섞인, 이른바 백인종들의 혼혈에게 코카서스 인종이라 부르는 일반화된 동질성을 주는 것은 안드 종족의 유산이다.

 

안드 종족의 활발한 이동

 

78:4.6 이 안드 종족들은 모험을 좋아했고 돌아다니는 성향을 가졌다. 산긱이나 안돈 사람의 혈통을 더하면 그들은 안정되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렇다 해도 후일에 그 자손들은 지구를 배로 한 바퀴 돌아서 멀리 있는 마지막 대륙을 발견할 때까지, 결코 멈추지 않았다.

78:5.2 이 안드 종족들은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 전역에 새로운 발전을 불러일으켰다. .. 혼합된 아담의 후예들이 최종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할 무렵까지는, 안드 종족을 메소포타미아 본토에 있는 종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도저히 거의 타당하지 않다. 이때가 되어서는 둘째 동산에 있는 종족들조차 아주 많이 섞여서 그들은 이제 더이상 아담 종족으로 간주될 수 없었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안도종족의 서양권 문명.

 

 

 

육로를 통한
안드종족의 동양권 문명.

 

78:5.5 안드 종족들은 유럽뿐 아니라, 중국의 북부와 인도까지 이주했고, 한편 많은 무리가 선교사, 선생, 상인으로서 땅끝까지 파고들었다. 그들은 사하라의 산긱 종족들의 북쪽 집단들에게 상당히 기여하였다. 그러나 오직 몇몇 선생과 상인들이 아프리카에서 나일강 상류보다 더 남쪽으로 파고들었다. 나중에, 혼합된 안드 종족과 이집트인들이 적도 훨씬 밑으로 아프리카의 동부와 서부 해안 밑으로 따라갔지만, 마다가스카르에 이르지는 않았다.

78:5.8 안드 종족들이 이동하면서 행한 정복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분산될 때까지, B.C. 8000년에서 6000년까지 이어졌다. 메소포타미아로부터 쏟아져 나옴에 따라서 그들은 고향의 생물학적 저장을 계속 써 버렸고, 한편 둘러싼 민족들을 두드러지게 강화하였다. 여행한 모든 나라에 그들은 유머·예술·모험·음악·제조업을 기여했다. 그들은 동물을 솜씨 있게 길들이는 자요. 솜씨 있는 농부였다. 얼마 동안, 적어도 그들의 존재는 보통, 더 오래된 종족들의 종교 관념과 도덕적 풍습을 개량하였다. 그래서 메소포타미아의 문화는 조용히 유럽, 인도, 중국, 북아프리카, 태평양 군도(群島)에 퍼졌다.

 

물 속으로 사라진

1. 달라마시아(페르시아만),
2. 첫 에덴(지중해 동쪽 끝),
3. 두번째 에덴 (유프라테스강).

 

78:7.2 첫 번째 에덴동산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은 후에, 수천 년 동안 지중해의 동부 해안가 근처에 있는 산들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북서쪽과 북동쪽의 산들은 계속해서 솟아올랐다. 고원지대의 이러한 상승 현상은 B.C. 약 5000년경에 크게 가속화되었고, 이것은 북쪽에 있는 산들 위에 점점 더 엄청나게 쌓이는 눈과 함께 전체 유프라테스강 주변 계곡에 매해 봄마다 전례가 없었던 홍수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

78:7.6 ..이 대홍수 기간이 끝나면서, 둘째 동산은 사라져 버렸다. 오직 남쪽 지역에서, 그리고 수메르인들 사이에서, 옛 영광의 어떤 자취라도 남아 있을 뿐이었다.

78:7.7 가장 오래된 문명들 중 하나인 이 두 번째 동산의 잔재들은 메소포타미아의 이 지역에서, 그리고 북동쪽과 북서쪽에서 발견될 것이다. 그러나 달라마시아 시절의 더욱 오래된 흔적은 페르시아만의 바다 밑에 존재하고, 첫 에덴은 지중해의 동쪽 끝, 물 밑에 잠겨 있다.

 

안드 종족의 마지막 분산
수메르인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투르키스탄 정복자들의
안드종족 혼합민족이 세운
바빌로니아

 

78:8.1 안드 종족들의 마지막 분산이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생물학적 중심 세력이 사라지게 되었을 때. 우수한 이 인종 중에서 하나의 작은 소수 집단이 두 강 입구 가까이 있던 그들의 고향에 남아 있었다. 이들은 수메르인이었고, B.C. 6000년이 되자 그들의 줄기는 대체로 안드 종족이 되었다... 해안 지역의 이 수메르인은 메소포타미아에서 마지막 안드 종족들이었다. ..

78:8.4 메소포타미아를 정복한 이 사람들은 그들의 계층 안에, 아담손 핏줄의 어느 정도를 포함하여 투르키스탄의 혼합된 북부 종족 중 더 나은 안드 종족의 혈통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다. 덜 진보 되었지만 더 활력 있는, 북에서 온 이 부족들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잔재를 재빨리, 기꺼이 흡수하였으며, 마침내는 역사 연대기의 처음 시점에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그 혼합된 민족들로 곧 발전되었다. 그들은 강 유역에 살던 부족들의 예술과 수메르인들의 문화 가운데 많은 것을 받아들이면서, 사라지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많은 국면을 재빨리 되살렸다. 그들은 세 번째 바벨 탑을 세우려고 하기까지 애썼고, 나중에 그 용어(바빌로니아)를 그들 국가의 이름으로 채택하였다.

 

B.C. 2500년
사라진 메소포타미아 안드 종족.

 

78:8.5 말을 탄 이 야만인들이 북동쪽으로부터 침입하여 유프라테스강 계곡 전체를 차지하였을 때, 그들은 페르시아 만에서 강 입구 근처에 거주하던 나머지 안드 종족은 정복하지 않았다. 이 수메르인들은 우수한 지능, 더 나은 무기, 그리고 그들이 지은 광범위한 군사적 운하(運河) 체계 때문에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었다. 이 운하는 물웅덩이들을 서로 연결하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부수적으로 관개 시설로도 사용되었다. 그들은 동일한 집단 종교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로 뭉쳐진 민족이었다. 그리하여 북서쪽에 있는 이웃들이 고립된 도시 국가들로 나뉘어 고립된 시기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렇게 그들은 종족과 국가의 통일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도시 집단 중에서 어느 것도 뭉쳐진 수메르인들을 정복할 수 없었다.

78:8.10 B.C. 2500년 무렵에 수메르인들은 북쪽에 있는 수트족(Suites)과 구트족(Guites)들의 손에 큰 패배를 겪었다. 홍수로 생긴 언덕 위에 세운, 수메르 서울 라가시가 함락되었다. 에렉은 아카드가 무너진 뒤에, 30년 동안 버티었다. 함무라비의 통치가 확립될 때가 되어 수메르인들은 북쪽의 셈 사람들의 계층에 흡수되었고, 메소포타미아의 안드 종족들은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졌다.

 

20세기 문명의 효소인 보라 인종

 

78:8.12 이것이 아담 시절 이후의 보라 인종, 그리고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 사이에 있던 그들의 고향 운명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들의 고대 문명은, 우수한 민족들이 이주해 나간 것과 열등한 이웃들이 이주해 들어온 것 때문에 마침내 침몰되고 말았다. 그러나 미개한 기병들이 그 유역을 정복하기 오래전에, 동산 문화의 상당 부분이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퍼졌고, 거기서 유란시아의 20세기 문명을 일으킨 효소를 생산하였다.